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메이저리거의 맏형 추신수가 2020시즌을 마감했다. 추신수는 28일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의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열린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 1번 지명타자로 출전하여 첫 타석만 소화한 뒤 교체됐다. 추신수는 올시즌 마지막 타석에서 3루 쪽으로 기습번트를 시도한 후 1루로 전력질주해 내야안타를 만들어냈으나 이후 발목 통증을 호소하여 대주자와 교체됐다.

추신수의 소속팀 텍사스는 단축시즌으로 치러진 올해 22승 38패(.367)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최하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올해는 텍사스와 7년계약의 마지막 시즌이었기에 이 경기는 추신수의 텍사스 고별전이자 어쩌면 메이저리그(MLB) 경력에서도 마지막이 될수도 있는 타석이었다.

텍사스 구단은 코로나19사태로 리그가 무관중 경기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추신수의 가족을 특별히 관중석으로 초대하는 이벤트를 마련했고, 동료들은 덕아웃으로 돌아온 추신수를 훈훈하게 포옹하며 7년간 팀에 헌신한 베테랑에 대한 최선의 예우를 보여줬다.

 
 텍사스 레인저스 추신수가 27일(한국시간) 미국 현지 취재진과 화상 인터뷰하고 있다.

텍사스 레인저스 추신수가 27일(한국시간) 미국 현지 취재진과 화상 인터뷰하고 있다. ⓒ 텍사스 레인저스 프레스박스 캡처

 
메이저리그 도전, 그리고 인고의 시간

추신수는 이미 한국인 빅리거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아메리칸 드림'의 모범사례이기도 하다. 이대호, 정근우, 김태균, 오승환 등과 함께 이른바 한국야구 '82년생 황금세대'를 대표하는 스타로 꼽힌다. 부산고 시절이던 2000년 캐나다 애드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대회(현 U-18 야구월드컵) 우승주역으로 활약한 추신수는 빅리그의 관심을 받아 이듬해인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하여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던졌다.

인고의 시간은 길었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했고, 무려 6년 가까이 산하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는가 하면, 트레이드까지 거친 끝에 2007년이 돼서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주전급 선수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추신수는 2009년과 2010년 2년 연속 3할 연속 20-20을 달성했고, 2013년에서는 신시내티 레즈에서 타율 .285 112볼넷과 21홈런, 54타점과 20도루를 기록하며 커리어하이 시즌을 달성하며 '출루 머신'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해 겨울 FA 자격을 얻은 추신수는 텍사스와 7년 1억3000만 달러(약 1526억 원)의 대박 계약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며 야구인생의 정점에 올랐다.

올해로 미국무대에 도전한지 19년, 순수한 빅리그 경력만 16년차에 이르는 추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남긴 발자취는 어마어마하다. 메이저리그 통산 1651경기에서 추신수는 타율 .274, 1670안타, 218홈런, 782타점을 기록했다. 2018년에는 36세의 나이에 생애 처음 올스타에 뽑히기도 했다.

추신수의 홈런과 타점 누적 기록은 아시아 출신 선수로는 최다 기록이다. 호타준족의 대명사로 평가받는 3할-20홈런-20도루(3회), 히트 포 더 사이클(사이클링 히트)(2015년)을 달성한 최초의 아시아선수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거포가 아님에도 꾸준함을 바탕으로 20홈런 시즌을 6번이나 달성하며 이치로나 마쓰이같은 일본인 빅리거들도 도달하지 못한 200홈런 고지를 넘긴 것도 대단한 업적이다.

2020년에는 이치로(780타점)의 기록을 뛰어넘어 아시아 빅리그 최다타점(9월 4일 휴스턴전)을 갈아치우며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특히 추신수의 진정한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역시 출루능력으로, 주로 톱타자로 나왔던 추신수의 통산 출루율은 .376, OPS(출루율+장타율)는 0.824에 이른다.

또한 기록 외적인 자기관리나 프로의식에서도 추신수는 '메이저리거의 모범'을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는다. 추신수는 월급 150만원을 받던 박봉의 마이너리거 시절부터 어느덧 빅리그 베테랑이자 최고참급 선수가 된 지금도 야구장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여 가장 늦게 퇴근하는 선수로 유명했다.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끈기는 추신수를 지도한 많은 감독들이 이구동성으로 호평을 보내는 대목이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생계가 어려운 유망주들을 위한 금전 기부에 앞장서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공식 사이트 MLB닷컴에 따르면 추신수는 소속팀 텍사스 레인저스 산하 마이너리그 선수 191명에게 1000달러(약 123만원)씩 총 19만1000달러(약 2억3500만원)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눈물젖은 빵을 먹던 자신의 마이너리그 시절을 떠올린 선행이다. 한국보다 기부문화가 더 잘 정착된 미국에서도 추신수의 선행은 이례적으로 꼽힐만큼 큰 화제를 모았다.

