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위표 뒤집히는 묘미가 리그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나흘 전 끝난 21라운드 순위는 그저 참고 자료일 뿐이었다. 더 밀려날 수 없다는 축구 명가 수원 블루윙즈의 자존심은 강릉에서 빛났고 올 시즌 승격 팀 광주 FC는 믿기 힘든 뒷심으로 파이널 라운드 A그룹에 턱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제 두 쪽으로 갈림길이 분명하게 났으니 그 어느 때보다 우승 팀,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진출 팀, 2부리그(K리그 2) 강등 팀이 나오기까지 팀 당 다섯 게임이 흥미진진하게 열리는 일만 남았다.

박건하 감독이 이끌고 있는 수원 블루윙즈가 20일 오후 3시 강릉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2020 K리그 원 22라운드 강원 FC와의 어웨이 게임에서 왼발의 스페셜리스트 염기훈의 기막힌 세트 피스 도움 2개를 묶어 2-1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추격을 일단 따돌렸다.

'염기훈'의 택배 크로스 둘

지난 수요일(9월 16일) 빅 버드에서 포항 스틸러스 골키퍼 강현무의 눈부신 슈퍼 세이브에 혀를 내두르며 겨우 승점 1점(수원 0-0 포항)을 받아든 수원 블루윙즈는 일요일 낮 강릉으로 찾아가서 배수의 진을 펼쳐야 했다. 이 게임 시작 전까지 같은 승점(18점)으로 꼴찌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추격이 거세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홈 팀 강원 FC는 현재 가장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수원 블루윙즈를 상대로 지지 않는다면 파이널 라운드 A그룹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6위 자리를 넘보는 다른 팀들보다 자신감이 충만했다. 게임 시작 후 53분 만에 터진 첫 골 행운도 따랐다. 오른쪽 코너킥 세트 피스 기회에서 김지현의 헤더 슛을 막던 수원 블루윙즈 수비수 민상기의 자책골이 나온 것이다.

강원 FC의 이 흐름이라면 탄천종합운동장에서 같은 시각에 열리고 있는 '성남 FC-광주 FC' 게임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FC 서울-대구 FC' 게임 결과를 묻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벼랑 끝에 내몰린 수원 블루윙즈에 왼발의 해결사 염기훈이 나타났다. 박건하 신임 감독은 61분에 가운데 미드필더 안토니스를 빼고 수원 블루윙즈의 영원한 날개 염기훈을 들여보낸 것이다. 

교체 선수 염기훈은 거짓말처럼 기막힌 왼발 세트 피스 크로스 실력을 뽐내며 동점골도 모자라 역전 결승골까지 공식 기록지 도움 칸 두 곳에 당당히 자기 이름을 적으며 팀을 벼랑 끝에서 끌어올렸다. 78분, 오른쪽 코너킥을 염기훈이 왼발로 감아올렸고 미드필더 고승범이 솟구쳐 이마로 멋진 동점골을 꽂아넣었다. 고승범도 4분 전에 김건희 대신 들어온 교체 선수였으니 박건하 감독의 선택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염기훈의 왼발 택배 크로스는 그 동점골이 터지고 4분 뒤에 또 한 번 빛났다. 이번에는 오른쪽 측면 프리킥 세트 피스였다. 염기훈의 택배 크로스를 받아 역시 머리로 돌려넣은 주인공은 최근 상주 상무 군 복무를 마치고 수원 블루윙즈의 파란색 새 옷으로 갈아입은 수비형 미드필더 한석종이었다. 

이 역전 결승골로 6위 자리에 있던 강원 FC는 정규 라운드 최종 순위표에서 8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시즌 초반 강원 FC 입장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전북 현대까지 이기며 우승 경쟁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기도 했지만 여름 더위를 버티지 못하고 하향 곡선을 긋더니 결국 파이널 B그룹까지 떨어진 것이다. 

수원 블루윙즈의 결승골 주인공 한석종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강원 FC 입장에서는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2016년 11월 20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챌린지 승강 플레이오프 두 번째 게임에서 결정적인 어웨이 골을 터뜨린 주인공이 당시 강원 FC 유니폼을 입고 뛴 한석종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2부리그 K리그 챌린지에 속해 있던 강원 FC는 한석종의 귀중한 득점으로 4년만에 1부리그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 한석종이 이번에는 친정 팀을 파이널 라운드 B그룹으로 밀어낸 셈이다.

