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뮬란> 스틸컷

<뮬란>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배우 유역비(류이페이) 주연의 월트디즈니 영화 <뮬란>이 '보이콧 뮬란' 불매운동 속에서 17일 개봉됐다. 소수민족 문제와 인권 논란이 있는 신장위구르자치구 지방당국의 촬영 협조에 감사하는 문구가 엔딩 크레디트에 들어가고, 작년 홍콩 송환법 사태 때 유역비가 SNS를 통해 홍콩 경찰을 지지한 일 등으로 인해 논란이 벌어지는 가운데 한국에서 영화가 개봉됐다.
 
옛날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지만, 등장인물들은 중국어가 아닌 영어로 말을 한다. 배경이 어느 시대인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그냥 '옛날 중국 이야기' 같은 느낌을 풍기는 영화다. 대사가 영어이다 보니, 미국 할머니가 미국 손녀·손자에게 들려주는 판타지 동화 같은 느낌도 없지 않다.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이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전면적인 경제전쟁으로 발전하는 단계에서 개봉돼 논란이 한층 증폭될 수밖에 없었지만, 이 작품의 소재 자체는 오랫동안 중국인들의 관심을 받아온 것이다.
 
화목란을 둘러싼, 확실치 않은 사실들

목란을 노래한 서사시인 <목란사(木蘭辭)>가 수록된 <고금악록(古今樂錄)>이 발행된 때가 568년이다. 목란은 그 이전부터 중국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그 후 여러 고대 문헌에 등장했던 목란은 현대에도 지속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중국의 드라마나 소설뿐 아니라 전통극인 경극(京劇)에도 등장했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1997년에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뮬란>이 나오기 전에도 그랬다. 1927년에는 <화목란이 종군한다(花木蘭從軍)>라는 중국 영화가 나왔고, 1939년에는 <목란 종군하다(木蘭從軍)>가 상영과 동시에 당대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한자로 목란(木蘭)이고 중국어 발음이 무란(mulan)이라서 서양인들이 뮬란으로 부르는 그는 프랑스의 잔 다르크보다 큰 업적을 세우지는 못했어도 잔 다르크에 비견될 만한 요소를 갖고 있다. 충과 효를 실천한 애국 효녀이자 애국 영웅인 그는 역대 중국의 정치권력뿐 아니라 민중 역시 선호할 만한 캐릭터다.
 
그런데 그에 관해서는 확실치 않은 것들이 많다. 실존 인물인지부터가 불명확하다. 그가 알려진 것이 역사서 형식의 문헌을 통해서가 아니라, <목란사> 같은 문학작품 형식의 문헌들을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현대인들은 역사서와 소설을 칼로 무 베듯 구분하려 하지만, 이것이 모든 경우에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실존인물의 행적을 거의 그대로 추적한 소설인 경우에는, 역사서인지 문학인지 명쾌히 구분하기가 힘들어진다.
 
현대인들과 달리 고대인들은 문학과 역사를 분명히 구분하지 않았다. 단군에 관한 이야기도 처음에는 신화 형식으로 전승됐다. 현대인들은 신화를 문학 카테고리로 분류하지만, 무당을 겸한 고대 사관(史官)들은 이 형식을 빌려 역사를 기록하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들이 역사서로 분류하는 문헌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화목란이 가상의 인물이었을 거라고 곧바로 단정할 수는 없다. 민간에도 역사를 기록하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이 남긴 문헌이 오늘날 문학작품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화목란에 대한 설이 분분한 이유
 
 <뮬란> 스틸컷

<뮬란>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실존인물 여부뿐 아니라, 성이나 출신지 또는 시대를 둘러싸고도 논란이 있다. 화목란이 아니라 주(朱)목란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만약 주씨라면, 조선의 논개와 동성이 된다.
 
출신지가 하남(허난, 산둥성 서남쪽)이 아니라 하북(허베이, 베이징 남쪽)이라는 설도 있고, 북위 효문제(재위 471~499) 때 사람이 아니라 다른 시대 사람이라는 설도 있다. 이처럼 설이 분분한 것은 그가 관찬 역사서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에 관한 대중적 관심이 열렬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영화 <뮬란>은 소녀 뮬란을 통제 불능의 말썽꾸러기로 묘사했지만, 화목란은 베 짜는 일을 하던 당대의 일반적인 여성이었다. 2001년에 <중국인문과학> 제22호에 수록된 논문 '목란시고(考)'에 실린 중문학자 안동환의 번역문에 따르면, <목란시(詩)>로도 불리는 <목란사>는 이렇게 말한다.
 
탄식하고 탄식하며
목란은 창문을 바라보며 베를 짜네

 
남경여직(男耕女織)의 시대였다. 일반적인 남성들은 경작을 하고, 일반적인 여성들은 가사 노동에 더해 실 잣고 베 짜는 일을 하던 시대였다. 평상시처럼 방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베를 짜던 목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진 것은, 북방 변경이 침략을 당하고 아버지가 징집영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아들의 징집영장에 우는 시대가 아니라, 아내나 자녀가 아버지의 징집영장에 우는 시대였다.
 
영화 <뮬란>에는 여동생만 나오지만, <목란사>에 따르면 그에겐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나이 들어 힘없는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가실 생각을 하니, 그렇다고 남동생을 보낼 수도 없어서 화목란은 그저 눈물만 나올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탄식에는 '끝'이 있었다. 어느 순간 결심을 한다.
 