텍사스에서의 마지막 경기도 가장 추신수다웠다는 평가다. 지난 8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가 손목부상을 당한 추신수는 사실상 시즌아웃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팀도 포스트시즌진출에 실패했고 노장이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었지만, 추신수는 다시 타석에서 서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재활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타석에서는 제대로 배트를 들기도 힘겨운 상황에서 전력질주로 내야안타를 만들어내고야 마는 근성을 보여줬다. 시원한 홈런이나 안타는 아니었지만 추신수가 어떻게 20년 가까운 시간동안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왜 메이저리그 구단과 동료들부터 그토록 존중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가장 잘 보여준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면에 존재하는 어두운 그림자

이처럼 한 명의 선수로서나 인간으로서나 훌륭한 커리어를 쌓아온 추신수지만, 한편으로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한다. 우선 텍사스와의 장기계약 이후 추신수가 몸값에 걸맞은 가치를 다해냈는가의 문제다. 추신수는 텍사스에서 7년 동안 799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60와 114홈런 355타점 464득점 771안타, 출루율 .363 OPS .791 등을 기록했다.

종합하면 장점이던 출루율과 홈런에서는 기본 이상은 해줬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외에는 냉정히 말해 전반적으로 몸값에 못미치는 활약이었다. 팬그래프 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fWAR)에서 추신수의 커리어하이시즌은 신시내티 시절인 2013년의 6.4였는데 텍사스에서는 한번도 이에 근접할 정도의 성적을 기록한 시즌도 없다.

텍사스에서 가장 좋은 시즌을 보냈다는 2015년이 3.4였고, 올스타에 선정된 2018년도 고작 2.3에 그쳤다. 2015년도 전반기까지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다가 후반기에 극적으로 대반등했고, 2018년에는 전반기에는 연속 출루기록을 경신하는 등 승승장구하다가 후반기에 다시 평균으로 복귀하는 등 시즌내내 꾸준하지는 못했다. 추신수는 텍사스에서의 7시즌 중 4번이나 fWAR가 1점 이하에 그쳤고 마지막 시즌인 2020년에는 –0.1까지 추락했다.

추신수는 나이가 들수록 내구성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텍사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동안 잦은 부상으로 무려 233경기나 결장했다.

텍사스는 추신수를 장기계약으로 영입할 당시 대권도전까지 꿈꾸는 팀이었지만 첫 2~3시즌을 허무하게 날리면서 가을야구에서 멀어진 리빌딩 팀으로 전락했다. 추신수는 기량상 전성기였던 30대 초중반에는 잦은 부상으로 고전했고, 노장으로 접어든 2018년 후반기부터는 완만하지만 서서히 하락세를 드러내며 노쇠화 수순을 피하지 못했다. 마지막 시즌인 2020년마저 33경기에서 타율 .236, 홈런 5개, 타점 15개로 마감하며, 단축시즌(60경기)과 부상을 감안해도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유종의 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미국 야구계에서의 좋은 이미지와는 달리, 오히려 고국인 한국 팬들에게 추신수는 '애증의 선수'에 가깝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혜택을 얻은 이후, 국가대표팀 차출에 소극적이었던 행보와 음주운전 논란으로 이미지에 큰 오점을 남겼다. 최근에는 자녀들의 각기 다른 국적 취득 문제에 대한 이중적인 행보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물론 추신수 개인의 입장에서보면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민감한 이해충돌이 발생할 때마다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추신수의 미국식 마인드는 국내 대중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박찬호나 류현진 같은 다른 역대 한국인 빅리거들에 비하여 추신수가 빅리그에서의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국내에서의 인기나 관심이 높지 않았던 것은 이런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추신수는 텍사스와의 7년 동행이 끝나게 됐지만 여전히 빅리그에서 선수 경력을 더 이어가는 것을 갈망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메이저리그 시장이 위축되면서 투자 가치가 떨어지는 노장 선수들에게는 더욱 차디찬 겨울이 예상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 복귀설 등도 거론되고 있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걸려있어서 역시 쉽지 않다.

명도 암도 있지만 어쨌든 추신수가 한국야구와 아시아 메이저리거 역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선수라는 사실 만큼은 변함이 없다. 기왕이면 팬들 앞에서 박수를 받으며 선수생활의 피날레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싶다는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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