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놀라 홈즈

에놀라 홈즈 ⓒ 넷플릭스


셜록 홈즈(헨리 카빌): "진실은 언제나 존재하죠. 그냥 찾기만 하면 됩니다."
레스트레이드 경감(아딜 아크타르): "두 번째 질문을 하죠. 어떻게 여동생이 오빠보다 먼저 이 사건을 해결한 거죠?"
셜록 홈즈(헨리 카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뭐라고요?"


연역적 추론의 귀재, 학자이면서도 바이올린, 사격, 검술, 권투 등에도 능한 명탐정 셜록 홈즈. 하지만 그러한 천하의 명탐정 셜록 홈즈를 멋지게 한 방 먹인 여동생. 

해리 브래드비어 감독의 <에놀라 홈즈>는 이른바 여성판 셜록 홈즈라는 독특한 설정을 전면에 내세워 지난 9월 23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다. 그동안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익숙했던 셜록 홈즈 세계관을 살짝 비틀었다고나 할까.

영화 <에놀라 홈즈>는 낸시 스프링어의 소설 <에놀라 홈즈 미스터리>가 원작이다. 홈즈에게도 여동생이 있고, 그 여동생이 홈즈의 총명함을 빼다 박았지만 전혀 다른 감성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아간다는 원작의 의도를 영화 <에놀라 홈즈>는 유쾌하고 역동적인 감성으로 풀어내고 있다.

영화의 주요 내용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셜록 홈즈의 여동생 에놀라 홈즈가 사라진 엄마를 찾기 위해 겪는 좌충우돌 추리 모험담이다.

영화 전반에 걸친 에놀라 홈즈(밀리 바비 브라운)만의 유쾌한 유머 코드와 창의적인 추리 과정이 녹아 있어 눈길을 끈다. 에놀라 홈즈가 영화 중간마다 관객들에게 익살스럽게 말을 건네기도 하고, 순식간에 그린 캐리커처로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낱말 퍼즐을 추리에 응용하거나 엄마를 찾기 위해 암호를 신문 개인 광고란에 싣는 등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실마리를 풀어나가기도 한다.

게다가 영화는 단순히 추리극에 그치지 않고 그 당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차별, 여성의 참정권에 대한 사회적 이슈등과 관련해서도 진중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 영화의 또 다른 결을 느낄 수 있다. 

양날의 검

하지만 여성판 셜록 홈즈라는 서사 진행 방식은 영화에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 태생적 한계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존의 셜록 홈즈를 기대하고 보는 입장에서는 여성판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에게도 동일한 수준의 기대를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의 셜록 홈즈 세계관에 부응하는 여성판 셜록 홈즈는 차별화된 캐릭터가 아닐뿐더러 애당초 그런 기대에 맞추고자 한다면 여성판 셜록 홈즈를 내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관객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또 다른 선택의 문제인 셈이다. 기존의 셜록 홈즈 열성 팬층인 셜로키언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낯설고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셜록 홈즈 시리즈의 다양한 세계관 해석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유연하고 폭넓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에놀라 홈즈

에놀라 홈즈 ⓒ 넷플릭스

 
먼저 영화 <에놀라 홈즈>는 셜록 홈즈와 차별화된 캐릭터를 창조하기 위해 에놀라 홈즈만의 강점을 최대한 부각시킨다.

영화 <에놀라 홈즈>의 여주인공 에놀라 홈즈(밀리 바비 브라운)는 오빠 셜록 홈즈(헨리 카빌)와 닮은 점도 많지만 셜록 홈즈에게 없는 에놀라 홈즈만의 강점이 있다. 그리고 영화는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에놀라 홈즈만의 강점을 최대한 부각시킨다. 이는 셜록 홈즈와 차별화된 캐릭터를 창조함과 동시에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표방하는 메시지 역할도 한다.

에놀라 홈즈의 강점은 '이해와 공감'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과감한 실천력'. 16살 소녀 에놀라 홈즈의 이러한 강점은 냉철한 논리주의자이자 남의 감정에는 무관심한 셜록 홈즈와 화면 곳곳에서 대비된다.