박진섭 감독의 놀라운 업적

꼴찌 팀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거센 추격을 일단 물리친 수원 블루윙즈가 한숨을 돌리는 사이 탄천종합운동장 게임은 어웨이 팀이 또 이기는 묘한 결과가 나왔다. 그 주인공들은 지난 해 2부리그에서 어렵게 올라온 광주 FC였다. 직전 라운드에서 상주 상무에게 아쉽게 0-1로 패한 광주 FC의 순위는 8위였는데 이번 정규 라운드 마지막 게임에서 성남 FC를 2-0으로 이겨 6위로 껑충 뛰어오른 것이다.

이번 시즌에 함께 승격한 부산 아이파크의 정규 라운드 최종 순위가 꼴찌 팀과 승점 3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10위라는 것을 감안하면 당당히 6위로 파이널 라운드 A그룹에 이름을 올린 광주 FC의 뚝심은 놀라울 뿐이다. 여기서 박진섭 감독의 공로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임완섭(인천 유나이티드), 최용수(FC 서울), 이임생(수원 블루윙즈) 감독들이 시즌 중에 성적 부진을 이유로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것을 감안하면 광주 FC를 이끌고 그 어느 시즌보다 어려워보이던 상위 그룹에 올라선 것은 기적이나 다름 없는 일이다.

광주 FC의 상대 팀 성남 FC도 이 게임을 비교적 많은 골을 넣고 이길 경우 남아있는 파이널 라운드 다섯 게임을 A그룹에서 뛸 수 있었지만 광주 FC의 탄탄한 수비벽을 허물지 못했다. 게임 시작 후 12분만에 광주 FC에게 약간의 행운이 따랐다. 골잡이 펠리페의 방향 전환 드리블 시도가 좋았지만 성남 FC 골문 바로 앞을 가로막는 수비수 임승겸 다리에 맞은 공이 절묘하게 펠리페의 왼발 슛을 도와준 골이 된 것이다. 

그리고 74분에 광주 FC의 귀중한 추가골이 나왔다. 윌리안의 기막힌 역습 패스를 받은 두현석이 성남 FC의 베테랑 골키퍼 김영광을 앞에 두고 침착하게 오른발 찍어차기 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두현석은 67분에 광주 FC의 에이스 엄원상 대신 들어와 7분만에 박진섭 감독의 기대에 응답한 것이다. 이처럼 광주 FC의 박진섭 감독은 팀 에이스에 대한 미련을 두기보다 과감한 전술 변화를 제시하여 팀 구성원들의 목표를 효율적으로 이루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광주 FC는 이 귀중한 승리 덕분에 순위표 두 계단을 뛰어 올라 1부리그 승격 시즌에 살얼음판을 벗어나 2021 시즌 전망을 살피는 파이널 라운드 다섯 게임을 상대적으로 부담 없이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성남 FC는 이번 시즌 홈 게임 최저 승률(22.7%) 팀의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파이널 라운드 B그룹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탄천에서 열린 11개의 홈 게임 중 1승 3무 7패(6득점 16실점)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이다. 홈팬들이 관중석에 없었기에 망정이지 야유 소리를 피할 수 없는 성적이다.

이제 K리그 원 12팀들은 두 갈림길로 나뉘어 시즌 마지막 목표를 향해 다섯 게임씩 남아있는 힘을 모두 쏟아부어야 한다. 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가 승점 2점 차이를 둔 상태에서 출발하여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기 위해 양보 없는 결승전을 펼칠 것이며, 2021 시즌에 K리그 2로 내려갈 운명에 처한 상주 상무를 제외하고 포항 스틸러스(38점)와 대구 FC(31점)가 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놓고 다툴 것으로 보인다. 만약에 FA(축구협회)컵 우승 팀과 상주 상무가 파이널 라운드 종료 시점 4위 이내에 들어갈 경우를 대비하여 최종 순위 5위까지 2021 시즌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받을 수 있으니 광주 FC도 포기할 일은 아니다.

