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유튜브나 다양한 플랫폼 매체를 통해서 옛날 드라마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호기심에 '질투'를 검색했더니 1992년도 드라마 <질투>가 짧은 클립으로 나뉘어져 있는 걸 보고 실로 감개가 무량했다. 지금 보면 촌스럽고 지극히 1990년대스러운 패션이었지만 최진실과 최수종이 출연했던 <질투>는 당시 청춘드라마, 트렌디 드라마의 신호탄이었다.
 
나는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드라마 방영 다음날 학교에 가면 질투 이야기로 아침부터 시끄러웠다. 몇몇 용감한 친구들은 <질투>를 보기 위해 야간 자율학습을 거뜬하게 제꼈다.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 와서 드라마 줄거리를 시들해져 있는 반 친구들에게 실감나게 들려주었다. 우리들은 열광했다. OST, 패션, 편의점, 라이프스타일... 그 모든 게 유행이 되었던, 내 고등학교 시절 하나의 아이콘이었다. 주제곡 첫 전주만 들어도 가슴에 부릉부릉, 시동이 걸리는 기분이었다.
 
그 중심에 최진실이 있었다. 단발머리, 애교머리, 눈웃음, 인생의 쓴맛 따위는 모를 것 같은 깔깔거리는 웃음 소리. 최진실 앞에는 '국민요정'이라는 단어가 진부한 수식어처럼 따라붙었다. 실제로 그녀가 맡은 배역들은 대부분 어려운 환경에서도 밝고 씩씩한 '캔디'같은 역할이었다.
 
하지만 나는 최진실을 다른 얼굴로 기억한다. 2005년에 방영했던 <장밋빛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나는 그의 다른 면모를 확실히 보았다.
 
내 인생 유일한 무직의 1년... 또다른 최진실을 만나다
 
당시 나는 네 살, 두 살의 아이를 키우며 집에서 잠시 전업주부의 신분으로 지내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냈던 유일한 무직의 1년. 때는 2005년이었다. 다만, 유급의 일을 하지 않았다뿐이지 하루종일 육아와 가사로 동동거렸다. 그나마 저녁에는 아이들을 재우고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는 게 낙이었다. 그때 보았던 드라마가 <장밋빛 인생>이었다.
 
당시 최진실은 가정 폭력, 이혼이라는 힘든 시기를 지나고 다시 브라운관에 막 복귀했을 때였다. 최진실이 남편에게 폭력을 당해 누워 있는 모습, 힘든 환경에서 둘째를 낳은 소식들은 여기저기 언론을 통해 시끌벅적하게 소개됐다. 내가 큰 애를 낳은 지 반년 정도 된 시점이었다. 최진실이 처한 상황이 딱했고 안쓰러웠다. 같은 여자로서, 엄마로서 화가 났고 걱정이 됐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턴가 최진실은 사람들의 기억 너머로 잊혀지는 듯했다.
 
그런데 짜잔~~. 2005년,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시장을 활보하는 맹순이로 다시 나타났다. 국민요정 최진실이 말이다. <장밋빛 인생>을 1회 첫 장면을 봤을 때 내 입은 떡 벌어졌다. 그도 그럴 듯이 우리가 기억하던 최진실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언론에서는 이혼과 가정폭력의 아픔을 딛고 재기에 성공, 파격적인 아줌마의 모습으로 복귀 등등 최진실의 활동 재개 소식을 요란하게 떠들어댔다.
 
신파 중의 신파... 그런데 알면서도 보는 건 뭐니

 
정말 억척스럽고 극성스럽고 평범한 우리 주변의 엄마. 나는 이상하게 그 맹순이 역할에 몰입되었다. 물론 모든 엄마의 모습이 다 그렇지 않다. 어지간해서는 잘 풀리지 않는 뽀글뽀글 파마에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물건 값을 억척스럽게 깎으려는 모습에 헌신적인 엄마라는 이미지를 덮어씌우는 것에는 거부감이 들지만, 당시 국민요정으로 굳혀진 최진실의 이미지를 파격적으로 깨뜨리기 위해서는 그런 고전적인(?) 장치가 필요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내용 역시 신파였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헌신하다가 헌신짝처럼 버림받은 여성, 그러다 마침내 암으로 인생을 마무리 할 즈음에야 남편이 사랑과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내용은 전형적인 신파였다. '미워도 다시 한번' '엄마없는 하늘 아래'급 정도의 최루성 드라마?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보고 있었다.
 
