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포스터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포스터 ⓒ Netflix

 
미국 콜로라도주의 작은 마을에 어둠이 점점 짙어진다. 부엌 식탁에서 전자레인지에 데운 냉동식품을 먹고 있는 한 사나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유일한 설거짓거리인 포크와 물컵을 수세미로 닦는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루이스(로버트 레드포드)는 낡은 안락의자에 앉아 일기 예보를 알리는 텔레비전을 켜 놓은 채 신문을 뒤적거린다. 그날의 크로스 워드 퍼즐은 이미 다 맞추어 놓은 상태다.

한편 밖에서는 한 여인이 문 앞을 서성거리다가 결심이 선 듯 현관문을 두드린다.
둘은 어색하게 마주 앉고 역시 주름이 가득한 에디(제인 폰다)가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찾아온 용건을 말한다.

"한 가지 프러포즈를 하려고요, 물론 청혼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언제 한번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자면 어떨까요? 섹스하자는 게 아니고 함께 이 끔찍한 밤을 견뎌보자고요. 긴 밤이 너무 지겹지 않나요? 내 침대에 같이 누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잠이 잘 올 거 같아서요."

40여 년 전 그들의 아름다움과 활기, 매력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세기를 풍미했던 스타인 로버트 레드포드와 제인 폰다는 인생의 여러 상처와 희열을 온몸에 새긴 채 이렇게 등장한다. 뒷모습만 보면 여느 노인네와 같이 꾸부정하고 뒤뚱이는 걸음걸이의 레드포드와 여전히 날씬하고 스타일리쉬함에도 짜글짜글한 얼굴과 팔뚝 살의 쳐짐을 감출 수 없는 폰다이지만 그들의 깊이 있는 매력과 연기력은 영화를 풍요롭게 만들었으며 관객은 두 노년의 배우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깊은 생각 끝에 루이스는 이튿날 죽은 부인의 오래된 전화 목록 수첩에서 에디의 번호를 찾아 전화한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루이스는 종이봉투에 잠옷을 넣어 에디의 집 뒷문을 두드린다. 둘은 대화를 하려 하지만 자꾸 끊긴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 램프를 끈 에디는 옆 사람의 호흡 소리만으로도 깊은 잠에 빠진다.

이렇게 홀아비와 과부가 된 둘의 어색한 밤의 동행은 시작한다. 수십 년을 같은 동네에 거의 마주 보는 이웃으로 살아오면서도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던 그들은 밤의 대화로 점차 친숙해진다.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스틸 컷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스틸 컷 ⓒ Netflix

 
학교 선생 시절 루이스의 동네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외도, 열한 살이었던 에디의 딸 코니의 교통사고 등 서로의 상처와 젊은 시절 꿈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밤의 동행은 저녁 식사로 그리고 아침 식사로까지 연장된다. 그리고 어느 일요일 정오 그들은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시내에 나가 점심을 먹음으로써 만남을 공식화하기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에디의 아들 진(마티아스 쇼에나에츠)이 여름방학을 맞은 그의 아들 제이미(이안 아미티지)를 에디에게 맡기고 감으로써 에디와 루이스의 생활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둘 간의 관계에 침입자 같았던 제이미는 서서히 에디와 루이스의 손자가 되어 둘의 관계를 더욱더 단단하게 묶는 촉진자 역할을 하게 된다. 

루이스는 딸 홀리(주디 그리어)와 함께 조립했던 오래된 장난감 기차를 제이미에게 보여주고 강아지를 입양하고 함께 콜로라도의 숲으로 캠핑을 하러 간다. 아름답고 평온한 자연을 즐기는 세 사람의 모습이 무척이나 행복하고 평화롭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던가? 어른이 된 자식을 둔 황혼의 로맨스는 절대 순조롭지만은 않다고. 결국 이런저런 사건이 발생하고 아들 진에 대한 미안함과 가족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마음에 에디는 집을 팔고 아들 곁으로 떠난다.

결국 다시 밤의 외로움 속에 남겨진 루이스와 에디. 루이스는 장난감 기차와 함께 최신형 스마트 폰을 에디에게 보낸다. 침대에 누운 에디가 루이스에게 전화를 건다. 그들은 언택트 대화로 그들만의 밤의 동행을 다시 시작한다.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스틸 컷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스틸 컷 ⓒ Netflix

 
관객은 내용의 전개보다는 에디와 루이스의 디테일에 집중하게 된다. 그들의 호흡, 몸놀림, 주름진 눈가와 입가의 표정, 걷는 뒷모습 등 하나하나가 우리의 미래이면서 바람이기도 하다. 그들의 젊은 시절을 잘 알기에 팔십 대에 들어선 화면 속 두 노배우의 모습이 연기가 아닌 현실로 자연스레 받아들여진다.

농익은 가을 단풍처럼 제인 폰다와 로버트 레드포드의 모습과 연기는 담담하고 섬세하며 우아하고 자연스럽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50플러스 중부 캠퍼스 소식지인 2020년 중부락서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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