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여자 다이빙 세계 랭킹 1위 '이영(신민아)'은 어느 날 동료이자 절친 '수진(이유영)'과 함께 교통사고를 당한다. 수진이 실종된 가운데 이영은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가기로 결정하고, 재활에 돌입한다. 하지만 훈련 때마다 수진의 안 좋은 소문이 들려오고, 사고 당시의 기억을 조금씩 되찾으면서 이영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최고의 자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강렬한 욕망,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오랜 시간 친구였던 수진이 자기가 알던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이영을 옥죄어 오며 점점 광기로 몰아넣는다. 

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클리셰 중에 하나는 라이벌이다. 라이벌 관계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익숙하고 극적인 형태를 고르라면 <아마데우스> 속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처럼 천재(1인자)와 천재를 넘어서고 싶은 수재(2인자)의 구도를 꼽을 수 있다. 제갈공명을 보면서 좌절하는 주유의 절규가 유명해진 것처럼 1인자보다 2인자의 심정을 묘사할 때 다수의 공감을 얻어내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확률적으로도 1인자가 되는 것보다 2인자가 될 가능성이 주변에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라이벌 관계를 모티브로 삼지만 정상에 오른 이들의 어두운 내면에 주목하며 통념을 뒤집는 작품들은 필연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영화 '디바'가 불편한 이유
 
 영화 <디바> 스틸컷.

영화 <디바>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신민아 주연의 <디바>가 불편한 영화인 이유다. 영화는 세계 최고의 선수, 1인자라는 명성 아래 숨 쉬고 있는 한 개인의 깊은 어두움에 주목한다. 부담감, 죄책감, 긴장감, 질투심, 자존심, 열망, 자괴감 등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뭉뚱그릴 수 있는, 혹은 승자의 불만이라고 가볍게 짚고 넘어갈 수 있는 모든 내용을 일일이 끄집어 올린다. 이는 최정상의 발레리나가 되었지만 내면적으로 무너져 내리던 '니나(나탈리 포트만)'의 내면을 그려낸 <블랙 스완>이 겹쳐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블랙 스완>의 그림자를 벗어나기 위해 영화는 다이빙이라는 종목의 소재를 이용해 스타일의 차별화를 꾀한다. 영화는 다이빙 후 수영장 깊은 곳에서 올라가는 그녀의 모습을 수면에 반사시키는데, 이때 그녀는 마치 수면으로 상승하면서 동시에 하강하는 듯 보인다. 다이빙 종목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입수 후 상황을 마찬가지로 크게 드러나지 않는 승자의 무게감, 불편함, 두려움이라는 복잡한 감정에 대한 유비로 활용하는 것이다. 카메라가 다이빙할 때 이영이 바라보는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는 장면에서도 정상에서 떨어지는 것의 두려움, 정상에 올랐을 때 이영이 짊어진 부담감은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한편 <디바>가 최선을 다해 표현한 이영의 불안정한 내면 심리는 영화 곳곳에 담긴 한국 체육계의 부조리와 맞물리면서 개인의 특수한 상황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주제의식으로 확대된다. 영화는 치료 후 재활 과정에서 이영이 극심한 부담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체육협회의 목적지향적인 행정과 대조한다. 협회장은 이영의 상태에 대해서 한 마디도 물어보지 않으며, 그저 그녀가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할 정도로 회복이 되었는지에만 관심을 지닌다. 심판들은 본래 기량을 되찾지 못한 이영의 퍼포먼스를 보고도 편파 판정을 한다. 그 결과 그녀는 정신적으로 더욱 피폐해진다. 

이 장면은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 성폭행 피해 사건이나 트라이애슬론 최숙현 선수 사건 같은 사례들을 떠올리게 한다. 선수들에게 무관심과 폭력을 행사하고, 이를 토대로 성과를 내는데만 주목할 뿐 그 이면의 문제는 개선의 의지조차 없는 영화 속 체육협회의 모습은 그간 반복되었던 현실의 체육계 사고들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구조적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이는 이영의 환영과 현실을 오가는 <디바>에 조금의 사실성을 보태준다. 

다만 주인공의 복합적 심리를 잘 포착한 것과는 별개로, 표현 방식이 다소 과장되어 있다는 느낌은 좀처럼 떨치기 어렵다. 이영이 어려서부터 지니고 있던 트라우마가 그녀를 급격히 잠식하는 과정을 영화는 다양한 장면으로 표현한다. 어두운 병원 복도에서 이상한 존재를 느끼거나, 엘리베이터나 시장에서 죽은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극도의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식이다.

그러나 이미 그녀의 일상 안에서, 다이빙이라는 스포츠의 특징을 활용해 날 것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와중에 호러 영화를 보는 듯한 연출은 자연스러운 감정선에서 벗어난 듯 느껴진다. 실제로 카메라는 이영의 눈을 비교적 자주 클로즈업하는데, 신민아의 연기가 더해지면서 눈빛만으로도 그녀가 두려운지, 경계하는지, 질투에 차 있는지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이미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영화 구조에서 위의 연출은 그 경계선을 더욱 흐릿하게 만들며, 영화 후반부에 전개되는 일들을 파악하는 데 혼란을 유발한다. 또한 심리 스릴러와 범죄 스릴러가 합쳐지는 과정에서 의도한 감정선이 잘 살아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영화 <디바> 스틸컷.

영화 <디바>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문제는 영화가 이영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묘사하면서 탄탄한 심리극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이영을 외적으로 압박해야 하는 미스터리는 적절하게 풀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영화는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역할마저 이영에게 일임한다. 그 결과 그녀 주변 인물들이나 경찰들처럼 미스터리극을 풀어가야 할 캐릭터들의 비중은 낮아지고, 영화의 균형추는 무너져 버린다.  

결국 <디바>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이영이라는 인물의 불편할 수 있는 심리를 나름 적절하게 펼쳐 보인 점이나 6년 만에 스크린 주연으로 복귀한 신민아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점은 여성 주연 영화가 드문 한국 영화계에서 나름대로 괄목한 성과다. 은연중에 체육계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메시지도 인상적이다. 단지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연출을 조금 줄이고, 주인공 외의 캐릭터들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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