당시 내 삶은 시들했다. 한가했지만 늘 동동거렸다. 몸은 항상 움직이고 있었지만 정신줄은 늘어져 있었다. 끝도 시작도 없는 뫼비우스 같은 육아·살림의 굴레에 갇혀 지내는 기분이었다. 나는 맹순이(극중 최진실의 배역)처럼 가족에 헌신적이지도, 억척스럽지도 못하면서 맹순이를 보며 위안을 얻었다. 맹순이의 삶에 위로를 받고, 위안을 받고, 공감을 하고, 울고 화내고 기뻐하고 분노하고 그랬다. 공교롭게 나도 극중 맹순이처럼 딸만 둘이었다.
 
망가진(?) 최진실을 보며 묘한 위로를 받았다
 
무엇보다 '국민요정, 대스타, 국민배우 최진실도 저렇게 뽀글이 파마를 하고 늘어진 티셔츠를 걸쳐놓으니 별거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만 김빠진 콜라처럼 사는 건 아닐지 모른다는 이상한 논리가 나를 위로해주었다. '최진실도 애엄마야. 집에 가면 나처럼 애들하고 동동거리고 애들 씻기고 밥 먹이고 그럴 거야. 더구나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울 텐데...' 뭐 그런 조금은 유치찬란하고 조금은 단순한 위로.
 
'가족의 소중함과 참사랑의 의미'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가슴에 와 닿지도 않았다. 그냥 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처지와 비슷한 듯했던 전업주부 맹순이의 신세와 최진실의 용기가 내게 뜻밖의 위로를 주었다.
 
그후로 15년이 지났다. 나는 나이를 15살이나 더 먹었다. 다시 <장밋빛 인생>을 보며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 잿빛드라마의 제목은 왜 이리 근사하냐는 것이다. 뭘 믿고 '장밋빛 인생'이라는 걸까? 왜 '장밋빛 인생'일까. 그 제목에 이 드라마의 비밀(?)이 있는 건 아닐까. 15년 전에는 그냥 '멋있으라고' '폼 나라고' 지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용은 전혀 장밋빛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15년이 지난 후에서야 도착한 감동
 
이 글을 쓰며 드라마의 제목을 다시 생각해본다. 맹순이 인생은 장밋빛은커녕 흙빛, 무채색 투성이였다. 아니다. 그건 내 생각일 수도 있다. 실제 맹순이가 있다면 맹순이는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 있는데 내가 왜 단정짓는단 말인가. 죽는 순간까지 누군가를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었으니, 인생의 황혼에 가슴이 붉게 타올랐으니 진정 장밋빛 인생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와 남편에게 버림받았지만 자기 삶을 사랑했던 맹순이. 그리고 삶의 벼랑 끝에서 죽기살기로 연기혼을 불태웠던 최진실. 어쩌면 장밋빛 인생의 비밀은 그 둘의 얼굴 속에 숨어 있는지 모른다. 드라마의 감동은 때로 배송 지연되어 이렇게 15년 후에 도착하기도 하나보다.
 
마지막으로 최진실 이야기. 내 고등학교 시절 <질투>로 나를 열광하게 했던 단발머리 최진실은 이제 생각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제는 내 딸이 당시 나보다 나이를 더 먹었다. 까마득한 시간이다.
 
<장밋빛 인생>을 다시 보면 가슴이 많이 아플 것 같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최진실이라는 배우를 떠올리며 마음 한켠이 쓸쓸할 것 같다. 만약 최진실이 살아 있어, 한 20년쯤 더 흐른 뒤 드라마에서 노년 역할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정말 친구처럼 늙는 배우가 있구나... 하고 가슴이 따뜻해졌을 것이다. '천하의 최진실도 늙는구나...'라는 단순한 위로가 아닌, 새파란 시간들을 함께 통과했고, 현재에도 살아가고 있다는 따뜻한 연대와 조용한 위안 같은 것 말이다.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서 그런 드라마를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