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말]
tvN 월화드라마 <청춘기록>을 보고 있노라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진다. 드라마의 큰 줄기인 혜준(박보검)-정하(박소담)의 연애담은 귀엽고,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려는 젊은이들이 노력은 흐뭇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나를 가장 미소짓게 하는 건 바로 혜준과 해효(변우석)의 우정이었다. 전혀 다른 계층에서 태어난 두 사람이 오랜 시간 우정을 이어가고, 심지어 같은 여자를 사랑하면서도 질투에 빠지지 않는 모습이 무척이나 신선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회가 거듭될수록 마음이 조마조마해왔다. 혜준의 어머니(하희라)가 해효네 가사도우미로 일한다는 설정이 보여주듯 확연한 계층적 차이를 지닌 이 두 사람. 현실에서 계층의 차이가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익히 보아온 나는 이들의 우정이 어딘지 불안 불안하기만 했다. 마침내 10회. 우려하던 장면이 나왔다. 혜준의 승승장구가 시작되자, 해효는 부모님께 더 심한 압박을 받고, 결국 "혜준이랑 비교당하는 거 너무 싫어!"라고 항변한다. 해효는 여전히 혜준의 성공을 축해주었지만, 왠지 이들의 그 결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완전히 다른 사회경제적 지위와 가정환경에서 자란, 일명 '금수저'와 '흙수저'인 두 젊은이. 과연 혜준과 해효의 우정은 앞으로도 무탈할 수 있을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90년대 생 젊은이들의 일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청춘기록'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90년대 생 젊은이들의 일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청춘기록' ⓒ tvN

 
사회계층이 개인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

혜준과 해효는 한남동에서 함께 초등학교를 다닌 오래된 친구다. '한남동'은 "집이 한남동이에요? 다 부잣집 도련님들이구나?"(3회, 미용실 원장)라고 대뜸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대한민국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이다. 

하지만 한남동이라고 해서 모두 부자들만 사는 것은 아니다. 혜준은 한남동에 살지만, 화려한 빌라가 아닌 평범하고 오래된 주택에 산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절을 보낸 혜준의 아버지 영남(박수영)은 남자라면, 성실히 일해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아간다. 혜준은 배우로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영남에게 이는 '허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반면 해효는 대학 이사장인 아버지와 미대 교수 출신 어머니를 둔 전형적인 '부잣집' 도련님이다. 사립학교 아닌 공립학교를 다녀 혜준 같은 친구를 사귀었다고 한탄하는 엄마 이영(신애라)과 "남잔 여러 계층을 경험해야 해. 같은 계층하고만 어울리면 시야가 좁아져서 안돼"라고 말하는 아버지 태경(서상원). 이들에게 꿈은 당연히 누려야 하는 일종의 '특권'이다. 이들은 이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녀들을 자신들의 계획대로 조련한다. 

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계층적 요소가 한 개인의 정체감과 세계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속한 계층에서 일반화된 생각, 행동, 가치, 언어는 한 사람의 정체감은 물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좌우한다. 억압받는 계층은 억압을 내면화하고, 특권층은 특권을 내면화한 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영남이 노동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영이 대접받는 걸 당연히 여기는 모습 등은 속한 계층이 만들어낸 태도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아마도 혜준과 해효가 계층의 영향에 자신의 삶을 가두었다면, 이들은 서로 친구가 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혜준은 '생계 부양자로서의 역할이 우선'이라는 영남의 생각을 내면화해, 자신의 꿈을 억누른 채 부모가 요구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반대로 해효는 부모가 만들어 준 특권을 '당연하게' 여기며 혜준을 동등하게 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참 다르다. 드라마에서 혜준과 해효는 모두 26세다. 90년대 생의 특징을 분석한 책 <90년생이 온다>에서는 이들 세대의 특징을 '간단함, 재미추구, 정직함' 이 세 가지로 요약한다. 이들은 인터넷으로 빠르게 지식을 습득하고 재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쓴다. 또한 공정성과 투명함에 기반을 둔 '정직함'을 추구한다. 이 같은 특징들은 이들이 기존세대의 가치관을 거부하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혜준과 정하가 '라떼는~'이라며 기성세대를 희화하는 장면들은 이들의 세대적 특징을 잘 보여주었다.

