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의 부진을 전하는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류현진의 부진을 전하는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 메이저리그

1일까지 KBO리그에서 타율 1위(.352), 타점 2위(109개)에 올라 있는 '타격기계' 김현수(LG 트윈스)는 지난 2008년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5경기 21타수1안타(타율 .048)로 지독한 부진에 빠졌다. 당시 두산 베어스의 간판타자였던 김현수는 한국시리즈 패배의 원흉으로 낙인 찍히며 두산팬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김현수에게는 화려한 프로생활에서 돌아보기 싫은 '흑역사'로 남아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 부진만 가지고 "김현수는 2008년을 망쳤다"고 평가하는 야구팬은 흔히 말하는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하는)' 팬이다. 김현수는 정규리그 126경기에 모두 츨전해 타율 .357 168안타9홈런89타점83득점13도루로 타격과 최다안타, 출루율까지 3관왕을 차지하며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휩쓴 2008년 KBO리그 최고의 히트상품이었다. 한국시리즈 부진 만으로 김현수의 2008년 활약을 함부로 폄하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류현진이 이적 후 첫 포스트시즌 등판이었던 지난 1일 템파베이 레이스와의 와일드카드 시리즈 2차전에서 1.2이닝8피안타(2피홈런)1볼넷3탈삼진7실점(3자책)이라는 끔찍한 투구를 했다. 류현진의 부진과 함께 토론토의 가을야구도 2경기 만에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가을야구 한 경기 부진으로 류현진의 2020 시즌 전체를 평가하기엔 류현진의 올 시즌 활약은 너무나 눈부셨다.

'벼랑 끝 경기'의 부담

지난 7월25일 템파베이와의 개막전에 선발 등판한 류현진은 팀 타선이 5회초까지 6-1의 리드를 만들어 줬다. 하지만 류현진은 5회 2사 후 템파베이의 일본인 타자 쓰쓰고 요시모토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했고 후속타자 호세 마르티네스에게 2루타를 맞으며 5회를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무엇보다 투구 수가 97개에 달했기 때문에 시즌 첫 경기부터 구위가 떨어진 에이스에게 100개 이상의 공을 던지게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류현진은 한 달이 지난 8월23일 템파베이전에 다시 선발등판하며 설욕의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류현진은 5이닝 동안 3피안타 무사사구6탈삼진1실점으로 호투하며 개막전의 아쉬움을 훌훌 털어 버렸다. 비록 투구 수가 94개까지 늘어나면서 6회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고 5회말 투구에서 동점을 허용하며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템파베이를 8월의 상승세를 이어가는 디딤돌로 삼기엔 충분했다.

따라서 와일드카드 시리즈의 상대가 템파베이로 결정됐을 때 토론토의 찰리 몬토요 감독도 충분히 모험을 걸어볼 만 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토론토가 1차전에서 '원투펀치' 류현진과 타이 후안 워커를 제외한 모든 투수들을 총동원해 이변을 일으킨다면 템파베이전에서 반등에 성공한 류현진이 등판하는 2차전까지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8번 시드 토론토가 1번 시드 템파베이를 2경기 만에 탈락시키는 행복한 상상이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토론토는 1차전에서 5.2이닝1피안타2볼넷9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한 템파베이의 에이스 블레이크 스넬을 전혀 공략하지 못하며 1-3으로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류현진이 '지면 시리즈가 끝나는' 절체절명의 부담스런 경기에 등판하게 된 것이다. 류현진은 LA다저스 시절 포스트시즌 8경기 출전 경험이 있지만 지면 시즌이 끝나는 '일리미네이션 게임'에 등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만 8년, 한화 이글스 시절까지 합치면 프로에서만 15년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 류현진도 빅리그 첫 일리미네이션 게임의 부담을 견뎌내지 못했다. 류현진은 빠른 카운트에서 배트를 휘두르는 템파베이 타자들의 노림수에 번번이 걸려 들며 2이닝을 채 버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 왔다. 이로써 류현진은 역대 포스트시즌에서 2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8개 이상의 안타를 맞은 역대 4번째 선발 투수가 됐다.

류현진 없었다면 토론토의 가을야구도 없었다

류현진이 뜻밖의 부진으로 토론토의 시즌이 끝나는 경기에서 패전투수가 되면서 류현진을 향한 국내외 야구팬들의 비난도 거세졌다. 믿었던 에이스가 승리는커녕 2회도 채우지 못하고 만루홈런까지 허용하며 무너졌으니 비판의 소리를 듣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마지막 한 경기에서 부진했다는 이유로 류현진의 올 시즌 활약이 모두 부정 당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류현진은 올 시즌 팀 내에서 가장 많은 12번 선발 등판해 5승2패 평균자책점2.69라는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2.69의 평균자책점은 아메리칸리그에서 4번째로 좋은 기록으로 타고투저 현상이 특히 심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류현진보다 좋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는 아무도 없었다.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로 이적하면 성적이 크게 떨어질 거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깨버린 활약이다.

류현진은 토론토가 연패에 빠지며 '시즌 포기모드'에 들어갈 위기에 처할 때마다 멋진 투구로 연패를 끊어내며 토론토의 반등을 이끌어냈다. 토론토가 올 시즌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워커를 비롯해 로비 레이,로스 스트리플링 등을 영입하며 가을야구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류현진이 시즌 내내 꾸준히 믿음직한 투구로 동료들에게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론토는 류현진이 등판한 경기에서 9승3패(승률 .750)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이는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1위 다저스의 승률(.717)보다 높았다. 등판하기만 하면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에이스의 존재. 토론토는 류현진으로 인해 가깝게는 2016년의 J.A. 햅(뉴욕 양키스), 멀게는 고인이 된 로이 할러데이 이후 느껴보지 못했던 에이스의 강한 존재감을 느끼며 시즌을 치를 수 있었다.
 
토론토는 여전히 젊은 팀이다. 와일드카드 시리즈 2차전에서 만루홈런으로 연결된 치명적인 실책을 저지른 보 비셋을 비롯한 토론토의 젊은 선수들은 내년에 또 한 단계 성장할 것이다. 이제 투타에서 류현진과 함께 토론토를 이끌 믿음직한 베테랑 선수 한,두 명만 더 보강한다면 토론토는 내년 시즌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 류현진 역시 이제 토론토에서의 첫 시즌이 끝났을 뿐이고 아직 올해의 아쉬움을 털어 버릴 3년의 시간이 더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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