에놀라 홈즈의 16살 생일날 엄마 유도리아 홈즈(헬레나 본햄 카터)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동안 연락없이 지냈던 두 오빠 마이크로프트 홈즈(샘 클라플린)와 셜록 홈즈(헨리 카빌)도 집에 찾아와 갑자기 사라진 유도리아 홈즈의 행방을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에놀라 홈즈는 평소 엄마가 낱말 퍼즐 애호가임을 잘 알고 있기에 이를 바탕으로 추리하고 엄마를 찾아 나선다. 반면 오빠 셜록 홈즈는 이런 사실을 잘 모르기에 논리적 추론에 의지해 추리해나갈 뿐이다.

또한 에놀라 홈즈는 엄마를 찾아 런던으로 향하다 선거법 개정과 관련된 튜크스베리 자작(루이스 패트리지) 실종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처음에는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으나 '벼랑 끝에 서 있는' 튜크스베리 자작을 외면할 수 없어 튜크스베리 자작과 행동을 함께 한다. 그리고 자칫 무모할 정도로 사건의 배후를 향해 과감히 돌진해간다. 반면 오빠 셜록 홈즈도 이 사건의 배후를 나중에 찾아냈으나 에놀라 홈즈의 과감성 앞에 뒷북을 치는 모양새가 되고 만다.
 
꼭 알아야 할 것은 이런 공감능력은 '필요'에 의해 개발된다는 사실이다. 만약 상대의 기분과 생각을 알아내는 것에 나의 생사가 달렸다면 우리는 충분히 집중해서 필요한 주의를 기울이고 이 공감능력을 십분 활용할 것이다.

그러나 평소 우리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내가 상대를 충분히 잘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사는 게 녹록지 않고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을 수도 있다. 게으른 우리에게는 미리 한번 걸러진 판단에 의지하는 게 더 편하다.

하지만 '실제로' 이것은 생사의 문제이고, 이 능력을 개발하는 데 우리의 성공이 달렸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남들의 기분이나 의도를 잘못 읽어내며 그로 인해 수많은 기회를 놓치는데, 거기에 삶의 여러 문제가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p.121)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지음, 이지연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9)
 
 에놀라 홈즈

에놀라 홈즈 ⓒ 넷플릭스

 
그리고 영화 <에놀라 홈즈>는 여성판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의 차별화를 다지기 위해 영화의 서사 전개 방식도 다양하게 변주해나간다. 물론 이 점도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는 요소이다.

여주인공 에놀라 홈즈는 엉뚱하면서도 발랄하고 당찬 캐릭터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녀의 캐릭터 특징은 무대와 관객 사이의 가상의 벽을 일컫는 '제4의 벽'을 깨고 영화 중간마다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연출로도 이어진다.

물론 영화에 재미를 더해 원활한 이야기 진행을 유도하고 캐릭터의 특징이 부각되기도 하지만 자칫 이야기 흐름이 끊어지는 단점도 있다. 부담감 있는 연출 방식이지만 에놀라 홈즈의 캐릭터 특징을 최대한 부각시키기 위한 연출 고민을 살짝 엿볼 수 있다.

또한 영화 <에놀라 홈즈>는 추리극의 성격을 띠고 있기에 다양한 단서와 추리 및 문제 해결을 보여주지만 그 방식을 달리한다. 대부분의 진행 과정을 최대한 단순화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결정적 단서도 손쉽게 확보한다. 관객은 에놀라 홈즈의 입을 통해 문제 해결의 지름길을 공유한다.

이야기의 결에서 차이는 있지만 영화 <서치> (아니쉬 차간티 감독, 2018년)처럼 관객과 주인공이 동일한 정보를 공유하고 범인을 예상하지만 결국 범인은 의외의 인물이라는 대반전을 노리는 것일까.

물론 튜크스베리 자작 실종 사건의 배후를 추적하면서 의외의 인물이 범인이라는 반전 효과를 어느 정도 거두었다. 하지만 짜임새 있고 긴장감 있는 추리 스토리 전개 과정을 기대한 관객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또한 영화 <에놀라 홈즈>가 추리극이면서도 에놀라 홈즈의 성장영화이기에 서사 전개의 비중에 따른 한계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에게 달려있죠 

튜크스베리 자작 할머니(프랜시스 데 라 투어): "세상이 점차 불안해지니 영국의 본모습을 수호하는 일이 중요하게 느껴져요. 훗날 우리 조국의 안정과 안보를 위해서 말이죠."
에놀라 홈즈(밀리 바비 브라운): "여기는 참 아름답네요."
튜크스베리 자작 할머니(프랜시스 데 라 투어): "아가씨도 아마 새로운 사상을 주창하는 쪽이겠죠. 내 아들도 새로운 사상을 좇았어요. 결코 일어난 일에 집중하지 않고 항상 일어날 일에만 관심을 쏟았죠. 내 손자도 똑같은 거 같아요. 영국의 참다운 영광이야말로 진정 중요한 것인데.. 아가씨 생각은 어때요?"
에놀라 홈즈(밀리 바비 브라운): "(주위 풍광을 둘러보면서) 아주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튜크스베리 자작 할머니(프랜시스 데 라 투어): 아주 현명한 대답이로군요."


