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가 살이 쪘다>의 한 장면

<내 아내가 살이 쪘다>의 한 장면 ⓒ 반지하살롱

 
추석연휴가 끝났다. 주부 입장에서 가족들과 몇 날 며칠을 함께 해야 하는 명절은 언제나 고달픈 시간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어디 안 가고 집에만 있었는데, 명절이 지나고 나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꼭 '살'이란 단어가 언급된다. 겨우 며칠 사이에 살이 쪘다더라는 식이다. 왜 주부들은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살이 찔까? 그 이유를 '사랑스럽게' 풀어낸 단편 영화 <내 아내가 살이 쪘다>가 지난 2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됐다. 

이 작품은 12분 분량의 단편 영화다. 이 작품은 우리에겐 배우로 더 친숙한 류덕환의 연출작이다. '감독 류덕환'이 약간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그는 앞서 2012년 <장준환을 기다리며>, 2015년 <비공식 개강 총회> 등을 연출한 바 있다. 

영화는 체중계에 올라 늘어난 자신의 몸무게를 확인하고 비명을 지르는 아내이자 엄마(장영남 분)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목욕탕에서 잰 몸무게와 다르다며 늘어난 몸무게를 잘못된 체중계 탓으로 돌린 아내는 그것도 잠시, 밥을 먹자며 부엌으로 향한다. 

식구들의 저녁을 준비하던 중 아내는 칼질을 하다 연신 입으로 무언가를 넣는다. 그게 끝일까? 찌개를 끓이던 아내는 맛을 본다며 찌개 국물이며 건더기를 먹는다. 간이 안 맞아서 물을 더 부으니, 다시 또 간을 봐야 한다. 이미 찌개가 상에 올라가기 전에 엄마의 배가 찰 정도로. 거기서 끝일까? 

온가족이 함께 한 외식에서 남은 등갈비를 알뜰하게 싸가지고 온 아내는 다시 데워 식구들에게 권한다. 하지만 식구들은 '집에서 먹으면 맛이 없다'는 둥, '시간이 없다'는 등 변명하며 내빼기 바쁘고, 결국 그 '남은'것들은 그걸 남길 수 없는 아내의 입으로 들어간다. 

여느 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상황이지만, 류덕환 감독은 그 지점에서 '아내의 살'에 대한 개연성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여기까지만 봐도 아내가 살이 안 찌는 게 이상하다. 집집마다 한 입 더 먹으라는 아내와 먹기 싫다는 식구들, 버리는 게 아깝다는 아내와 그냥 버리라는 식구들의 실랑이야 너무도 익숙한 구도이니까. 심지어 영화 속 아내는 강아지가 저지레한 초콜릿까지 수거해 자신의 입에 넣는다. 

그런데 여기서 류덕환 감독은 아내이자 엄마의 '살'에 개연성을 한 술 더 보탠다. 가족이 거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던 중 과자 봉지를 쥔 막내가 장난을 치다 온 바닥에 쏟아버린다. 빨래를 개던 아내는 아연실색하며 장난을 친 막내를 야단치지만 결국 애정어린 포옹으로 마무리된다. 화해의 기념으로 엄마에게 과자 하나를 건네는 막내. 하지만 엄마가 "살쪄"라며 거절하자, 재치넘치게도 막내는 과자 끄트머리를 조금 잘라 엄마의 입에 넣어준다. 

과자를 먹어본 사람은 아마도 알 터이다. 그 손톱만한 조각이 입에 들어와 녹는 순간의 달콤함이 주는 유혹을, 결국 그 유혹에 넘어간 엄마는 "이거 맛있는데 더 주지"라며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입에 넣는다.  

엄마의 살은 사랑이다
 <내 아내가 살이 쪘다>의 한 장면

<내 아내가 살이 쪘다>의 한 장면 ⓒ 반지하살롱


류덕환 감독이 <내 아내가 살이 쪘다>를 통해 정의한 엄마이자 아내의 '살'은 '사랑'이다. 식구들을 위해 애써 음식을 준비하고, 하나라도 더 먹이려는 과정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입에 넣는 것들이 결국 엄마의 살이 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추석과 같은 명절을 지내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엄마들의 몸무게 뒷자리가 달라지는 이유다. 

엄마는 연신 살 찐다고 되뇌지만, 음식으로부터의 '거리 두기'가 되지 않는다. 늘 엄마의 주변을 둘러싼 음식들, 그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류덕환 감독은 '주부의 살'에 대해 애정어린 고찰을 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을까? 감독이 선택한 해답 역시 '사랑'이다. 영화는 줄곧 남편(김태훈 분)의 시선으로 엄마를 지켜본다. 그간 많은 드라마에서 '서늘한 캐릭터'를 연기해 온 김태훈이지만, <내 아내가 살이 쪘다>에선 좀 다르다. 살이 쪘다며 혼비백산하는 아내에게 "그대로인데"라고 하는 남편. 그리고 음식을 하다 집어먹고, 남긴 음식을 아깝다며 먹고, 심지어 개가 저지레한 음식까지 먹는 아내를 줄곧 애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던 남편은 결심한다.

'안되겠다! 나도 노력해야겠다'  

남편의 노력은 무엇이었을까? 아내가 찌개를 끓이다 간을 보려고 하면, 자신이 뛰어가 간을 본다. 엄마가 차려놓은 음식을 안먹고 내빼는 아이들을 불러모아, "너네가 안먹으면 엄마가 먹게 된다"며 먹인다. 아들이 엄마 입에 넣어주는 과자를 대신 먹기 위해 아빠는 슬라이딩을 한다. 그 결과? '아빠가 살이쪘다'.

영화는 우리네 생활 속 '주부의 살'이라는 사소한 사건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따라간다. 아마 거기서 멈췄다면 그냥 '살'에 대한 보고서가 됐을 것이지만, 영화는 아빠가 살이 쪘다라는 반전 아닌 반전을 통해, '주부'라는 타이틀이 가진 짐에 대한 혜안을 제시한다. 영화 속 아빠는 엄마가 살이 찔까봐 음식을 대신 먹는 노력을 하지만, 결국 그건 주부라는 역할을 나누오 짊어지는 것과 같다. 

아무리 주부의 역할을 덜어낸다 해도 각자 저마다의 생활이 뚜렷해져가는 상황 속에서 그 역할의 나눔이라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아내가 살이 쪘다> 속 아내를 대신해서 기꺼이 살이 찔 각오를 한 남편의 자세라면 주부의 짐도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나누어지는 '살'이 아니라, '짐'이다. 
 
 <내 아내가 살이 쪘다>의 한 장면

<내 아내가 살이 쪘다>의 한 장면 ⓒ 반지하살롱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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