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4일.

설리가 세상을 떠난 날로부터 1년이 지났다. 그날의 서늘한 가을 공기는 물론, 하루 내내 친구들과 함께 공유했던 먹먹한 마음이 다시 돌아온 듯하다. 인간적인 인연의 유무와 별개로, 대중에게 친숙한 연예인의 죽음은 큰 충격을 준다. 연예인은 자신의 존재를 대중들 앞에 내놓고, 동반자가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지 않나. 1990년대에 태어나, 200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나에게는 설리의 죽음이 큰 무게로 다가왔다. 참 좋아했던 보이 그룹의 메인 보컬이 세상을 떠난 지 2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른 나이에 연예계에 입성한 후, 설리는 걸그룹 에프엑스의 막내로 활약했다. 나는 그가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머리를 독특하게 묶고 '라차타(LA chA TA)'를 부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유쾌했다. 에프엑스의 '제트별', 'Airplane', '시그널', 딘의 '하루살이' 등, 내가 지금까지 즐겨듣는 노래들에 설리의 가녀린 목소리가 있다.
 
설리가 그룹 활동을 접은 <레드 라이트> 앨범 이후, 그는 세상과 불화를 빚는 일이 잦았다.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굳이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자신을 맞추지 않았다. 팬들은 그를 '할리우드 스타'에 비유하곤 했다. 무엇을 입든, 무엇을 말하든, 고개를 숙이지 않는 '마이 웨이' 자세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설리처럼 자기 식대로 사는 사람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온라인 공간 속에서 그에게 돌을 던졌던 군중들, 여성 연예인에 대한 혐오적 표현을 유희라 여겼던 네티즌들, 그리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사화하고, 대중 앞에 던져 놓았던 거짓 언론들이 있다. 많은 대중들이 여전히 부채 의식을 고백한다. 그러나 얼마 전 설리를 추모하는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었을 때, 그 방송에 출연한 기자 중 어떤 사람도 언론의 자성을 논하지 않았다. '왜 설리가 불편하셨냐'고 물었지만, 결국 누군가의 탓이라 책임 전가를 하기 바빴을 뿐이다.

때로는 대담하고, 통렬하게
  
 설리

설리 ⓒ JTBC2

 
내가 설리의 강력한 지지자였던 적은 없다. 그러나 나는 그의 활동을 보면서 내심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는 누군가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말을 했다. 노 브래지어 이슈도 그러한 맥락에 있다. 설리는 JTBC 예능 프로그램 <악플의 밤>에 출연해서 "브래지어는 액세서리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착용하지 않은 모습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그랬을 뿐이다. 타인의 신체를 대상화하기 바쁜 사람들에게 있어, 그는 비난의 대상이 됐다. 동시에 누군가에게 설리는 '사랑스러운 대변자'로 살아 숨쉬었다.

2017년 총선 기간, 설리가 인스타그램에 쿠바 여행 사진을 올리자, '선거일에 왜 투표를 안 하느냐'며 무례한 훈수를 두는 네티즌이 있었다. 설리는 보란 듯이 사전투표 인증샷을 업로드했다. 설리는 그렇게 유쾌하고, 통렬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와, 정말 쿨한데'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설리는 부지런히 자기 뜻을 세상에 표현했던 시민이기도 했다. '낙태죄 폐지'와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동시대 여성들에 대한 강력한 연대를 천명했다. '위안부 기림의 날'을 알리는 것은 물론,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는 여성주의 영화 <메기>의 GV에 참석해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당신은 설리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혹은 언론이 만들어낸 자극적인 프레임 가운데에서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는가? 만약 그랬다면, 설리가 자유 의지를 가진 시민이며, 울고 웃는 이웃이었다는 것을 되새겨보자
 
설리는 자신에게 쉴새없이 가혹한 잣대를 들이미는 땅에서 살았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빛깔대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대로 치열하게 살았다. 하고 싶은 말은 꼭 했고, 때로는 호방하게 웃어 보였다. 스물여섯 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젊은 나이에 삶이 끝났다.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실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며칠 후, 누군가가 '설리와 함께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는 글을 썼다. 우리는 설리가 할머니가 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설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이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설리의 노래 '고블린(2019)'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가 보내온 편지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내 방 숨 쉬는 모든 것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니
나는 여기 있는데."
- '고블린' 중에서.
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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