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넷플릭스 영화 <에놀라 홈즈> 스틸 컷.

넷플릭스 영화 <에놀라 홈즈> 스틸 컷. ⓒ 넷플릭스

 
변화의 물결을 맞이한 1884년 영국. 16살 생일날 아침에 '에놀라 홈즈(밀리 바비 브라운')는 어머니 '유도리아(헬레나 본햄 카터)'가 이상한 선물들만 남긴 채 사라진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어머니를 찾아보지만 확실한 단서를 찾지 못하고, 급히 집에 되돌아온 두 오빠 '셜록(헨리 카빌)'과 '마이크로프트(샘 클라플린)'의 보호 하에 놓인다.

에놀라를 나름대로 존중했던 셜록과 달리 마이크로프트는 그녀를 예비 신부 학교에 억지로 보내려 하고, 그녀는 이에 반발하며 어머니를 찾기 위해 런던으로 향한다. 런던으로 가는 기차에서 그녀는 우연히 젊은 '튜크스베리 자작(루이스 패트리지)'을 만나 그의 목숨과 관련된, 그리고 선거법 개정과 관련해 역사의 물결을 바꿀지도 모르는 음모에 휘말린다.

9월 23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에놀라 홈즈>는 그 유명한 셜록 홈즈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상상력에서 시작된 낸시 스프링어의 '에놀라 홈즈 미스터리' 시리즈 중 <사라진 후작>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사실 <에놀라 홈즈>의 완성도는 여러 측면에서 미지수였다. 주인공이 셜록 홈즈의 여동생이라는 설정은 충분히 흥미를 끌만 한 소재지만, 이는 자칫 '셜로키언'이라는 충실한 팬덤을 가진 셜록 홈즈의 아성에 주인공의 존재감이 묻힐 수도 있다는 잠재적 위험을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 

<버즈 오브 프레이>나 <뮬란>처럼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은 상업 영화들이 여성주의와 관련된 논란에 발목 잡힌 사례 역시 불안함을 안겼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서, <에놀라 홈즈>는 영화 배급권을 넷플릭스에 넘긴 워너브라더스가 배 아플만한 수작이다. 

추리영화의 덕목은 부족

물론 몇몇 대목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우선 <에놀라 홈즈>는 '홈즈'라는 명성에 비해 추리 영화다운 덕목이 부족한 듯 보인다. 추리 영화의 핵심인 반전이 주는 쾌감은 영화가 추리 과정을 얼마나 짜임새 있게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다. 단서를 확보하는 방식부터 찾은 단서의 분석과 해석, 다른 단서들과의 연관성 발견, 용의자의 신원 및 범죄 방식 특정까지의 과정이 충실하게 제시될 때 추리극의 긴장감과 흥분은 극에 달한다. 

추리의 일부가 틀리거나 범인과의 숨바꼭질이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영화는 단서가 갖는 의미나 단서를 분석하는 과정을 간략화하고, 에놀라의 추리도 대부분 적중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때문에 추리극 특유의 분위기를 깊게 만들어내지 못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플롯도 아쉽다. 특히 <원더우먼>(2017)과 유사점이 많다. 여성 주인공이 여자들만의 세계에서 지내다가 한 남자를 만나 바깥세상을 처음 마주하고,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좌절한다. 하지만 이내 희망을 되찾고 세상을 바꾸어 나간다는 스토리를 장소(데미스키라와 홈즈 저택)와 남성 주인공(트레버와 튜크스베리 자작)만 바꾼 채 공유하기 때문이다.

흑막으로 보이던 인물이 알고 보니 진짜 흑막이 아니라는 전개, 코르셋과 같은 여성 의복을 처음 입어보는 주인공의 반응, 여성 참정권 이슈가 주요한 시대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대목 역시 플롯에 기시감을 더한다. 기차와 공장에서 펼쳐지는 추격전처럼 가이 리치 감독의 <셜록 홈즈> 시리즈 중 일부 장면을 연상케 하는 시퀀스들은 기시감을 떨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에놀라 홈즈>는 단점마저도 장점으로 승화시키면서 새로운 탐정 캐릭터의 인상적인 데뷔를 알린다. 부족한 추리 과정은 <데드풀> 같은 영화처럼 관객에게 주인공이 직접 말을 걸고 질문을 던지는 연출을 만나 에놀라의 차별화된 캐릭터성을 강조하는 도구로 바뀐다. 에놀라는 추리 과정에서 잦은 실수를 범하지만 다른 인물들, 심지어는 관객들과도 소통하면서 해결책을 찾아낸다.

