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여자> 스틸 컷

<도망친 여자> 스틸 컷 ⓒ 전원사

 
지난 2018년 개봉한 <강변 호텔>에서 외딴 호텔에 머물던 늙은 시인은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홍상수의 페르소나인 듯한 노시인, 평소 그의 영화 속 남자들처럼 평생을 여자 주변을 맴돌며 찌질하게 사랑을 향해 추파를 던지던 그는 결국 그렇게 살다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는 자신의 본능적 세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남성들의 세계에 마침표를 찍은 듯했다. 줄기차게 '그'들의 이야기에 천착해 왔던 홍상수 감독이기에 '죽음'으로 종착역에 도달한 듯한 그의 세계에서 과연 더 할 이야기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건 1막의 끝일 뿐이었다. 배우 김민희와 함께 한 후 <밤의 해변에서 혼자> <클레어의 카메라> <풀잎들>을 통해 그간 홍상수 감독이 천착해 왔던 남자들의 세계에서 '객체'였던 여성들이 조금씩 그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근 공개된 <도망친 여자>는 그 프레임의 시선이, 주체가 변화되었음을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도망친 여자>는 홍상수 영화의 2막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음을 선포하고 있다. 

감희, 5년 만에 외출하다 
 
 <도망친 여자>

<도망친 여자> ⓒ 전원사


영화는 번역가인 남편과 함께 산 지 5년 만에 홀로 첫 외출을 감행한 감희(김민희 분)의 여정을 따른다. 

처음 그녀가 찾은 곳은 '언니', 영순(서영화 분)의 집이다. 영순은 서울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위치한, 텃밭까지 갖춘 빌라 단지에서 살고 있다. 서로 반가운 덕담을 나눈 두 사람은 감희가 사온 막걸리를 마시며 지나온 이야기를 나눈다. 

<도망친 여자>에서 확인할 수 있는 홍상수 감독 영화의 새로운 특징은 '대화'다. 물론 이전 작품에서도 홍 감독에게 있어 '대화'는 주요한 영화적 장치였다. 특히 남자와 여자가, 사람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엇물리는 듯 나누게 되는 대화는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가가는 계기로 작용하곤 했다. 그처럼 홍상수 감독에게 있어 '말'은 그저 '말'이 아니라 '관계'의 리트머스 시험지같은 것이었다. 드러난 '언어' 이면의 미묘한 '관계'를 알 수 있는.   

하지만 이제 <도망친 여자>에서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영상 미학으로서 영화의 또 다른 '도전'이 된다. 감희와의 대화를 통해 '영화'의 삶이 드러난다. 한때 연극을 하던 남자와 결혼 생활을 했던 영순은 지난한 과정을 통해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터전을 잡은 영화는 또 다른 여성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웃에 사는 엄마는 도망친 젊은 여성에게 '따뜻한 품'을 내준다. 관객들은 영상으로 직접 상황을 목격하기 보단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영순의 삶을 추측한다. 마치 누군가 책을 읽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등장 인물의 삶을 보여준다. 

감희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홀로 사는 수영(송선미 분)의 집이다. 역시나 가볍게 인사치레를 넘긴 두 사람의 대화는 수영의 삶으로 향한다. 오랫동안 필라테스 강사를 하며 제법 돈을 모은 수영은 어머니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공간을 마련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살고 싶은 곳에서 만나고 싶은 만나며 살고 싶다는 수영은 그래서 편의성은 떨어지지만 경치가 좋고 예술적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이 모인 이곳에 터전을 잡았단다. 

