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 같으면 10월 하순을 바라보는 이 시기엔 KBO리그의 포스트시즌이 한창 진행되고 있어야 한다. 우천취소 경기가 많지 않았던 시즌이었다면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는 때다. 실제로 작년 10월 19일엔 이미 키움 히어로즈와 SK 와이번스의 플레이오프 일정이 모두 끝나고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있었다. KBO리그의 포스트시즌을 통칭 '가을야구'라고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올해는 10월 19일 현재 포스트시즌은커녕 정규리그의 일정조차 마무리되지 못했다. 늦은 겨울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시즌 개막이 한 달 이상 늦춰졌고 여름에는 50일 이상 지속된 사상 최장기간 장마도 있었다. 이 때문에 한국야구위원회가 짜 놓은 정규리그 일정이 모두 끝난 시점에서도 각 팀마다 적게는 2경기, 많게는 10경기의 잔여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시즌 막판까지 알 수 없는 순위경쟁의 향방만큼이나 개인 타이틀 경쟁도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만큼 치열하다. 물론 홈런(멜 로하스 주니어, 46개)이나 탈삼진(댄 스트레일리, 196개)처럼 사실상 주인이 정해진 타이틀도 있지만 대부분의 개인 타이틀은 시즌이 끝날 때 즈음에나 그 주인공이 정해질 전망이다. 그리고 개인 타이틀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쉽게 나오지 않았던 대기록이 작성될 확률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알칸타라와 루친스키가 벌이는 다승왕 경쟁

시즌 개막 후 14경기에서 10승을 따낼 때만 해도 다승 타이틀은 라울 알칸타라(두산 베어스)의 독주 체제로 가는 듯했다. 작년 kt 위즈 유니폼을 입고 27경기에서 11승을 올렸던 알칸타라는 넓은 잠실 야구장과 두산의 강한 타선과 탄탄한 수비에 도움을 받으며 무서운 속도로 승수를 챙겼다. 당시만 해도 알칸타라의 경쟁 상대는 2007년의 다니엘 리오스와 2016년의 더스틴 니퍼트(이상 22승) 같은 두산의 레전드 외국인 투수가 되는 듯했다.

하지만 알칸타라는 7월 21일 키움전 승리 이후 6경기 연속 승수를 추가하지 못한 채 정체됐다. 그리고 그 사이 NC 다이노스의 외국인 에이스 드류 루친스키가 강력한 타선의 지원 속에 7월 4승, 8월 3승을 따내며 알칸타라로부터 다승 선두 자리를 빼앗았다. 작년 시즌 177.1이닝을 던지며 3.0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도 9승에 그쳤던 '불운의 아이콘' 루친스키가 작년의 불운을 한 번에 씻어내고 있었다.

루친스키는 2015년 에릭 해커 이후 NC의 두 번째 다승왕 등극이 유력해 보였지만 최근 두 경기에서 승수를 보태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그 사이 알칸타라가 10월 4번의 등판에서 모두 승리를 챙기면서 추격에 성공했고 19일 현재 두 선수는 똑같이 18승으로 다승 공동 선두에 올라 있다. 따라서 잔여경기 결과에 따라 올 시즌 다승왕의 향방이 결정될 전망이다.

물론 알칸타라는 이미 18일 키움전에 등판해 8이닝을 던졌기 때문에 16일 롯데 자이언츠전에 등판했던 루친스키가 일정상 다소 유리한 부분은 있다. 하지만 두산이 시즌 막판까지 치열한 순위경쟁을 해야 하는 반면에 NC는 19일 현재 매직넘버가 '3'으로 줄어 들어 정규리그 우승이 확정되면 굳이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루친스키를 무리하게 등판시킬 이유가 없다. 양 팀의 성적이 다승왕 경쟁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외국인 첫 트리플 크라운과 함께 타격 6관왕 도전
 
 지난 11일 경기도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2020 KBO리그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kt wiz의 경기. 5회말 1사 주자 없을 때 KT 로하스가 홈런을 치고 있다.

