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테로> 포스터

영화 <보테로> 포스터 ⓒ 마노엔터테인먼트

 
남미의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는 예술의 권위보다 재미와 보편성이 궁극적인 목표라 생각한다. 그는 회화와 조각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현존하는 화가 중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영화 <보테로>에는 명화를 비틀어 통통하게 표현함으로써 재해석의 유머를 담았던 예술가의 삶,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받아온 보테로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콜롬비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버려진 물건으로 창의적인 장난감을 만들어주던 부모님 밑에서 컸다. 남미의 야만적인 국가폭력 아래서 어린시절을 보낸 보테로는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위해 이탈리아로 향한다. 그곳에서 15세기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를 보고 적잖은 충격과 영감을 동시에 받는다. 만돌린의 구멍을 작게 스케치하다 드디어 트레이드 마크가 탄생하게 된다. '보테로 스타일'이라 불리는, 풍만하고 관능적이며, 입체적 볼륨감의 화풍을 만들어나간다. 
 
 영화 <보테로>스틸컷

영화 <보테로>스틸컷 ⓒ 마노엔터테인먼트

   
보테로는 명화의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오래 관찰한 후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결로 재해석한다. 벨라스케스, 루벤스, 고야, 다빈치 등의 명화를 오마주 하기에 이른다.

그는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예술임을 깨닫고 투우와 라틴 문화를 담기도 했다. 종교를 풍자적으로 그렸으며, 때론 고통 속에서 몸부림쳐야 했던 날들을 예술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둘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아들 페드로가 사고로 죽은 뒤엔 그리움을 강박적으로 그린 페드로 연작이 탄생한다. 페드로 연작엔 슬프면서도 사랑스러운 기품이 서려있어 묘한 감정이 든다. 

또한 2003년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의 수감자 학대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2005년 '아부 그라이브' 연작들을 제작하기도 했다. 보테로는 포로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자유의 탄압과 불평등에 항거하는 차원에서 끔찍한 인권유린의 고통을 그림에 담았다. 이 그림들은 이라크판 게르니카로 불린다.

하지만 무엇보다 보테로는 소탈하고 친근한 예술가다. 예술은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믿고 누구나 보는 순간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하고 명료한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이 때문에 키치 미술로 폄하되기도 했다. 그러나 보테로는 모두가 자신의 작품을 좋아할 수 없다며 너그러운 시선을 보낸다. 대중에게 권위를 세우기보다 관심을 끄는 요소를 집어넣어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창을 열어 두었다. "현대인은 단순한 감정조차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그저 미소가 지어지면 충분하다"라는 말로 재미있게 즐기길 바랄 뿐이다.

통통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는 편견
 
 영화 <보테로> 스틸컷

영화 <보테로> 스틸컷 ⓒ 마노엔터테인먼트

 
그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길 멈추지 않았다. 회화를 돌연 중단하고 조각을 배우며 성장하기에 이른다. "좋은 예술가는 해결책을 찾고 위대한 예술가는 문제를 찾는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지금 하지 않는다면 못한다는 신념은 또 다른 창작욕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들은 프랑스 샹젤리제, 미국 뉴욕 파크 에비뉴, 이탈리아 시뇨리아 광장 등 전 세계적인 도시에 세워진 조각품으로 대중과 더 가까이에서 만났다.

2만 년 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에서 풍만함은 그 시절 다산과 넉넉함을 상징했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콜라병 같은 몸매가 미인의 기준이 되자, 풍선처럼 부푼 몸은 대체로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보테로는 현실은 굉장히 메말라 있기 때문에 오히려 예술에서 넉넉함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풍요 속의 빈곤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보테로의 그림은 행복감을 안겨 준다. 구도에 꽉 찬 인물들은 현실의 다이어트 강박은 잊고 그림 속 인물이 되고 싶은 욕망을 부추긴다. 포토샵과 각종 앱으로 가늘고 길게 만드는 요즘 사진과 정반대인 과장된 인체 비례는 제도화된 틀을 벗어난다.

어렵고 복잡해야만 예술이 되는 걸까. 지적 우월주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보테로가 날리는 유쾌한 위트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보는 순간 느껴지는 정서를 있는 그대로 느끼면 된다. 본능에 충실할 때 삶은 더욱 여유로워지고 풍성해진다. "예술은 일상의 고됨으로부터 영혼을 쉴 수 있게 해준다"라는 그의 말처럼, 누적된 피로감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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