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 이경미 감독 인터뷰 사진

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 이경미 감독 인터뷰 사진 ⓒ Netflix

 
"제가 갑자기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고 하면 더 나빠질 것 같다. 저는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지난 9월 2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은 지극히 이경미다운 작품이었다. 화려한 색감, 개성 넘치는 아이디어, 독특한 연출까지 이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곳곳에 녹아 있는 결과물이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지금 <보건교사 안은영>은 충분히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는 중이다. 

6일 오후 온라인 화상채팅을 통해 이경미 감독을 만났다.

지난 2015년 발표된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에 이경미 감독의 각색을 거쳐 완성된 <보건교사 안은영>은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보건교사 안은영(정유미 분)이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는 고등학교에서 한문교사 홍인표(남주혁 분)와 함께 아이들을 구하는 판타지 드라마다. 

이 감독은 각색 과정에서 히어로 영화의 프리퀄(오리지널 영화에 선행하는 사건을 담은 속편) 형식으로 '여성 히어로' 안은영의 성장드라마로 방향을 정하게 됐다고 했다. 이는 안은영이 소시민적이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원작을 여성 히어로물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한국에 여성 히어로물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저는 영상물을 볼 때 독립적이고 포기하지 않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여자들을 좋아한다. 안은영의 그런 점이 여성 히어로로 완성되면 멋있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안은영에게 영웅심리 같은 게 있었다면, 되게 재미없었을 것이다. 부족하고 소시민적인 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점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친근하게 (시청자들에게) 와닿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랑스럽기도 하고."
 
이경미 감독이 시청자 반응에 가장 먼저 내뱉은 말
 
 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 스틸 컷

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 스틸 컷 ⓒ Netflix


<보건교사 안은영>은 공개 직후 넷플릭스 스트리밍 상위권에 안착하며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해외에서도 신선한 한국형 판타지를 발견했다는 호평이 쏟아지는 중이다. 이경미 감독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고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이 "살았다"였다고 털어놨다. 그가 이번 작업에 임하며 느꼈던 부담을 고스란히 전하는 한 마디였다. 

앞서 영화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등을 통해 '이경미 장르'를 구축해왔던 이 감독이지만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가"에 위축될 때도 있었다고. 그는 "작품을 만들 때 '너무 미움 받으면 어떡하지, 다음 작품을 못 만들면 어떡하지' 두려워 한다. <보건교사 안은영>이 공개되고 리액션들을 읽으면서,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가를 역시 많이 봤다. 그럼에도 아주 많이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은 이경미 감독의 연출적 특징으로 여배우의 눈빛을 꼽는다. <미쓰 홍당무>의 공효진, <비밀은 없다>의 손예진 등 이경미 감독의 작품에 등장한 여성 배우들은 대부분 어딘가에 미쳐있는 듯한 독특한 눈빛을 보여준다는 것. 이번 <보건교사 안은영> 속 정유미 역시 그동안 본 적 없었던 광기에 가까운 얼굴로 안은영을 구현해냈다. 

그러나 이경미 감독은 이에 대해 "촬영장에서 배우들에게 특별한 디렉팅을 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그렇지만 제가 배우에게 디렉션을 많이 주는 편이 아니다. 다만 정유미의 사랑스럽고 만화적인, 재미있는 얼굴을 많이 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그런 그림이 나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 감독은 '이경미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부분에 대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 캐릭터의 재미있는 면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저는 지루하거나 반복적인 걸 싫어하고, 여자 캐릭터가 작품 안에서 너무 예상 가능하게 움직이는 것도 재미없다. 말을 잘 듣는 것도 재미없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보고 싶다. 워낙 그런 사람들이 많으니까. 저도 모르게 다른 작품에서 보이지 않는, 여자 캐릭터의 재미있는 면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닐까. 저는 광기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그렇게 되더라.

제가 작품을 만들 때 이경미다운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뭔가 하지는 않는다. 제가 재미있고, 누구한테 보여줘도 창피하지 않은 어떤 것을 만들 뿐이다. 아마도 제 이야기 속에 인물들은 말을 잘 안 듣는 사람들이고 제가 만드는 작품 역시 이렇게 해야 한다는 문법을 성실하게 따르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그걸 이경미스럽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컷 배열을 기대를 배반하게 한다든지, 지루한 것을 절대 못 참는 저의 성격에서 나오는 부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듣게 만들지 않나 싶다."


