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창원 LG 경기. 오리온 이승현이 슛하고 있다. 2020.10.19

19일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창원 LG 경기. 오리온 이승현이 슛하고 있다. 2020.10.19 ⓒ 연합뉴스

 
'코트의 성리학자' 강을준 감독이 이끄는 고양 오리온이 초반 부진을 딛고 상승세를 타고 있다. 고양 오리온은 19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20 현대모비스 KBL 창원 LG 세이커스와의 경기에서 85-77로 승리하며 개막 2연패 이후 3연승을 내달렸다.

강을준 감독 부임 이후 첫 무대였던 지난 KBL 컵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오리온은 막상 정규 시즌이 개막되자 부산 KT와 전주 KCC에게 연패를 당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 15일 우승후보 안양 KGC를 상대로 극적인 첫 승을 거둔 이후 울산 현대모비스와 LG를 잇달아 제압하며 단숨에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코로나 19' 사태로 조기 종료된 지난 2019-2020 시즌 13승 30패로 최하위에 그치며 단 한번도 연승이 없다는 불명예 기록까지 세웠던 오리온은, 2019년 3월(2018-2019시즌) 이후 약 1년 7개월 만에 3연승을 달성했다.

핵심 선수들의 부상 공백 속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는 것이 더 의미있다. 오리온은 현재 부상병동이다. 1옵션으로 영입했던 외국인 선수 제프 위디를 비롯하여 포워드 최진수와 김강선도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위디가 지난 17일 모비스전부터 복귀하기는 했지만 아직 컨디션이 완전하지 않아 출장 시간을 20분 이내로 조절하고 있으며 2경기에서 6.5점, 3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그럼에도 오리온이 연승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토종 쌍두마차' 이대성과 이승현 듀오의 활약 덕분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FA로 오리온 유니폼을 입은 이대성은 개성이 뚜렷한 성격과 플레이스타일 때문에 의구심을 자아냈으나, 컵대회에서 오리온을 우승으로 이끌며 MVP를 수상한 데 이어 정규리그에서도 현재 20.2점, 5.8어시스트, 4.6리바운드의 '외국인 선수급' 활약을 선보이며 펄펄 날고 있다.

득점은 국내 선수 1위이자 외국인을 포함해도 전체 4위이며 어시스트도 전체 4위다. 가로채기로 2.2개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2019-2020 시즌 울산 현대모비스와 전주 KCC에서 뛰며 기록한 11.7점에 2.9어시스트, 2.6리바운드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많은 이들이 주목했던 강을준 감독과 이대성의 만남은 현재까지는 오히려 찰떡궁합으로 보인다. 강을준 감독은 창원 LG 감독 시절부터 튀는 플레이를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기애가 강한 이대성과는 상극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9년 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강 감독은 이대성의 개성을 억누르기보다 포용하고 지원해주는 '덕장' 스타일의 리더십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강 감독은 이대성에게 부담감을 내려놓으라는 취지로 "갑옷을 벗어야 한다"는 새로운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대성도 그런 강감독의 기대와 믿음에 보답하듯 열정적인 플레이로 팀의 돌격대장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대성은 친정팀 모비스와의 대결에서는 올 시즌 최다 득점인 34점을 퍼붓는가 하면, LG전에서도 25점을 터뜨리며 오리온의 외국인 2인(21점)이 합작한 것보다 더 많은 득점을 혼자서 책임졌다. 이대성은 LG전에서 3점슛 6개를 던져 5개를 성공시켰고 특히 접전이 이어지던 4쿼터 고비마다 결정적인 득점을 성공시키며 상대의 추격에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정작 이날 강을준 감독이 칭찬한 진정한 수훈갑은 따로 있었다. 강 감독은 파워포워드 이승현을 '고양의 수호신'이라고 극찬하며 이날 승리의 최대 주역으로 꼽았다. 이승현은 이날 11점, 5리바운드로 기록상 더 돋보인 이대성이나 허일영(19점 10리바운드)에 비하여 특출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승현은 LG의 외국인 선수 캐디 라렌과 경기 내내 육탄전을 펼치며 골 밑을 사수하고 리바운드를 따냈다. 전반에 무득점에 그쳤던 공격도 후반 3쿼터에 7점을 몰아치며 결정적인 순간에 오리온의 역전을 이끄는 득점이 이승현의 손끝에서 터졌다. 이대성과 허일영의 득점포가 터질 수 있었던 것도 이승현이 스크린과 박스아웃 등 궃은 일에서 보이지 않는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승리했을 때 영웅이 나타난다"는 강을준표 '성리학' 농구철학에 가장 어울리는 선수가 바로 이승현이기도 하다.