이러한 영화의 스타일은 탐정으로서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은 불완전한 성장형 주인공인 에놀라의 특징을 적절히 제시한다. 또한 이는 보통 완벽한 추리를 선보이는 완성형 캐릭터인 기존의 셜록 홈즈와 극명히 대조되는 에놀라만의 특성이자, 작중 셜록이 그녀의 조언자로서 적당한 무게감을 갖춘 채 그의 명성에 섭섭하지 않은 비중을 차지할 수 있는 이유다. 
 
 넷플릭스 영화 <에놀라 홈즈> 스틸 컷.

넷플릭스 영화 <에놀라 홈즈> 스틸 컷. ⓒ 넷플릭스

 
여성주의 메시지

한편 진부한 듯 보이는 플롯은 에놀라라는 성장형 캐릭터 덕분에 많은 관객의 경험을 아우르며 그들을 몰입시키는 힘을 갖는다. 그녀의 16번째 생일날부터 모든 사건들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다루는 에놀라의 에피소드들은 그 자체로 보편적인 정서를 지닌다. 예를 들어 거꾸로 쓰면 'Alone', 곧 '혼자'라는 뜻이 되는 에놀라(Enola)의 이름만 해도 그녀의 서사가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스토리텔링의 주요한 축이다.

에놀라는 어머니가 자신을 떠난 상황에서 선거법 개정과 관련된 미스터리를 해결하며 세상을 바꾸고, 마침내 어머니를 만나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이런 에놀라의 모험은 성인이 되어 사회에 발을 디디고 각자 자신만의 목표를 이뤄가는 와중에도 내심 부모님과 가족의 따스함을 그리워하는 사회초년생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그저 남의 일이 아니다. 

더 나아가 캐릭터와 플롯의 힘은 혹평을 받은 다른 여성 영화들과는 달리 유연한 여성주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에놀라 홈즈>의 선택을 빛내기도 한다. 물론 도입부만 보면 이 영화 역시 <버즈 오브 프레이> 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지배적 남성의 횡포를 고발하는 데 집중하는 듯 보인다. 실제로 어머니 유도리아는 여성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는 인물로 묘사되며 에놀라를 오빠들 못지않게 지식과 무력, 교양을 모두 갖춘 여성으로 키운다. 

반면에 첫째 오빠인 마이크로프트는 예비 신부 학교에 에놀라를 강제로 집어넣는 등 가부장제를 상징하는 남성으로, 둘째인 셜록 역시 소극적으로 사태를 방관하는 남성으로 등장한다. 튜크스베리 자작 역시 그의 권력과 지위에 비해 세상 물정을 모르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초반부 젠더 대립의 구도로부터 스스로 탈피하는 데 성공한다. 예를 들어 에놀라가 예비 신부 학교에서 숙녀다운 덕목을 배우는 모습은 남성들이 군대에서 남성성을 갖추도록 강요받는 것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는 남녀 구분에 관계없이 자연적 섹스를 근거로 사회적 젠더를 강제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도구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셜록은 에놀라를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보다는 그녀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튜크스베리 자작은 에놀라가 그의 목숨을 구해준 결과 여성 참정권을 보장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하는데 힘을 보탤 수 있었다. 이 장면들은 젠더 구분을 넘어서서 차별과 억압에 맞서는 모든 이들과 협력할 수 있다는 영화의 메시지를 단적으로 제시한다. 

이에 더해 <에놀라 홈즈>는 설사 같은 여성이더라도 성장 배경과 계급 등의 차이로 인해서 엄연히 다른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여성주의의 또 다른 문제의식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린다. 이는 젠더라는 넓은 범주의 정체성 때문에 자칫 무시될 수 있는 동일한 젠더 간의 세분화된 정체성 차이에 주목하는 인상적인 스토리텔링이라고 볼 수 있다. 작중 여성들은 선거법 개정에 대해서 각자의 정치적 성향과 신분에 따라 찬성하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한다.

<에놀라 홈즈>는 결코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영화가 아니다. 추리 영화나 셜록 홈즈 팬들에게 이 영화는 김 빠진 콜라처럼 맹숭맹숭하게 느껴질 수 있다. 전반적인 내용과 구조의 기시감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예술 영화뿐만 아니라 큰 규모의 상업 영화들에서도 여성 주인공이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영화는 충분한 성공 사례로 보인다.

이 작품은 차별화된 캐릭터와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적절한 메시지의 조화를 통해 단점은 가리고, 장점은 극대화하면서 에놀라가 맡을 다음 사건들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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