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트> 포스터

영화 <카트> 포스터 ⓒ 리틀빅픽처스


청소년노동인권 교육을 하고 있는 내가 가장 많이 보게 되는 영화장면이 있다.

바로 영화 <카트>에서 선희(염정아) 아들 태영(디오)이 수학여행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편의점사장(김희원)이 아르바이트비를 제대로 안 주는 것, 그리고 태영이 편의점 유리창을 깼다고 오해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다. 수업 중 자던 학생도, 딴짓하던 학생도 TV화면에 초집중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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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비 못 받았을 때 잠이 안 오더라고. 억울해서. 엄마가 내 억울함을 풀어줬어."(태영)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 노동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돈을 얻기 위해서는 노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을 했는데, 돈을 안 줬다. 그 억울함은 당연히 잠이 안 올 만하다. 

결국 경찰서에 가게 된 태영과 편의점사장. 선희가 경찰서로 달려오고, 편의점사장은 선희를 보자마자 소리친다.

"긴 말 할 것 없고. 유리문 작살난 거, 나 오늘 영업 못 한 거, 전기요금, 수도요금, 싹 다 변상해!"

그리고 선희가 말하려는 찰나에 난 일시정지를 누른다. 학생들은 왜 지금 일시정지를 누르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끊지 말고 계속 보여달라는 것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무엇이 문제고, 무엇이 불편한지 묻는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활발히 얘기하는 학생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있다. 그러나 얘기를 나눈 후, 편의점사장을 향해 선희가 얘기하는 장면을 보여주면 하나같이 다들 말한다.

"와! 완전 사이다야!"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시원하게 얘기하는 선희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애환 그린 영화 <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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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트>는 전태일 열사 44주기인 2014년 11월 13일 개봉했다. 지난 2007년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직 파업을 모티브로 한 영화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애환을 다뤘다.

선희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은 뭐든 다 했고 5년 동안 벌점 한 점 없었다. 그런 선희에게 직장동료 혜미(문정희)가 묻는다.

"안 힘드세요? 날마다 그렇게 연장하시면..."
​"힘들긴요, 어차피 마트일인데요."


자신의 연장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해도 선희는 마트일이니깐 상관없이 모두 받아안고 일한다. 그런 선희에게 마트는 '정규직'을 약속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문자로 통보된 부당해고'였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보장된 노조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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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카트> 스틸 컷

영화 <카트> 스틸 컷 ⓒ 리틀빅픽처스


우리나라 헌법 제32조 3항에는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되어 있다. 제33조 1항에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노동자의 노동3권이라고 부른다.

네이버 지식백과의 설명을 인용해 노동3권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단결권은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는 권리이고, 단체교섭권은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을 대표해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와 교섭할 수 있는 권리이다. 단체행동권은 노동자가 사용자에 대항해 단체적 행동을 할 수 있는 권리이다.

영화 속, 문자로 통보된 부당해고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혜미는 말한다.

"혼자서 아무리 회사에 말해 봐야 씨도 안 먹혀요. 우리 그날 복도에서 봤잖아요. 우리가 한꺼번에 덤비니깐 최 과장이 당황하잖아요.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해요."

그 자리에 모인 마트 노동자들은 처음으로 노동조합 가입 신청서를 받아든다. 떨리는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있지만, 노동조합을 만들어 노동조합이 교섭을 요구했는데 회사측이 임하지 않으면 불법이라는 얘기를 듣고,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교섭대표도 선출한다.

그러나 회사측은 무시와 탄압으로 일관한다. 영화 <카트>는 현실에서 나타나는 회사측의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을 여실히 보여준다.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 교섭장에 나타나지 않는 모습,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체인력 채용으로 대응하는 모습, 경찰을 동원해 파업 참여 노동자들을 연행하는 모습, 구사대가 농성장을 무자비하게 철거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 거액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하는 모습,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모습, 노동조합 위원장을 자극해 폭력을 유발하는 모습 등.

영화 <카트>에서만이 아니다. 헌법에 보장된 당연한 권리가 현실에서도 이렇게 짓밟히고 있다.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인데 말이다.