소설에는 없는 설정 두 가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 이경미 감독 인터뷰 사진

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 이경미 감독 인터뷰 사진 ⓒ Netflix

 
많은 원작 팬들은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과 소설의 차이점으로 좀 더 잔인하게 묘사된 현실을 꼽기도 한다. 예를 들어 드라마에서 젤리의 영향을 받은 선생님들이 성소수자 학생들을 비웃고 조롱하는 장면은 소설보다 훨씬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농구부 학생들이 가난한 친구를 괴롭히고, 급식소에서 친구들을 비난하며 미친듯이 웃어제끼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이경미 감독은 "소설은 시리즈(영상)보다 훨씬 따뜻하고 성숙하다. 하지만 안은영의 성장에 집중해서 보여주기 위해 그를 둘러싼 세계가 얼마나 험난한 세상인지 설명해야 하는 건 불가피한 설정 중에 하나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감독은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세상이 훨씬 더 잔인하다"며 그 잔인함 속의 메시지를 봐 달라고 당부했다.

"제가 실제로 보는 세상은, 영상에서 보여주는 세상보다 더 폭력적이고 잔인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리즈의 수위가 충격적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훨씬 잔인하니까. 그래서 제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부분은 이런 잔인한 세상에서 이 이야기가 가진 입장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얼마나 잔인한가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잔인한 걸 보여주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시청자가) 캐치해주길 바랐다."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을 6편 내외의 영상으로 소화하려다 보니 미처 담지 못한 부분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경미 감독은 아쉬운 에피소드 중 하나로 생명과학 교사 한아름(이주영 분)의 이야기를 꼽았다.

그는 "원작 소설을 읽고 오리들을 키우게 되는 한아름 선생님의 에피소드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걸 살리고 싶어도, 시리즈가 6부작으로 끝나야 하기 때문에 한아름 선생님의 이야기를 넣을 자리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러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선택은 바로 오리였다고. 극 중에선 학교에 무슨 일이 벌어질 때마다 흰 오리들이 뒤뚱뒤뚱 교정을 거닐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감독은 "제가 얼마나 한아름 선생님의 이야기를 좋아했는지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오리 만이라도 (학교에) 돌아다니게 하자 싶었다. 한아름 선생님의 에피소드를 좋아하는 팬이 계신다면, 그 오리구나 하고 알아봐주실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드라마에선 극적 긴장감을 위해 원작 소설에 없었던 설정들도 더해졌다. 지하실의 미스터리에 얽힌 단체인 일광소독과 안전한 행복의 대립이 대표적이다. 특히 젤리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단체인 안전한 행복은 올해 초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특정 사이비 종교 단체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반응도 많다. 이경미 감독은 안전한 행복의 존재에 대해 "우연히 보게 된 민간 단체 홈페이지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털어놨다. 

"한 민간 단체 홈페이지를 봤다. 평범한 인간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초자연적인 생물체들을 관리하고 인간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데, 정말 그 단체가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사이트에는 꽤 자세하게 초자연적 생물체들의 분류표가 나와 있었다. 안은영이 한때 이런 단체에 속해 있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서 안전한 행복을 만들었다.

사이비 단체처럼 묘사한 이유는 사이비 종교 단체의 모습이 굉장히 한국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 깊이 들어와 있는 풍경이고 우리나라만의 모습이지 않나. 각본 단계에서 안전한 행복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내부에선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도 이미 썼다. 그런데 정해진 회차와 예산으로 다 찍을 수가 없어서 일단은 뒤로 미뤘다."


"표현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곳"
 
 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 스틸 컷

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 스틸 컷 ⓒ Netflix

 
<보건교사 안은영>에는 "피할 수 없으면 당해야지"라는 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은영의 중학교 동창 김강선(최준영 분)이 한 말이지만, 은영은 자신 앞에 놓인 운명을 받아들이며 이 말을 되뇌인다. 이 대사 역시 소설 원작에는 없었던 내용이다. 이경미 감독은 이번 작품을 준비하던 도중 하차를 결심했던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으며 강선의 에피소드와 대사에 자신의 경험을 녹였다고 밝혔다.

