주연은 물론 조연들의 연기력이 출중한 영화 <소리도 없이>.

주연은 물론 조연들의 연기력이 출중한 영화 <소리도 없이>.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미세한 감정의 일렁임, 사소한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몸뚱이 피를 닦고 자루에 넣어 땅속에 묻는 사람.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를 술 섞은 음료수 먹여 장기매매 브로커에게 판매하는 사람. '반인륜적 범죄' 유괴를 생존을 위한 비즈니스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

세상의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을 행위가 분명함에도 위와 같은 일들은 어제도, 오늘도 있어왔고, 내일도 행해질 것이 분명하다. 싫어도 부정할 수 없다.

때로, 아니 자주 현실은 어떤 공포영화보다 무섭고 끔찍하다. 그런데, 이런 세속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도 침착함과 평정심을 지킨다? 쉽게 이르지 못할 경지다. 최근 개봉된 영화 <소리도 없이> 이야기다.

최근 몇 해 동안 본 어떤 한국 영화와도 닮지 않았다. 답습과 반복의 흔적이 없다. 그래서다. 돌올하고 이채롭다. 신인급 감독이 보여준 기대 이상의 연출력.

유재명과 유아인 이상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조연들

거기에 '멀쩡한 인간의 얼굴'을 하고 '끔찍한 짐승의 범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조연 배우들의 연기가 일품이다. 주연이라 할 유재명(창복 역)과 유아인(태인 역)이 외려 쪼그라져 보일 정도. 두 주연의 연기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마지막 장면도 세칭 '열린 결말'이라 해석의 여지가 분분하다. 영화에 관해 이렇다, 저렇다 입을 댈 관객들이 적지 않을 게 분명해 보인다. 초반 흥행 성적도 나쁘지 않다. '좋은 영화'는 평가의 다양성을 확보해 많은 이들이 논쟁에 참여하게 한다. 이는 130년 영화의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고.

<소리도 없이>는 법 없이 살 수 없을 듯한 '착한 사람들'이 법을 어기며 '나쁜 짓'을 하며 지내다가, 개입되기 원하지 않던 사건에 휘말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착하고도 나쁜 어른 둘' 사이에 '선악의 포지션이 불분명한' 열한 살 아이가 끼어든다.

그때부터다. 영화는 기존의 상식과 보편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의외의 결말을 향해 속도감 있게 질주한다. 상영 시간 내내 눈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스토리는 치밀하고, 전개는 정교하며, 앞서 말한 것처럼 배우들의 연기는 핍진하다. 성인 배우는 물론, 아역 배우 문승아(11세 소녀 초희 역)까지.
 
 <소리도 없이>의 한 장면. 아역 배우 문승아의 호연이 눈길을 끈다.

<소리도 없이>의 한 장면. 아역 배우 문승아의 호연이 눈길을 끈다.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오버 없이 담담함 지켜내는 홍의정 감독의 카메라

상업성으로 무장한 할리우드 스타일을 답습하는 한국 영화가 가진 약점 중 하나가 '과잉' 또는 '오버'다.

관객이 흥분하기 전 연출자가 앞서 흥분하고, 울거나 웃을 준비가 되지 않은 극장 안 사람들에게 "울어라" 혹은 "웃어라"고 먼저 옆구리를 찌르거나, 뺨을 친다. 이래서는 감동에 가닿을 턱이 없다.

<소리도 없이>가 보여주는 가장 큰 미덕은 감독이 먼저 흥분하거나, 감정 과잉에 빠져 오버하지 않는다는 게 아닐까 싶다. 어떤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도 홍의정의 카메라는 정중동(靜中動) 담담함을 지킨다. 모르긴 해도 짧지 않은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수련 기간을 거쳤을 게 분명하다.

물론 <소리도 없이>의 모든 게 다 좋지는 않다. 몇몇 장면에선 앞뒤의 인과(因果)가 흐릿하고, 영화에서 벌어진 일의 수습 과정을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건너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작은 흠결은 전체의 맥락에서 보여준 큰 장점에 비하면 그야말로 소소하게 느껴질 뿐. '영화 보기의 즐거움'을 깨뜨리지 못한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찾은 만족감.

홍.의.정. 아직은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이 감독의 영화적 미래에 거리낌 없이 고액을 베팅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나 역시 "홍 감독의 다음 영화가 더 좋을 것"이란 쪽에 돈을 걸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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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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