내 존엄이 짓밟힌다고 느낀 차별의 장면들

영화 <카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그래서 그런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잘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부당하고 억울한 장면이 나오면 내 감정 또한 함께 동화됐다.

"반찬값이나 벌자고 나온 여사님들을 누가 꼬셔가지고, 참..."
"저 생활비 벌러 나와요. 반찬값 아니고."


남성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그런 남성이 버는 임금은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생활비이고, 여성은 가족을 돌봐야 하고 그런 여성이 버는 임금은 반찬값 취급을 당한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똑같이 일하는데 성별에 따라 차별이 존재하는 모습, 우리 사회 성역할고정관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여사님~", "아줌마~"

우리 사회에서 보통 '아줌마'라고 하면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여성을 말한다. 그것도 의미 가치가 떨어져 비칭(卑稱)에 가깝게 쓰인다. '아줌마'라고 불리면 불쾌해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또 그 '아줌마'를 존대해 부르는 호칭이 '여사님'이다.

'아줌마'든 '여사님'이든 듣기 좋지 않다. 기본적으로 마트 직원은 회사측과 정식으로 근로계약을 맺은 노동자다. 그런데 비정규 저임금 일자리에 노동하는 여성노동자를 그에 맞는 호칭으로 부르지 않는다. 첫 번째 불편함이다. 두 번째 불편함은 모든 여성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데도 그런 의미를 담은 단어를 모든 여성에게 사용한다. 세 번째 불편함은 직업의 귀천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교수나 의사에게 여사님이나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항상 '을'입니다

보자마자 숨 막히는 듯했다. 소위 갑의 갑질 때문일까? 갑과 을의 관계를 얘기할 때 갑에 대한 분노가 높아지고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을이라고 지정하는 게 싫어지는데, 우리는 항상 '을'이라니? 불평등을 당연하게 여기라는 것인가? 194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제1조에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고 선언했다. 2020년인 지금, <우리는 항상 '을'입니다>라는 문장은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무릎 꿇고 사과해!"

바로 앞서 말한 갑과 을의 위치를 선명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 여기에 을의 존엄은 없다. 부당하고 억울함은 나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냥 삼켜야 한다. 그렇다고 갑의 존엄은 있는가? 누구 위에 군림하고 굴복만 시키면 되는 존엄. 그 존엄이 우습다.

"회사가 언제 말로 해서 들어준 적 있어요? 여기만 봐도 알잖아요. 보일러실 옆에다 판자때기로 막아가지고. 난방은 안 되지. 여름에는 꼴랑 선풍기 두 대."

우리 동네 아파트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이 오버랩됐다. 지난 6월 코로나19로 고생하는 노원지역 아파트 청소노동자들에게 마스크를 배부하는 활동을 했었다. 그 때 아파트 청소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각 아파트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을 찾아갔는데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지하에 있었다. 지하도 너무 어두컴컴해서 여기에 휴게공간이 정말 있나 싶을 정도의 의문을 품고 휴게공간을 찾아야 했다. 휴게공간도 인원에 비해 좁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당한 노동자, 존엄한 인간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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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카트> 스틸 컷

영화 <카트> 스틸 컷 ⓒ 리틀빅픽처스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해 나가면서 이 사회와 회사의 부당함을 온몸으로 겪은 선희는 이제 이전의 선희가 아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저기 저 계산대에서 바보같이 일만 했던 제가 이렇게 여러분 앞에 소리치고 있습니다. 저희가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닙니다. 이렇게 외치는 저희를 좀 봐달라는 겁니다. 저희의 얘기를 좀 들어달라는 겁니다. 저희를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아 달라는 거예요. 저희가 바라는 건 사람 대접 받는 거, 하나입니다."

전태일 열사도 그랬다. 전태일 열사는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노동실태를 조사해 시청과 노동청에 진정을 냈지만 돌아오는 건 조롱과 냉소뿐이었다. 전태일 열사는 죽음으로써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렸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은 2020년. 지금은 어떠한가. 아직도 투명인간 취급 당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movie1998)에도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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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때부터 노원에 살고, 20살 때부터 함께 사는 세상과 마을을 위해 글쓰고 말하고 행동하고 음악도 하는 활동가 박미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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