말안장과 말을 사서
지금부터 아버지 대신해서 출정할까 하네

 
무기를 자비로 구입해야 했던 시절의 풍경이다. 이런 풍경은 조선시대까지의 한국 역사에도 나타난다. 군대 갔다 온 사람의 집에는 창이 한두 개씩은 있었다.
 
10년간의 전투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화목란

영화 속 뮬란은 가족들 몰래 집을 떠나지만, <목란사> 속의 화목란은 그렇게까지 매정하지는 않았다. "아침에 부모님께 하직하고 떠나/ 밤에는 황하 가에서 유숙하니"라고 <목란사>는 말한다.
 
굳이 남장을 할 것도 없이 군복을 입고 떠나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부모님은 목란의 이름을 수없이 외쳐댔지만, 어느 순간부터 목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부모님이 딸 부르는 소리 들리지 않고/ 황하의 물 흐르는 소리만 철렁 철렁 들리네"라고 <목란사>는 말한다.
 
영화 속 뮬란은 커다란 불사조로도 변신하고 수십 마리의 작은 새들로도 변신하는 적군 진영의 무녀와도 대결한다. 그런 환상적 분위기 속에서 뮬란은 전공을 세운다.
 
<목란사> 속의 화목란은 약 10년간의 전투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 공로로 그는 '칸(汗)'으로도 불리는 황제 앞에 불려간다. 유목군주 칭호인 칸이 등장하는 것은 북위를 비롯해 이 시기의 북중국 왕조들이 유목민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칸은 상서랑(尙書郞)이라는 벼슬에 임명하고자 했다. 북위가 포함된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중앙행정관서 기관장인 상서 밑에 좌승(左丞)·우승이 있고 그 밑에 상서랑이 있었다. 이처럼 고위직을 줬지만, 목란은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며 고사한다.
 
칸께서 소원 물으니
목란은 상서랑 필요 없으니
천리마 주시오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네.

 
목란은 아버지를 대신해 입대함으로써 효(孝)를 입증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해 군대에 가도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을 시절이다. 목란의 입대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했다.
 
그 뒤 그는 왕조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전장을 누볐다. 이로써 충(忠)을 입증한 그는 나중에는 부모 봉양을 명분으로 관직을 고사함으로써 효(孝)를 재입증했다. 충을 입증함으로써 지배층이 좋아하는 인간상임을 증명하고, 효를 입증함으로써 민중과 지배층이 함께 좋아하는 인간상임을 증명한 것이다.
 
그가 여성이라는 게 드러난 것은 12년 만에 귀향할 때
 
 영화 <뮬란> 스틸컷

영화 <뮬란>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에서는 군복 속의 몸을 감추고자 하는 뮬란의 행동이 관객의 긴장감을 높인다. 특히 목욕 문제가 그렇다. <목란사> 속의 화목란은 이에 관한 노하우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여성이라는 게 드러난 것은 12년 만에 귀향할 때였다.
 
전쟁 때 입었던 군복 벗어 던지고
옛 치마 입네
창문 앞에서 구름 같은 귀밑머리 손질하고
거울 바라보며 화황(花黃) 이마에 붙이네
문 나서 전우들 바라보니
전우들 모두 깜짝 놀라고 두려워하네
함께 다닌 지 12년인데
목란이 여장부인 줄 몰랐다 하네

 
충효를 실천하는 것에 더해, 마지막 순간에 화장을 하고 성별을 공개하는 극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실존 인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이 같은 극적 장치가 화목란을 더욱 더 대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조선 후기에 나온 <열녀춘향 수절가>에도 이몽룡이 춘향의 글귀를 보고 "기특하다! 이 뜻은 목란의 절개로다"라며 화목란을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전통적으로, 안보에 대한 중국인들의 민감도는 한국인들을 훨씬 능가한다. 중국은 사방이 적국으로 둘러싸여 있다. 거기다가 내륙이 평원이기 때문에, 변경만 뚫리면 내륙이 순식간에 점령당할 수 있다.
 
그래서 유목민 출신이든 한족 농경민 출신이든, 중국 왕조들은 변경 안보에 특히 민감했다. 변경이 침략을 당한 상황에서 아버지를 대신해 전쟁터에 뛰어든 화목란이 중국인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안보 위기 앞에서 중국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보여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목란 종군하다>가 대히트를 기록한 1939년 당시의 중국도 일본 침략군과 한창 전쟁하고 있었다. 외세의 압력이 가중되는 시대적 상황이 화목란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을 고조시켰던 것이다.
 
화목란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

2017년 이후의 중국은 미국의 파상 공세에 직면해 있다. 지금 중국은 홍콩·타이완·티베트·신장위구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변경의 위험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는 시기이므로, 화목란 같은 인물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이 더욱 더 고조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화목란 유형의 인물에 대한 미국 측의 경계심 역시 커질 수밖에 없는 시기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해외팽창을 가능케 하는 요인들에 대해 극도의 민감성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 <뮬란>이 국제적 논란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조성돼 있는 것이다.

신장위구르의 소수민족 문제 및 인권문제와도 연관성이 있지만, 미·중 충돌 상황 자체가 화목란 같은 유형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을 부르기 쉽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뮬란>은 주목과 경계를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영화사도 아닌 미국 영화사가 <뮬란>을 제작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세계적 기업인 월트디즈니가 지금의 정치상황과 화목란의 의미 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로 영화 상영을 추진한 것이 의아하게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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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신라왕실의 비밀,왕의 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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