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등 사회'라고 불리지만, 그 단어를 액면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마도 별로 없을 것이다. 세상 어디를 가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급'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특히 학교에선 그런 광경이 흔하게 펼쳐진다. 과거 우열반이 외고나 과학고 등 자사고로 자가발전 하는 걸 보면, '급'을 따지며 무리를 나누는 건 인간 사회의 본원적 속성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사랑이라고 예외일까? 고전 <춘향전>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너희가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어'라는 고전적 질문은 러브스토리의 주된 갈등 중 하나였다. 세월이 바뀌면 좀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젊은이들은 너와 나 사이에 그어진 보이지 않는 금으로 인해 아프다. '음악'을 배경으로 하여 우리 사회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실감나게 담아내고 있는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젊은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준영과 송아는 다르다? 

"저 준영씨 좋아해요."

바이올린에 대한 애정으로 서령대 경영대에 재학하는 와중에도 음악대학에 입시 원서를 꾸준히 넣어 4수 끝에 음대에 입학한 채송아(박은빈 분). 그렇게 음대에서의 4년을 보낸 뒤 졸업을 앞두고 한 문화재단에서 인턴을 하고, 그 과정에서 국제 콩쿨에서 1등 없는 2등을 한 피아니스트 박준영(김민재 분)과 인연을 맺는다. 짧은 인턴 기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좋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인턴이 끝난 뒤 2학기가 시작되고 송아와 박준영은 학교에서 재회하게 된다. 송아는 자신을 뒤따라 온 준영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아침마다 '트로이메라이'를 치며 정경(박지현 분)을 향하던 복잡한 마음을 덜어내던 준영. 그는 이제 더는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하지 않지만 여전히 정경의 모친으로부터 시작된 경후 재단과 재단 이사장의 손녀 정경, 그리고 정경의 연인 현호(김성철 분)과의 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피아노를 치는 것에만 만족하며 살기에는 너무도 '현실적'인 그의 주변 관계들이 준영으로 하여금 늘 자신을 뒷전에 두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렇게 축적된 그의 '습관'과도 같은 태도는 송아의 담백한 고백 앞에서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준영은 송아에게 조금씩 다가가고 싶었다. 송아와 함께 밥을 먹고, 처음으로 학교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안식년'답게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좋았다. 하지만 그런 준영과 송아의 행보는 좁디 좁은 음대 안의 '스캔들'이 되었다. 

경영대를 나온 송아를 조교로 쓰고 싶은 교수의 속셈이야 어떻든 졸업을 앞두고 대학원이라는 가능성이 열린 송아는 기쁘다. 졸업 연주회도, 대학원 입시도 잘 해보고 싶은 송아에게 친구 민성은 준영에게 반주를 부탁해 보라고 한다. '만약 박준영이 너에게 마음이 있다면 당연히 해주지 않겠냐'고 부연하면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sbs

 
하지만 그 시각, 준영은 어려운 경제적 처지를 돌파하고자 다시 콩쿠르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유태진 교수는 현실적인 조언을 서슴지 않는다. 쇼팽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을 해 한동안 피아노 연주계를 휩쓸었던 준영이지만 얼마 전 다른 연주자가 1등을 하며 연주회조차도 만석을 채우기가 쉽지 않은 처지가 됐다. 어머니 수술비 2000만 원조차 마련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을 떨치고 시작한 레슨에서 유 교수는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모든 심사위원에게서 고르게 우수한 점수를 받아야 한다며 준영의 연주법을 애둘러 비난한다. 

다시 시작한 콩쿠르 레슨의 딜레마와 더불어 유태진 교수는 준영과 송아의 관계를 들먹이며 행여 송아의 반주를 맡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고 한다. "그게 어떠냐"는 준영의 힐난 섞인 눈빛에 유태진 교수는 "네가 반주를 하면 그 친구가 잘해도 네 덕이라는 이름표를 뗄 수 없을 것"이라며 준영과 송아의 처지를 가른다. 

그런가 하면 경후문화재단 대신 준영의 한국 매니지먼트를 맡게 된 회사의 대리인 박성재(최대훈 분) 과장은 준영이 오랫동안 해왔던 정경-현호와의 트리오를 들먹이며 준영과 친구들은 급이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동안 경후의 그런 '급'에 안 맞는 매니지먼트가 준영의 내리막길을 조장했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사랑에도 급이 있나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네 남녀의 사랑이라는 멜로적 테마를 씨줄로 삼고 우리 나라 음악계의 풍조를 날줄로 삼아 '갈등'을 더한다. 드라마는 출신과 인맥에 따라 나뉘고 갈라지는 이합집산의 모습과 그 무리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을 밀쳐내며 자신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상황을 담담하게 그린다. 

거기에 주인공 네 사람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그 리그에 던져진다. 쇼팽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을 한 준영은 그 리그의 VIP인 셈이다. 경후 그룹의 외동딸이자, 경후 재단 이사장의 손녀인 정경 역시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그에 반해 실기 1등에 외국 유학 경력을 가졌지만 평범한 부모 아래서 자라 어린 학생들 레슨을 해주기 위해  전전하는 현호의 처지는 그에게 자격지심을 갖게 했다. 경영학과를 다니면서 뒤늦게 음대에 합격한 송아는 타고난 재주를 지닌 이들 사이에서 기를 펴지 못한다. 

하지만 세상이 나눈 급과 달리, 정작 당사자들이 저마다 짊어진 무게는 누구 하나 더하고 덜할 것이 없다. 박준영이라는 이름 석자만으로도 '환호'를 받는 처지이지만 경후의 지원 없이는 모든 게 불가능했으리라는 사실이 늘 준영의 어깨를 짖누른다. 경제적 배경은 든든하지만 서령대 교수 자리에 연연해야 하는 정경 역시 마음이 조급하다. 

세상의 잣대와 저마다의 딜레마 속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청춘들은 고뇌한다. 그 고뇌는 배경만 다를 뿐 이 시대 젊은이들의 그것과 일치하기에 작품은 큰 공감을 받는다. 

조금씩 송아에게 다가가겠다는 준영이지만, 함께 하는 시간에도 저마다 짊어진 삶의 무게로 인해 두 사람의 데이트는 무겁다. 마음껏 사랑하고 싶지만, 나눌 수 없는 각자의 고민이 함께 하는 시간에도 마음을 나눌 수 없도록 만든다. 이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와 사랑을 소통하게 만들 그 무엇이 있을까? 

필요한 건 결국 세상이 그은 선을 넘어서겠다는 '용기'가 아닐까. '내가 준영을?'이라 생각했지만, "좋아해요"란 담백한 한 마디로 자신의 마음을 전한 송아처럼, 그리고 송아와 자신 사이에 수많은 금을 그어대는 사람들의 무리에서 뛰쳐나와 송아에게 "좋아요"라며 다가선 준영처럼 말이다. 

우리의 심금을 울리던 수많은 '러브 스토리'는 그들을 가른 수많은 역경을 '사랑'의 힘으로 넘어선 커플들의 아름답고 용기 있는 도전의 역사였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준영과 송아란 캐릭터가 울림을 주는 건 자신이 짊어진 무게를 스스로 온전히 버텨내면서 자신에게 온 사랑에 뒤걸음질 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좋아요'가 더욱 감동적이다. 과연 이 용기있는 젊은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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