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왕'을 자부하던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의 전통이 무너질 위기에 직면했다. 인천은 16일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1 파이널라운드B(7~12위) 25라운드에서 10명이 뛰는 열세 속에 강원FC에 1-3으로 패했다. 강원은 파이널라운드에 접어들며 쾌조의 3연승으로 파이널B 그룹에서 여유있게 1부리그 잔류를 가장 먼저 확정지었다.

반면 인천은 지난 4일 수원 삼성(0-1)전에 이어 2연패에 빠지며 승점 21점(5승6무14패)으로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인천에게 남은 경기는 이제 2경기 뿐인데, 1부리그 잔류 경쟁을 펼치고 있는 서울(승점25)-부산(승점24)-성남(승점 22점)은 모두 인천보다 1경기를 아직 덜 치른 상태라 자력 생존 가능성에서 더욱 불리해졌다.

인천으로서는 냉철함이 결여된 의욕이란 오히려 자충수가 될수 있음을 뼈저리게 보여준 한 판이었다. 강등권 탈출이 절실했던 인천은 파이널B 최강자로 꼽히는 강원을 상대로 시작과 동시에 라인을 끌어올리며 공격적으로 승부수를 걸었다. A매치 휴식기동안 열린 A팀과 올림픽팀간 스페셜매치에서 국가대표 차출만 5명이었던 강원은 체력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대표선수들을 모두 정상투입하며 최선을 다했다.

전반 무고사의 연속 슈팅과 세트피스 찬스가 이어질 때만 해도 초반 분위기는 분명히 인천 쪽이었다. 하지만 강원의 수비벽에 번번이 막히며 결실을 맺지 못했고, 오히려 인천에서 먼저 수비 실수가 나오며 강원의 날카로운 역습 두 방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인천은 전반 34분 측면에서 연결된 크로스를 제대로 걷어내지 못하면서 강원 김수범에게 선제골을 내줬고, 42분 국가대표 김지현에게 추가골을 헌납해 0-2로 끌려갔다.

후반에는 교체 투입된 주장인 김호남이 대형사고를 쳤다. 김호남은 후반 20분 볼을 다투는 과정에서 강원 이현식의 허리를 가격하는 거친 플레이를 저질렀다. 심판은 처음엔 옐로카드를 내밀었지만 비디오 판독을 거친 끝에 레드카드로 색깔이 바뀌며 김호남은 다이렉트 퇴장을 당했다. 교체 투입된지 불과 10분 만의 일이었다.

김호남은 파울을 저지른 이후 곧바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연신 미안함을 표시했지만, 이미 볼경합 타이밍이 한참 늦은 상황에서 축구화 스터드가 보일 정도로 발을 올리며 밀고들어 간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무모하고 위험한 행동이었다. 스스로도 이미 결과를 직감한 듯 퇴장 판정이 나오자 김호남은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인천은 불리한 흐름 속에서도 후반 28분 무고사가 만회골을 터뜨리면서 희망을 살렸지만 수적열세를 버티지 못하고 후반 33분 이현식에게 쐐기골을 내주면서 결국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다. 인천으로서 김호남이 퇴장 당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더욱 아쉬운 순간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다이렉트 퇴장을 당한 김호남은 남은 파이널라운드 경기에서도 더 이상 출전이 불가능하다. 가뜩이나 연패에 빠진 인천은 1부리그 잔류의 가장 큰 고비에서 팀의 핵심선수이자 리더를 잃고 싸워야 하는 심각한 전력누수까지 안게 됐다.

감정조절은 중요한 큰 경기일수록 언제든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있는 요소다. 인천과 1부리그 잔류 경쟁을 펼치고있는 성남은 지난달 27일 열린 인천과의 23라운드에서 수비수 연제운이 2분만에 퇴장당하는 변수가 발생하며 인천에 0-6으로 참패한바 있다. 당시에는 수혜자였던 인천이 이번엔 레드카드의 제물이 됐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또한 성남은 지난 강원전에서는 박수일의 퇴장에 이어 경기가 끝난 이후에는 김남일 감독까지 심판 판정에 과도하게 항의하다가 다이렉트 퇴장당하며 파이널라운드 2경기에서 벤치에 앉을 수 없게 됐다. 김남일 감독은 31일 열리는 부산과의 파이널라운드 최종전에서나 복귀가 가능하다. 정작 강등 경쟁과는 상관없었던 강원만 2경기 연속 상대팀의 퇴장 릴레이로 수혜를 입은 셈이 됐다. 치열한 1부리그 잔류싸움을 펼치고있는 하위권 팀들의 전력과 분위가 모두 불안정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카드수집'으로 인한 전력누수는 결정적인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인천은 창단 이래 지금까지 한번도 2부리그로 떨어지지 않으며 '생존왕' 혹은 '잔류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올 시즌도 개막 15경기 연속 무승(5무10패)의 불명예 기록을 세우며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조성환 신임감독 부임 이후로 후반기에만 승점 16점을 추가하며 귀신같이 살아나는 모습으로 생존왕의 저력이 죽지 않았음을 과시했다. 하지만 잔류 전쟁의 가장 중요한 승부처인 파이널라운드에서 접어들며 성남전 대승이후 수원과 강원에게 잇달아 덜미를 잡히며 최대의 고비에 직면했다.

생존왕은 인천에게 결코 자랑스러운 수식어만은 아니다. 좋게 말해 생존이지, 나쁘게 말하면 매년 하위권에서 내내 허덕이다가 아슬아슬하게 1부리그 잔류로 최악의 상황만 모면하는 패턴이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천과 함께 수도권 팀들을 대표하는 수원-서울-성남 등은 비록 올시즌에는 나란히 파이널B그룹으로 추락하여 고전하고는 있지만, 적어도 한때 리그를 호령하며 우승을 다투던 호시절이라도 있었던 것에 비해 인천은 2005년 깜짝 준우승 정도를 제외하면 내내 그저그런 팀에 머물고 있다.

생존왕으로 불렸던 팀들치고 결국 말로가 좋았던 팀들은 거의 없다. 해외축구를 살펴봐도 볼턴 원더러스-풀럼FC-선덜랜드 AFC-스완지 시티(이상 잉글랜드), 레알 사라고사(스페인),키에보 베로나(이탈리아), 함부르크SV(독일) 등은 자국리그에서 한때 생존왕으로 유명세를 탔고, 이중에는 한국 선수들이 활약했던 팀도 다수 포함된다. 하지만 이들중 결국 끝까지 강등당하지 않았던 팀은 하나도 없었다.

근본적인 변화나 도전의식 없이 그저 매년 1부리그 생존에 안주하는 팀은 결국 언젠가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올 시즌의 잔류-강등 여부를 떠나 인천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생존왕이라는 타이틀은 이제 극복해야할 민망한 수식어에 가깝다.

인천은 이제 24일 부산전-31일 서울전만을 남겨놓고 있다. 승격팀은 부산은 인천이 그나마 해볼만한 상대이고, 서울은 전력상 인천보다 앞서지만 최근 4경기 연속 무승에 그치며 부진에 빠져있다. 두 팀 모두 불안정한 감독대행 체제로 리더십의 혼돈을 겪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천이 절대 못넘을 산은 아니다. 인천은 자력으로 2경기를 모두 이기고 경쟁팀들이 한 경기라도 미끄러지기를 기대해야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벼랑 끝에 몰린 인천은 올해도 생존왕의 전통을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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