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그린랜드> 포스터

영화 <그린랜드> 포스터 ⓒ 조이앤시네마

 
삶은 평이한 하루하루가 모여 만들어진다. 사고나 범죄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그 일상에선 가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만큼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중요하다. 낯선 사람을 진정으로 믿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엮이는 가족과는 대부분 강한 신뢰로 묶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다수 가족은 어려움이 닥칠 때면 서로를 보호해주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커다란 재난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되면 많은 사람들은 동요할 것이다.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건 자신의 옆에 있는 가족이 살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방법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방법에 다가가도록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가족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의 가족을 위하지만 다른 가족들도 소중하기에 최소한의 도덕적 판단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재난 상황에서 누군가는 가진 권력을 이용해 그 상황을 타개하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 권력을 어떤 방법으로든 빼앗으려고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다양한 삶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재난은 이렇듯 의도치 않게 자신 주변인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자신이 정말로 가고자 하는 방향을 깨닫게 만들기도 한다. 

혜성 충돌 재난 상황을 그리는 영화 <그린랜드>
 
 영화 <그린랜드> 장면

영화 <그린랜드> 장면 ⓒ 조이앤시네마

 
영화 <그린랜드>는 갑자기 나타난 혜성 무리들과 지구가 충돌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겪는 일들을 세세하게 담은 작품이다. 클라크라는 이름의 혜성 파편들 중 일부가 지구로 향한다는 소식을 TV 뉴스로 보던 존(제라드 버틀러)과 아내 앨리슨(모레나 바카린), 아들 네이선(로저 데일 플로이드)은 자신들이 정부가 뽑은 피난 대상자로 선정되었단 소식을 접한다. 이후 가족은 사람들을 태울 비행기가 있는 군부대 공항으로 향한다. 영화 초반 존의 가족은 무척 운이 좋아 보인다. 전 인류가 멸망할 가능성도 있는 재난 상황에서 존의 가족은 선정자를 알리는 QR코드 하나만으로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을 부여받기 때문. 
 
그들 가족만 피난 대상자로 뽑혔다는 연락을 받고 공항으로 출발할 때,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 이웃들 눈빛은 절망 그 자체다. QR코드를 가지지 못한 이웃들은 울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며 존에게 감정을 토해내지만 이내 자신들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상황을 받아들인다. 떠나는 존에게 어디로 피난을 가면 되는 건지 그것만이라도 전화로 알려달라 부탁한 뒤 다시 집으로 향하던 그들은 바로 우리 주변 이웃의 모습이다. 그들은 아주 잠시 존을 원망하지만 다시 평정을 되찾고 살길을 고민한다.

존의 가족은 피난 대상자로 선정되어 QR코드를 받은 그 순간, 어떤 힘을 가진 상위 계급이 되어버린다. 자본주의 사회 계급은 돈이나 학력, 직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만들어지지만 재난 상황에서는 안전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이나 힘이 계급을 만들어낸다.

탈출로에 접근할 수 있는 선정 코드를 받은 사람들에겐 안전한 탈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그것을 받지 못한 이들은 도덕적인 기준을 무너뜨리면서까지 그것을 취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작은 디지털 코드가 만든 계급은 피난민들의 사이를 가르고, 사회 혼란을 더욱 키운다. 

작은 QR코드로 전달된 권력,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분열

존 가족이 공항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주변의 모습은 여타 재난 영화들에서 이미 많이 보아 왔던 장면과 비슷하다. 고속도로는 꽉 막혀 앞으로 갈 수 없고, 도착한 군부대 공항은 이미 피난 가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선정되지 못한 사람들은 데려가 달라고 외치고, 선정된 사람들은 인파를 헤치고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간다.

영화는 이 지점에 기존 재난영화와 다른 선택 하나를 넣는다. 만성 당뇨병 환자인 존의 아들 네이선은 주기적으로 인슐린이 필요한 환자다. 정신이 없어 차에 두고 온 인슐린을 다시 가지러 간 존은 아내-아들과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아내 앨리슨과 아들 네이선은 존을 기다리던 와중에 만성질환 환자는 비행기에 탈 수 없다는 사실과 선정 과정에 오류가 있었음을 알게된 뒤 공항 밖으로 내쫓긴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바로 존의 가족이 공항에 도착한 이후, 가족이 모두 공항 밖으로 나가게 되고 뿔뿔이 헤어지게 된 이후에 벌어진다. QR코드를 가진 특별한 계급에 속했던 그들은 네이선이 만성질환자라는 사실 때문에 그 권리를 박탈당하게 되고, 한순간에 평범한 다른 이들처럼 개인적으로 살길을 도모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 

영화는 그들이 서로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후부터 매우 긴박하게 진행된다. 우주에서 혜성이 떨어진다는 설정의 재난 영화임에도 그 우주적 재난 상황 묘사에 집중하기보다는 존과 가족이 다시 만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무엇보다 재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다양한 상황과 장면들로 보여준다. 존과 가족들은 자신들이 피난민 선정자라는 것을 인증하는 스티커 팔찌를 한 채로 돌아다니는데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도움을 주고자 접근한 낯선 이들은 결국 그 작은 스티커 때문에 나쁜 마음을 먹는다.

생존을 위해 위험한 결정을 하는 난민이 된 사람들
 
 영화 <그린랜드> 장면

영화 <그린랜드> 장면 ⓒ 조이앤시네마

 
존과 앨리슨은 영화 중반 논쟁을 벌이다 재난을 피하기 위해 무엇이든 다 해보자고 한다. 그건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들이 택한 선택이다. 이들의 모습은 내전 중인 나라에서 생존을 위해 타국으로 향하는 난민들을 떠올리게 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작은 삶의 기회라도 찾아보려 애쓰는 존의 가족처럼 난민들도 작은 빛을 보고 나설 것이니까. 존 가족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삶의 길로 필사적으로 달려간다. 그들이 향하는 길에서 생존할 확률은 50대 50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길을 떠난다.

영화 속 '그린랜드'는 재난을 피할 수 있는 벙커 중 한 곳으로 묘사된다. 존의 가족은 그곳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못 들어갈까 걱정하는 아내에게 존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들어가게 할 테니까 그린랜드로 가요."   

그의 그런 외침은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죽음과 그랜랜드에서의 삶 두 가지밖에 없다. 존의 이런 말은 현실 가능성은 떨어질지언정 가족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누구나 속하고 싶어 했던 최상위 계급에서 한순간 난민이 된 존의 가족은 재난 속에서 가족간 신뢰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찾아간다. 

영화 <그린랜드>에는 거대한 스케일의 재난 묘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예산 문제를 배제할 수 없겠지만, 영화가 집중하는 부분이 재난 앞에 선 한 가족의 심리, 상황에 대한 묘사다. 급격하게 변하는 상황에서도 가족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서로를 찾아 달리고 구르는 장면은 최근 등장한 그 어떤 재난 영화보다 더 속도감과 긴박감을 선사한다. 

특히 이 작품이 더 와닿은 이유는 지금 우리의 상황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이들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렇기에 절망 앞에 선 영화 속 가족의 모습은 많은 공감을 자아낸다. 더불어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계급 갈등 심화나 가족 해체, 난민 같은 이슈가 영화에 잘 녹아 있어 보는 내내 흥미로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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