이들 여섯 팀보다 더 가혹한 길로 접어든 나머지 여섯 팀은 그 어느 때보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파이널 라운드 B그룹 다섯 게임씩을 뛰어야 한다. 7위 FC 서울(25점)부터 12위 인천 유나이티드(18점)까지 승점 차이가 7점 뿐이기 때문이다. 승점 계산기가 현재 1자리 숫자를 해결하면 되기 때문에 이들 여섯 팀이 펼치는 진정한 강등권 탈출 게임은 바로 지금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K리그가 자랑하는 더비 매치 중 하나인 '수원 블루윙즈 - FC 서울'이 맞붙는 슈퍼 매치가 사상 처음으로 빛바랜 B그룹 1게임으로 편성되는 것을 포함하여 이른바 수도권 네 팀이 모두 여기 몰려 있기에 강원 FC와 부산 아이파크가 그들 틈바구니에서 눈치 작전을 펼쳐야 한다. 

이들 하위 여섯 팀들끼리의 정규 라운드 10게임씩 결과만 놓고 보면 11위 수원 블루윙즈가 4승 3무 3패(14득점 11실점)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설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 다음으로는 10위 부산 아이파크가 3승 5무 2패(12득점 10실점)로 상대적 강등 탈출 가능성이 높은 팀이라는 기록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이 자료는 어디까지나 참고일 뿐 모든 팀들이 한 게임 한 게임 어느 하나라도 놓칠 수 없는 입장이다. 상주 상무와 함께 2021 시즌에 K리그 2로 내려갈 꼴찌 팀 운명은 27라운드가 다 끝나는 순간까지 지켜볼 일이다. 진짜 가을 축구만 남았다.

2020 K리그 원 22라운드 결과(20일 오후 3시, 왼쪽이 홈 팀)

강원 FC 1-2 수원 블루윙즈 [득점 : 민상기(53분,자책골) / 고승범(78분,도움-염기훈), 한석종(82분,도움-염기훈)]
성남 FC 0-2 광주 FC [득점 : 펠리페(12분), 두현석(74분,도움-윌리안)]
인천 유나이티드 FC 0-1 울산 현대 [득점 : 주니오(25분,도움-이동경)]
전북 현대 2-0 부산 아이파크 [득점 : 조규성(4분,도움-김보경), 구스타보(36분)]
포항 스틸러스 4-3 상주 상무 [득점 : 팔로세비치(27분,도움-이승모), 팔로세비치(31분,도움-팔라시오스), 송민규(74분,도움-강상우), 팔로세비치(90+7분,도움-이승모) / 문선민(58분), 정재희(59분,도움-오현규), 김민혁(85분,도움-문선민)]
FC 서울 0-0 대구 FC

2020 K리그 원 22라운드 최종 순위(상위 6팀→파이널 A그룹, 하위 6팀→파이널 B그룹)
1 울산 현대 50점 15승 5무 2패 45득점 15실점 +30
2 전북 현대 48점 15승 3무 4패 38득점 19실점 +19
3 포항 스틸러스 38점 11승 5무 6패 41득점 28실점 +13
4 상주 상무 38점 11승 5무 6패 29득점 27실점 +2
5 대구 FC 31점 8승 7무 7패 36득점 31실점 +5
6 광주 FC 25점 6승 7무 9패 28득점 32실점 -4
-----------파이널 라운드 A, B그룹 구분선---------------
7 FC 서울 25점 7승 4무 11패 19득점 37실점 -18
8 강원 FC 24점 6승 6무 10패 27득점 36실점 -9
9 성남 FC 22점 5승 7무 10패 19득점 26실점 -7
10 부산 아이파크 21점 4승 9무 9패 21득점 31실점 -10
11 수원 블루윙즈 21점 5승 6무 11패 20득점 26실점 -6
12 인천 유나이티드 FC 18점 4승 6무 12패 15득점 30실점 -15

파이널 라운드 B그룹 팀끼리의 2020 시즌 상대 성적 순위
1 수원 블루윙즈 15점 4승 3무 3패 14득점 11실점 +3 
2 부산 아이파크 14점 3승 5무 2패 12득점 10실점 +2
3 FC 서울 14점 4승 2무 4패 12득점 13실점 -1 
4 성남 FC 14점 3승 5무 2패 8득점 7실점 +1
5 강원 FC 12점 3승 3무 4패 15득점 17실점 -2
6 인천 유나이티드 11점 3승 2무 5패 6득점 9실점 -3 (상대 승점-다득점-골 득실차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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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K리그 수원 블루윙즈 광주 FC 염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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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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