여정의 끝은 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홀로 차를 만시던 감희 앞에 뜻밖에 예전에 알던 우진(김새벽 분)이 등장한다. 어딘가 껄끄러워하는 감희와 달리, 그녀와의 해후를 반기는 우진. 그러면서 우진은 오래전 자신으로 인해 어긋났던 관계에 대해 뒤늦게 사과를 전한다. 그리고 그 사과를 받아들인 감희에게 사과를 깎아주며 한때는 감희를 아프게 하며 '쟁취'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결혼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우리 시대 여성의 삶과 결혼 
 
 <도망친 여자> 스틸 컷

<도망친 여자> 스틸 컷 ⓒ 전원사


영화는 연배는 다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비춰준다. 그리고 거기엔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물음이 내포돼 있다. 중년인 영순은 아마도 그 또래 여성에게 기대되어질 남편-아이와의 삶 대신, 동반자적인 또 다른 여성과의 평안한 삶에 만족한다. 그는 아이를 키우지는 않지만, 이웃의 여성에게 '모성'적인 위로를 건넨다. 홀로 사는 수영 역시 경제적인 면에서나, 관계적인 면에서 충분히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려 한다. 영순과 수영의 모습은 이제 더는 여성들의 삶에 있어서 '결혼'은 필요 충분 조건이 아님을 보여준다. 

반면 감희를 아프게하면서까지 결혼을 했던 우진은 남편이 TV에도 자주 나오는 유명 인사가 되었지만 그게 외려 마땅찮다. 그는 유명세에 걸맞게 이곳 저곳에서 동어 반복적인 말을 되풀이하는 남편의 속물적인 모습에 실망하는 중이다. 말은 많지만 관계는 충실치 않는 결혼 생활이 어쩐지 불편해 보인다. 

그렇다면 감희는 어떨까? 영화는 어쩌면 이들 여성들과의 만남을 통해 제목인 '도망친 여자'의 마지막 퍼즐을 관객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과연 감희는 그녀의 말처럼 5년 만에 외출을 한 것일까? 그 힌트는 세 사람을 만나가며 조금씩 달라지는 결혼에 대한 뉘앙스의 차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지난 5년 동안 한번도 남편과 떨어진 적이 없다는 감희.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면 그렇게 항상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한 주체는 감희가 아니라 남편이었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며 남편의 입을 빌려 전하던 감희는, 수영을 만나고, 그리고 결혼 생활의 권태를 토로하는 우진과의 만남에 이르러서야 그렇게 늘 항상 함께 하는 남편과의 삶이 '사랑'만이 아닐 수 있음을 살포시 드러낸다. 

그리고 그렇게 여성들의 삶이 전면에 드러나는 것과 달리,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프레임 주변에서 서성이다 사라진다. 영순의 집으로 찾아와 영순네가 밥을 주는 길고양이를 대번에 도둑 고양이라 지칭하며, 자신의 아내가 고양이를 무서워한다며 따지고 드는 안하무인의 이웃 남자, 수영과 하룻밤을 보내고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감정에 대한 책임을 떠맡기려는 시인, 그리고 우연히 감희와 만나, 감희가 마치 자신을 찾아온 듯 오해하며 감정의 부스러기를 흘리는 우진의 남편 등은 이전 홍상수 영화 속 '자기' 중심으로 세계가 돌아가는 예의 그 남자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영화 속 여성들에게 '어이없음'을 선사한다.

마치 이런 남자들과 저 여성들이 어떻게 한 하늘을 이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겠냐며 반문을 하듯 말이다. 독불장군같은 영순의 남편이나, 사랑이란 이름으로 무엇이든 함께 해야 한다는 감희의 남편은 등장하지 않지만, 동일한 맥락을 지닌 인물들인 것으로 추측된다. 

여전히 '결혼'이라는 것이 인간 사회의 대표적인 '행복' 장치로 인정받는 세상. 하지만 영화는 그 장치의 안과 바깥에서 살아가는 등장 인물들을 통해 그 '제도'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그 '제도'를 통해 행복을 담보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다양한 연배의 여성들의 삶을 통해 제도적 장치가 아니라도 각자 다양한 삶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렇게 영화는 동시대 여성들의 진솔한 삶에 다가선다. 아마도 베를린 영화제가 그에게 감독상을 수상한 이유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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