에놀라 홈즈는 선거법 개정과 관련된 튜크스베리 자작 실종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그 와중에 튜크스베리 자작 할머니(프랜시스 데 라 투어)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여기서 에놀라 홈즈의 "아름답다"라는 대답은 중의적(重義的)의미를 담고 있다. 듣는 사람에 따라 풍광이 아름답다는 뜻으로 들리거나 보수적 가치 또는 진보적 가치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에놀라 홈즈는 이미 일어난 과거의 일이나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일보다 지금 발 딛고 있는 현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주위 풍광을 둘러보며 아름답다고 말한 게 아닐까. 이러한 에놀라 홈즈의 재치 있는 대답에 튜크스베리 자작 할머니는 아주 현명한 대답이라고 말을 건넨다.

영화 <에놀라 홈즈>는 여성판 셜록 홈즈라는 독특한 설정과 더불어 기존 셜록 홈즈 세계관에 차별화를 시도한 영화다. 추리극과 더불어 에놀라 홈즈의 성장 영화라는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에 서사 전개의 비중에 따른 양날의 검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튜크스베리 자작 할머니에게 재치 있게 대답한 에놀라 홈즈처럼 영화 <에놀라 홈즈>는 양날의 검을 어느 정도 현명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다. 다소 헐겁고 애매한 성격의 서사 전개에도 불구하고 여성판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 특징을 최대한 부각시켜 기존 셜록 홈즈 세계관에 색다른 변주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셜록 홈즈와 차별화된 캐릭터를 부각시키려는 노력은 자연스럽게 여성의 주체적인 삶과 사회적 이슈에 대한 문제 제기와 연결된다. 에놀라 홈즈가 엄마의 행방을 찾는 과정이나 튜크스베리 자작 실종 사건은 결국 선거법 개정과 연관되어 있다. 에놀라 홈즈는 이 과정에서 여성의 주체적인 삶에 대해 생각하고 깨닫고 성장하게 된다. 사건 위주 추리극에만 집중하는 기존 셜록 홈즈 세계관과 달리 사건이 내포한 사회적 이슈 등에 대해서도 한발 깊게 들여다보려는 자세는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참신하고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에놀라 홈즈

에놀라 홈즈 ⓒ 넷플릭스

 
거꾸로 조합하면 '홀로'란 뜻이 되는 이름 '에놀라'. 하지만 외롭기보다 자유롭게 그리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에놀라 홈즈'.

기존 셜록 홈즈 세계관에 차별화를 시도한 영화 <에놀라 홈즈>의 첫발은 외로울까 자유로울까.

주인공 에놀라 홈즈는 밝고 힘찬 목소리로 외친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에게 달려 있죠." 
우리는 외부의 현실과 자신을 각각 별개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를 부정했다. 외부의 현실은 우리가 어떤 시도를 하느냐에 따라, 혹은 하지 않느냐에 따라 '그러한 현실'이 된 것이므로 외부의 현실은 곧 '나의 일부'이고 나는 '외부 현실의 일부'다. 즉 외부의 현실과 나는 결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현실을 자신의 일로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태도, 즉 앙가주망이 중요하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어떤가? 사르트르의 직언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엄격한 지적으로 들린다. 사르트르는 우리의 목표가 자신의 존재와 자유(선택 가능한 범위 내)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인데도 많은 사람이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사회와 조직이 지시한 대로 행동하는 고지식한 사고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직업 같은 건 자유롭게 선택하면 될 텐데도 그 자유를 견디지 못하고 취직 인기 순위의 상위에 올라 있는 회사만 원하는 것은 전형적인 '융통성 없는' 사고다.

소위 성공은 사회나 조직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하고 기대받은 성과를 올리는 것을 의미하지만 사르트르는 그런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고 단정했다. 그리고 자유롭다는 것은 사회나 조직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손에 넣는 게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p.96)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다산초당,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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