때문에 혜준과 해효는 자신의 계층적 특징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혜준은 아버지와 달리 내게도 '꿈을 이룰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해효는 자녀들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부모에 맞서 "내 힘으로 이룰거야"라고 항변한다. 게다가 혜준에겐 자신의 삶과 자녀들의 삶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엄마 애숙이 있다. 애숙은 해효네서 일하게 되었을 때 혜준에게 솔직히 말하며 '너의 삶과 엄마의 삶은 다른 것'이라 알려준다. 또한 애숙은 가사도우미 일을 '당당하게' 여기며 "이 일을 하면서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이런 애숙의 태도는 혜준으로 하여금 '수저계급론'에서 간과한 '가치'를 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했을 것이다. 4회 혜준은 이렇게 말한다. "수저계급론엔 정신이 없다. 내가 부모로부터 받았던 안정감, 정직, 순수함 이런 가치가 없다. 부모가 받는 고통을 보면서 다짐했던 성취동기도 없다"고. 그리고 잘 나가는 해효를 볼 때마다 이렇게 다짐한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이는 해효와 자신을 상대적으로 비교하지 않고 서로 '다른 것'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겠다는 의미다.  때문에 혜준은 해효의 그늘에 가려 있을 때도 부러움 혹은 시기심에 발목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청춘기록' 혜준과 해효는 극명히 다른 성장배경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이어간다.

'청춘기록' 혜준과 해효는 극명히 다른 성장배경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이어간다. ⓒ tvN

 
"혜준이랑 비교당하는 거 너무 싫어" 

그런데 해효는 다르다. 해효의 어머니 이영은 해효 몰래 SNS팔로어를 늘리고, 감독과 기자들을 만나며 아들을 성공시키기 위해 애쓴다. 해효는 이런 부모에게 "내 힘으로 하겠다"며 항변한다. 하지만, 부모의 경제력과 권력은 해효가 알아채기기도 전에 늘 해효의 노력을 앞서간다. 

10회에 이르러서야 해효는 자신의 어머니가 해왔던 일들을 하나 둘 알아간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더욱 절망한다. 그가 자신이 이룬 성취가 부모덕임을 알아가는 사이, 혜준은 스스로의 힘으로 꿈을 이뤄간다. 해효는 그토록 자신이 원했던 가치 즉 '독립과 자율'을 통해 성공을 얻는 혜준이 무척이나 부러웠을 것이다. 

게다가 해효의 부모는 해효가 찬찬히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단지 혜준에게 뒤쳐졌다는 이유로 그를 실패작 취급한다. 아들의 인생을 자신의 것인양 '경영'했으면서 원하는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자, 그 책임은 해효에게 묻는다. 이는 해효에게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10회 먹은 것을 토해낼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이제 '흙수저' 사혜준과 '금수저' 한해효의 위치는 전복되고 말았다. 자신의 가치를 지켜낸 혜준은 상대와 나를 분리시킴으로써 열등감과 박탈감에 빠져들지 않고 올곧이 자신을 성장시켰다. 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모에게 이끌렸던 해효는 혜준이 자신을 앞지르기 시작하자 무척이나 당황한다. 늘 많이 갖고 앞서기만 했던 해효에게 이런 경험은 더 낯설고 견디기 힘들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 하는 부모에 대한 분노 역시 만만찮을 테다. 

아마도 해효의 이런 박탈감과 분노가 혜준에 대한 시기심으로 이어진다면 그토록 흐뭇했던 둘의 우정엔 금이 가고 말 것이다. 때문에 나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런 순간이 다가올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 해효는 자신이 느끼는 심리적 박탈감과 분노의 화살을 혜준에게 돌릴 마음이 없어보인다. 10회 신인상 수상에 실패한 해효는 또다른 '절친' 진우(권수현)와 대화를 나누다 이렇게 묻는다. 

"혜준이 나랑 비교돼서 힘들어 했냐?" 
 
이는 자신이 느끼는 열등감을 '혜준'탓으로 돌리기 보다는 오히려 이를 통해 혜준의 입장을 헤아려보고 있음을 의미하는 대사였다.

해효의 이같은 '역지사지'의 태도가 현재의 박탈감과 분노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어줄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입장 바꿔 생각하면',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를 실천하는 이들의 모습이 계층 차이를 조장해온 기성세대들에게도 귀감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의 우정이 끝까지 무탈하기를, 그래서 계층이 주는 억압으로부터 관계를 지키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를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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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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