지난 11일 경기도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2020 KBO리그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kt wiz의 경기. 5회말 1사 주자 없을 때 KT 로하스가 홈런을 치고 있다. ⓒ 연합뉴스


트리플 크라운. 스포츠에서 주요 타이틀을 모두 차지하거나 영화에서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영화제, 백상예술대상의 주연상이나 감독상을 모두 휩쓴 경우를 말한다. 야구에서는 한 시즌에 한 선수가 타율, 홈런, 타점 타이틀(투수의 경우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을 모두 따낼 경우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호칭이 주어진다. KBO리그 역사에서 타격 트리플 크라운이 나온 경우는 단 3회(1984, 2006, 2010년), 선수로 치면 2명(이만수, 이대호) 뿐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1950년 이후 단 4명 밖에 없었던 타격 트리플 크라운의 주인공이 2020년 KBO리그에서 탄생할 가능성이 보인다. 올 시즌 트리플 크라운에 도전하는 주인공은 kt의 간판타자 멜 로하스 주니어. 빅리그 경력 없이 2017년 kt에 입단해 해마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 로하스는 올해 공격에서 완전히 눈을 뜨며 정확성과 장타력을 겸비한 완벽한 타자로 거듭나고 있다.

로하스는 지난 9월 25일 LG트윈스의 거포 로베르토 라모스에게 홈런 1위 자리를 잠시 내주기도 했지만 10월 들어 8개의 아치를 그려 내며 부상으로 개점 휴업 중인 라모스와의 차이를 벌렸다. 타점 부문에서도 2위 김현수(LG)를 17개 차이로 따돌리고 있는 로하스는 10월에만 .426의 맹타를 휘두르면서 타율 부문에서도 .353로 손아섭(롯데,.352)을 1리 차이로 제치고 1위를 달리고 있다.

트리플 크라운에 도전하고 있는 로하스는 장타율(.689)에서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득점(111개)과 최다안타(188개) 부문에서도 각각 1,2위에 올라 있다. 도루와 출루율을 제외하고 최대 6관왕까지 노릴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로하스가 올 시즌 역대 4번째 타격 트리플 크라운과 함께 50홈런과 200안타를 동시에 달성한다면 2015년의 에릭 테임즈(워싱턴 내셔널스)를 능가하는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타자로 기억될 것이다.

200안타에 도전하는 페르난데스, 동반 200안타도 가능? 
 
 지난 1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0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5회말 두산 선두 타자 호세 페르난데스가 좌전 안타를 친 뒤 1루에 나가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0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5회말 두산 선두 타자 호세 페르난데스가 좌전 안타를 친 뒤 1루에 나가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994년 '바람의 아들' 이종범(주니치 드래곤즈 2군 연수코치)은 타율 .393 196안타 84도루를 기록하며 역사적인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당시 많은 야구팬들은 이종범이 4할 타율과 200안타, 100도루가 모두 무산된 것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렇게 KBO리그에서 200안타는 '불가능의 영역'으로 여겨졌지만 2014년 육성선수 출신에 독특한 타격폼을 가진 '서교수' 서건창(키움)이 128경기 체제에서 역대 최초로 200안타를 돌파했다.

2015년 kt의 1군 가세로 KBO리그는 144경기 체제를 맞았지만 지난 5년 동안 200안타를 넘긴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2016년 최형우(KIA타이거즈)가 195안타, 2017년 손아섭(롯데)이 193안타로 200안타에 근접했지만 끝내 200안타를 둘러싸고 있는 '결계'를 벗기지 못했다. 그러던 2020년 역대 두 번째로 200안타 고지에 도전하고 있는 쿠바 출신의 외국인 선수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가 나타났다.

작년 시즌 197안타로 서건창을 제외한 선수 중에서 200안타에 가장 근접한 페르난데스는 올해도 두산이 치른 137경기에 모두 출전해 192안타를 기록하고 있다. 경기당 평균 1.4개의 안타를 기록하고 있는 페르난데스는 남은 7경기에서 시즌 평균치에 해당하는 안타만 때려내도 역대 최다안타 신기록을 세울 수 있다. 페르난데스는 "올해 못하면 내년에 다시 도전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지만 200안타의 기회는 자주 찾아 오는 게 아니다.

물론 페르난데스가 200안타에 가장 가까운 것은 분명하지만 200안타가 페르난데스만 오를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188안타를 기록하고 있는 최다안타 2위 로하스 역시 남은 8경기에서 몰아치기를 한다면 200안타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 KBO리그 통산 1명 밖에 없었던 200안타가 한 시즌에 두 명이나 탄생한다면 분명 의미 있는 기록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모두 외국인 타자가 된다면 야구팬들은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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