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아라공이 말했다.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말하는 것이라고. 나는 이보다 교육에 대하여 잘 표현한 문장을 알지 못한다. 가르침은 다만 더 나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에서 그친다. 그 다음은 배움의 몫이다.

나 어릴 적엔 '영재'라는 게 유행이었다. 이해를 잘 하고, 남이 하지 못하는 생각을 하며, 남다른 기억력을 갖고, 깊이 사고하는 아이가 곧 영재였다.

기준은 언제나 남이었다. 남보다 더 빠르고 정밀하며 집요한 아이들이 영재라고 불렸다. 잘 키운 영재 하나가 만 명의 범인을 먹여 살릴 거란 믿음을 거의 모든 사람이 믿었다. 제 아이를 영재로 거듭나게 하려는 치열한 욕망에 치이고 깔린 아이가 넘쳐났으나, 한 명의 영재가 만 명을 구할 것이므로 괜찮았다.

그랬나, 과연 그랬을까. 정말 괜찮았던 것일까.
 
디어 마이 지니어스 맏언니 구윤주 감독(왼쪽)과 주인공 구윤영양이 함께 양치하는 장면.

▲ 디어 마이 지니어스 맏언니 구윤주 감독(왼쪽)과 주인공 구윤영양이 함께 양치하는 장면. ⓒ 필름다빈

 
언니이자 감독으로 동생의 삶을 마주했다

<디어 마이 지니어스>는 치이고 깔린 아이를 돌아보는 영화다. 그 길을 먼저 걸어온 맏이의 입장에서 늦둥이 동생을 지켜본다. 선배로서 느끼는 부당함과 언니로서 느끼는 안쓰러움은 렌즈를 넘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영화는 가족 다큐멘터리다. 대학교 졸업반으로 영화인을 꿈꾸는 언니가 카메라를 가져다 댄 곳은 제 가족의 풍경이다.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는 건 초등학교 진학을 앞둔 막냇동생과 딸 둘을 다 키워내자마자 다시 학부형이 된 어머니, 그들의 삶이다.

삶이란 멀리서 보면 모두가 평범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저마다 특별하다. 처음엔 더없이 평범해보였던 이들 가족의 삶에 카메라를 들이대자 금세 긴장과 불편이 모습을 드러낸다. 애정이란 이름으로 강요되는 학습이 아이를 짓누르고 모두를 괴롭힌다.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학원 갈 때"라고 답하던 어린 아이가 쉽게 밥을 삼키지 못할 만큼 멍들어버리는 동안, 먼저 그 길을 걸어온 언니는 별다른 방도를 찾지 못한다.
 
디어 마이 지니어스 딸 윤영을 잡아두고 못다한 공부를 시키는 어머니 문선숙씨(오른쪽).

▲ 디어 마이 지니어스 딸 윤영을 잡아두고 못다한 공부를 시키는 어머니 문선숙씨(오른쪽). ⓒ 필름다빈

 

엄마의 모든 관심을 받는다는 것

어머니의 모든 관심은 막내에게 가 있다. 어머니는 자주 도서관에 들러 아이가 읽을 만한 책을 훑어 가져온다. 대출제한인 스물 몇 권을 매번 빌리다보니 카트를 끌고와야 할 정도다. 학교에 가기 전 책 5000권을 읽히겠다는 다짐은 목표를 훌쩍 넘어 7000권에 이른다.

아이 교육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다. 영어와 수학은 기본이고 피아노며 합기도며 주산과 보드게임까지 온통 배워야 하는 것들 투성이다. 채 열 살도 되지 않은 딸이 종일 공부를 하고 집에 와서는 다시 어머니 앞에서 시험을 치른다. 쉴 틈 없이 공부하는 이 아이의 꿈은 "서울대에 가는 것"이고 "영재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꾸게 된 꿈일까, 제 꿈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는 것일까.

딸이 공부하는 모습에 눈을 반짝이는 어머니는 제가 딸에게서 공부를 앗아가는 줄도 모른다. 다그치고 다그쳐서 눈물을 뽑아내고는,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우는 것도 타박한다. 어느 어머니가 그러고 싶을까. 앵글 바깥에서 새어나온 "나도 힘들어"라는 말은 어머니의 진짜 마음인지도 모른다.

"나도 영재가 되고 싶어"라는 동생에게 "영재는 그냥 사람들이 만든 거야"라고 답하는 언니는 "서울대에 가고 싶다"는 아이의 꿈 앞에 "이게 아니야"라고 선뜻 말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찾는 진학설명회는 매년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 읊지만 빈자리를 찾기가 어렵다.

세상이 그렇다. 올림픽 마라톤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이놈의 세상에선 메달을 목에 거는 건 극소수에 불과하다. 중간에 넘어지고 주저앉는 이들은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다. 영재만이 주목받는다. 가치가 있다. 그러니 영재가 되어야 한다. 과연 그런가.

 
디어 마이 지니어스 막내의 교육을 두고 테이블에 마주앉은 엄마와 맏언니. 마치 영화는 관객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말할 건가요"하고 묻는 듯하다.

▲ 디어 마이 지니어스 막내의 교육을 두고 테이블에 마주앉은 엄마와 맏언니. 마치 영화는 관객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말할 건가요"하고 묻는 듯하다. ⓒ 필름다빈

 
이 가족만의 이야기일까

다큐는 "우리 반 학생들이 훨씬 더 바쁘고 불행하다"는 초등학교 교사 둘째딸의 대사를 통해 제 가족의 이야기를 바깥세상으로 확장한다. 그리고 이는 너무나도 쉽게 보는 이의 공감을 얻어낸다. 한국인이라면 누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누구나 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비슷한 경험 한 둘쯤은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가정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심지어는 놀이터에서까지도.

<디어 마이 지니어스>는 용감하고 열정적인 시도가 낳은 결과물이다. 우연한 계기로 제 집이며 동생에게 카메라를 들이댔을지라도, 이를 지속하고 공개하는 데는 용기와 열정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그 용기와 열정이 영화를 넘어 삶을 더 나아지게 한다고 믿는다. 어쩌면 한 가정을 넘어 더 많은 것들까지도.

"난 다큐멘터리 영화를 좀 지겨워할 때가 있다"며 "그러니까 좀만 재미있게 해달라"던 동생의 요구에 언니는 최선을 다해 응답한 듯 보인다. 그 와중에 다큐는 여전히 유효한 장르라는 것까지 입증했으니, 이만하면 들인 4년의 시간이 아깝지 않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 이 영화가 그렇듯이.
덧붙이는 글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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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 https://brunch.co.kr/@goldstar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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