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복을 입은 누군가가 어떤 행성의 이곳 저곳을 살피며 다니며 '탐험'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탐험하는 행성의 모양새가 익숙하다. 여기저기 쌓인 부식된 쓰레기 더미, 흡사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쓰레기 처리장과도 같다.

그러한 '행성'의 잔해에서 찾아낸 것은 '닭뼈'였다. 우주복을 입은 그 누군가는 미래의 인간이다. 그가 과거의 잔해 더미에서 가장 많이 찾아낸 것은 닭의 뼈다. 그렇다면 그는 과거의 지구를 어떻게 정의내릴까? 혹 우리가 백악기를 공룡의 시대라 명명하듯, 닭들의 행성이라 이름붙이지 않을까? 

2020년 방송대상을 수상한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1부 닭들의 행성' 편은 이렇게 시작된다. 왜 닭들의 행성이 되었을까? 지구상에서 사육되는 닭은 약 230억 마리다. 전 세계 인구 한 사람당 3마리에 해당하는 개체 수다. 개체수로만 보면, 지구는 닭들의 행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가 닭들의 행성이 된 까닭은 닭의 적극적 생존 의지가 아니다.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닭들의 행성' 편의 한 장면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닭들의 행성' 편의 한 장면 ⓒ EBS

 
닭들의 행성 (feat. 인간)

들에서 살던 붉은 들닭은 5000년 전부터 인간의 가축이 된 이후, 인류를 따라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강한 다리, 넓은 가슴, 질량으로만 보면 전체 조류를 압도하게 된 닭. 미래의 후손들이 지구를 탐험하고 그 압도적인 개체수로 인해 '닭들의 행성'이라는 결론을 내릴 지도 모르는 닭의 번성을 주도한 건 사실 인간이다. 

인간에 의해 닭은 1950년대에 비해 무려 5배나 빨리, 더 크게 성장한다.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5, 6주 무렵 도살된다. 한 해 도살되는 개체수만 해도 650억 마리에 달한다. 닭들의 행성이라 명명될 수 있을 정도로 번성하지만, 그 번성은 닭의 고난이다. 심지어 2008년 한 해에만 1천만 마리가 도살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는 AI, 조류 독감 등 닭이 인간과 함께하면서 겪게 된 고난의 또 다른 면이다. 그렇게 이르게 도살되어 사라진 청소년 닭들은 전 세계 쓰레기장에서 화석이 되어가는 중이다. 

스웨덴 작가 출신 그룹 논휴먼 난센스는 지난 2019년 '핑크 치킨 프로젝트'라는 작품을 내놓는다. 닭을 핑크색으로 염색한 이 예술 작품은 먼 훗날 우리 시대의 지질층이 핑크색이 될 거라 예언한다. 우리나라에서만 하루 250만 마리가 소비되고 있고, 인류 문명과 함께 번성하고 번성한 만큼 사라져가고 있는 닭을 상징하는 핑크색 지질층의 시대, 다큐가 말하고 있는 인류세다. 

지금까지 지구는 다섯 번의 '생물' 멸종을 겪었다. 빙하기로 인한 고생대의 멸종, 이어 데본기의 멸종, 가장 피해가 컸던 페룸기 대멸종, 파충류의 대부분이 멸종했던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백악기의 공룡 멸종. 그리고 이제 6번째 멸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학자들은 경고한다. 그 여섯 번째 멸종은 인류의 번성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지금까지와의 멸종과 달리 지구 역사상 존재했던 가장 강력한 종이 지구 환경 전체를 바꾸는 시대이다. 그래서 최근 1만여 년 전부터의 홀로세와 구분하여 인류세라 명명되어야 한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닭들의 행성' 편의 한 장면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닭들의 행성' 편의 한 장면 ⓒ EBS

 
멸종의 시대, 인류세 

인류세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폴 크리천이다. 대기학자였던 그는 이산화탄소의 급격한 증가로 인한 지구의 변화에 주목했다. 인간이 스스로 명명한 시대, 인류세의 시작을 학자들은 1950년 원자 폭탄 폭발 이후부터로 보고 있다. 그 이후 지금까지 70년, 지질학적 관점에서 보면 번개가 치듯 짧은 순간이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인류는 그 이전의 지구 멸종기에 맞먹는 멸종의 시대를 펼쳐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한 이래 지구 생물 중 97%가 인간과 가축이 되었다. 야생의 생물들은 불과 3%에 불과하다. 자이언트 팬더, 침팬지, 아시아 코끼리, 기린, 얼룩말, 안테스 플라밍고, 펠리칸이 대멸종의 길에 들어섰다. 멀리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강치, 늑대, 표범, 크낙새 등이 이미 멸종했다. 학자들은 금세기 말에 지구에 있는 종의 반이 멸종될 거라 경고한다. 맘모스, 스테누루돈 ,디프로토돈, 일본 늑대 등 대형 척추 동물의 멸종이 인류세의 시그널이다. 

동물들은 어떤 식으로 사라져가는 걸까? 말레이시아 팜오일 농장, 25년 정도된 나무들을 자르고 새 묘목을 심는다.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하여 기존의 숲이 사라진다. 그 숲의 자리에 팜유 농장이 들어선다. 그 과정에서 오랑우탄이 서식지를 잃는다. 인간과 생존권을 놓고 갈등하는 악어라고 해서 멸종의 파고를 피할 길이 없다. 한약재로 인기가 높은 비단뱀이라고 다를까. 제 아무리 멸종 위기 동물들의 유전자를 보관하여 보존하려 해도, 인간의 번성을 위한 자연 파괴는 멈춰지지 않는다.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닭들의 행성' 편의 한 장면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닭들의 행성' 편의 한 장면 ⓒ EBS

 
인도 델리에서는 빛의 축제 디왈리가 한창이다. 어둠을 밝히며 인류가 시작되었음을 자축하기 위해 사람들은 하룻밤 사이에 500만kg의 불꽃들을 쏘아댄다. 그 다음날, 대기 오염은 AQI(Air Quality Index ) 2000을 넘어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폭죽을 쓰지 못하게 하지만 이 디왈리 축제 기간 동안 경기가 활발해지고, 매출이 올라가자 멈출 수 없었다. 

다큐는 이 멈출 수 없는, 아니 멈추려 하지 않는 인도 디왈리 축제가 여섯 번째 멸종을 향해 질주하는 인류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말한다. 자책하지만, 멈출 수 없는 강력하고도 큰 영향력을 가진 인류. 그들에 의해 멸종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인류세는 그저 인류가 압도적으로 번성하는 시대가 아니다. 다큐는 인류세를 통해 인류가 자행하고 있는 멸종을 엄중하게 경고한다. 6번째 멸종의 시대, 그렇다면 과연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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