이승현은 이미 전임 추일승 감독 시절부터 오리온의 전력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자원이었다. 이승현의 진정한 가치는 외국인 선수와도 매치업이 가능한 국내 선수이자 궃은 일을 도맡는 '블루워커'로서의 공헌도다. 비록 외국인 선수를 제압하지는 못할지라도 몸싸움을 펼치고 골밑에서 버텨줄 수 있는 국내 선수가 있다는 것만으로 팀의 전술적인 안정감이 높아진다. 이승현의 최고의 활약을 펼친 2015-2016 시즌 오리온은 챔피언전 우승을 차지했지만, 이승현이 부상으로 고전했던 2019-2020 시즌에는 최하위로 추락한 것만 봐도 그의 가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승현은 지난 시즌 평균 9.5점으로 2014-2015시즌 데뷔 이후 처음으로 평균 득점이 한 자릿수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평균 13.8점에 6.4리바운드로 부활했다. 위디와 최진수는 부상에 시달리고 있고 디드릭 로슨의 활동량과 득점력이 떨어지는 오리온의 골밑에서 4, 5번을 넘나들며 넓은 범위를 커버해야 하는 이승현의 역할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이승현 덕분에 상승세를 타고 있는 오리온이지만, 불안요소 또한 이승현에게 있다. 팀사정상 이승현은 매 경기 거의 풀타임을 출장하고 있다. 3차 연장을 치렀던 KT와의 개막전에서는 50분 41초를 소화하기도 했다. KCC전에 30분 41초를 소화한 것이 가장 짧은 기록이고, KGC인삼공사(37분 14초)-현대모비스(38분 37초)-LG(35분 18초)전에서는 모두 35분 이상을 소화했다. 현재 프로농구 최다출전시간 1위이고, 연장 기록을 제외해도 35분 31초에 육박한다. 몸싸움이 잦은 빅맨인데다 높이와 파워가 뛰어난 외국인 선수들과도 자주 매치업을 이뤄야 하는 이승현의 특성상 체력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강을준 감독은 팀 사정상 어쩔 수 없다고 하겠지만, 팬들은 현재 이승현의 기용 방식이 '혹사'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강을준 감독과 비슷한 사례로 자주 비교되는 이충희 감독은 과거 오리온과 원주 DB의 지휘봉을 잡았던 시절, 김승현-김주성-이승준 등 당시 30대에 접어든 주력 선수들을 시즌 초반부터 체력 안배 없이 거의 풀타임에 가깝게 기용하여 초반에는 반짝 좋은 성적을 올리기도 했으나, 주전들의 줄부상이 이어지는 다시 성적이 하락하는 악순환을 초래한 바 있다. 지도자로서 긴 공백기로 현장감각이 떨어지고, 성적으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감독들이 흔히 저지를수 있는 실수다.

강을준호에서 이대성이 오른팔이라면, 이승현은 척추와도 같다. 현재 오리온에서 만일 이승현이 부상을 당하거나 체력이 떨어지면 팀 차원의 큰 손실이다. 시즌은 길고 때로는 여유도 필요하다. 성적 부담이 주는 조급증의 갑옷을 벗어야하는 것은, 이대성이 아니라 강을준 감독 본인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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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준감독 이승현 이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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