"팀을 꾸리고 작업도 진행하고 캐스팅도 다 된 상태에서 촬영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중도 하차를 결심한 적이 있었다. 개인적인 아주 슬픈 일이었는데, 결국 이 작품을 다시 마무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그 과정에서 겪은 일이 저한테 그 대사(피할 수 없으면 당해야지)를 쓰게 만들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라고 세상은 말하지 않나. 피할 수 없는데 당할 수밖에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강선의 시퀀스는 제게 의미가 되게 깊은 장면이다. 5부 에피소드에도 내 경험이 담겨 있다. 영원한 이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시간들이었고 그 경험은 제가 그리는 은영과 강선의 이야기에 영향을 줬다. 정말 의지하던 사람과 영원한 이별을 하는 게 어떤 마음인가, 얼마나 찢어지는 고통인지 경험하면서 안은영의 성장드라마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줬다."


한편 이경미 감독은 지난 2018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페르소나> 이후 2년 만에 다시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 이 감독은 넷플릭스와의 작업에 대해 "표현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안정적인 자본을 지원하되, 간섭은 최소화 하는 넷플릭스의 특성을 그대로 표현한 말이었다.

이어 그는 "(창작자에게) 표현의 자유가 어떤 의미인지, 결과물을 보시면 알 것이다. 극장용 상업 영화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며 "개성이 강한 면을 좋게 봐주고 자신감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전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좋은 점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경미 감독은 관객의 시청 환경을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가장 아쉬웠다고 토로했다.

"이건 넷플릭스 플랫폼의 아쉬운 점이기도 한데, 저는 모든 시청자의 환경을 알 수 없다. 이 작품은 어두운 장면이 많아서 빛을 차단하고 보셔야 보이는 그림이 있는데,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이걸 알릴 수가 없다. 사운드 면에서도 재난 장면이라든지, 사운드로 꽉 채워줘야 하는 시퀀스가 있는데 극장용이 아니니까 이걸 편안하게 구현할 수 없었다. 제가 사운드 볼륨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다양한 매체 환경을 고려해야 하고, 심지어 귀가 어두운 사람도 있고 예민한 사람도 있지 않나. 하물며 좋은 스피커로 듣는 사람, 안 좋은 스피커로 듣는 사람도 있다. 최악의 환경에서도 보고 들을 수 있는 레벨을 맞추기 위해서 최대한 안전한 소리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 부분이 영화와 다르기도 했고 또 아쉬웠다."

2008년 <미쓰 홍당무>, 2016년 <비밀은 없다>, 다시 2020년 <보건교사 안은영>까지(2018년 <페르소나>가 있었지만 20분 내외의 단편 영화라서 제외). 이경미 감독은 늘 팬들이 아주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있는 감독이었다. 이 감독 역시 "<비밀은 없다>를 8년 만에 만들고, 더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그러나 "정말 미친듯이 일을 하고 <보건교사 안은영>이 나왔는데 어느새 4년이 지났더라. 저는 더 빨리빨리 만들고 싶었다"며 어쩔 수 없는 현실의 한계를 털어놓기도 했다. 호러 영화, 또다른 원작소설의 영상화 등 다양한 아이템을 놓고 차기작을 고민 중이라는 이경미 감독은 "이번엔 꼭 오래 걸리지 않게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미쓰 홍당무>를 만들었을 때 저를 '올해의 발견'이라고 평가해주신 기사를 봤다. 8년 뒤에 <비밀은 없다> 때도 또 '올해의 발견'이라고 하더라. 나는 왜 자꾸 발견되는 거지? 싶었다.

<보건교사 안은영>도 새롭다는 맥락에서 '올해의 발견'이라고 해주시던데, 조금 보람찬 부분이 있다면 제 (영화적) 언어들을 흥미롭게 봐주시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 작품 만드는 데 예전처럼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 기회가 될 때 많은 작품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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