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열린 제47회 한국방송대상에서 다큐멘터리 부분은 CBS 라디오 특집 다큐멘터리 <조선인 전범 – 75년 동안의 고독>을 연출한 정혜윤 PD가 수상했다. <조선인 전범 – 75년 동안의 고독>은 해외 취재와 여러 고증을 통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 전범에 대해 고증했다. 그리고 전범이 된 그 사람들의삶을 추적한다.  

<조선인 전범 – 75년 동안의 고독> 취재 뒷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11일 프로그램을 연출한 정혜윤 CBS PD와 전화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정 PD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정혜윤 CBS PD

정혜윤 CBS PD ⓒ 정혜윤 제공

 
- CBS 특집 다큐멘터리 <조선인 전범 – 75년 동안의 고독>으로 47회 방송대상 다큐멘터리 부분 수상하셨잖아요. 수상 소감 부탁드려요.
"제 다큐멘터리에 조선인 전범 사형수들이 나오는데요. 그중 최후의 사형수가 죽기 직전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고 전해 달라'는 말을 남겼어요. '혹시 그 마음이 오랜 세월이 지나 전해졌을까' 싶어 그분이 먼저 떠올랐어요."

- 수상 이후 주위 반응은 어떤까요.
"오랜만에 받는 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솔직히 큰 관심을 받지 못했어요. 어쩌면 수상보다 더 기쁜 것은 자신이 할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일 텐데요. 그건 제 나름대로 확실히 있었어요."

- 라디오 다큐멘터리의 매력은 뭐라고 보세요?
"많은데요. 라디오는 매일매일 방송하잖아요.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는 1년에 하나 정도밖에 못해요. 매일 방송을 하면 항상 아쉬움이 남아요. 그렇지만 1년에 딱 하나를 만들게 되면, 이런저런 핑계 속으로 숨을 수 없어요. 본인에게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볼 기회를 주는 것과 같아요.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걸 계속 상상하게 만드니까 좋아요. 내가 정말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알게 되는 거죠."

- 라디오는 화면이 없어서 모든 걸 말로 설명해야 하잖아요. 어려운 점은 없나요?
"어려울 수도 있지만 매력이기도 해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상상해야 돼요. 두 번째는 모든 걸 말로 한다고 했지만, 말은 아무리 해도 부족해요. 내 마음을 표현하는 데 말은 한계가 있어요. 그런데 듣다 보면 어쩐지 말해지지 않은 부분까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에요. 이를테면 제가 세월호 유족을 인터뷰를 했는데 세월호 유족이 '얘야. 너무 보고 싶다' 라고 하면 그 뒤에 엄청나게 많은 말이 숨어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거든요. 우리에겐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엄청난 능력이 있어요."

-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도 있나요.
"시대가 워낙 시각적인 시대라 그렇긴 한데요. 관심을 끄는 게 중요시되는 상황이 저희 방송 제작자 입장에선 참 난처해요. 하지만 제게 중요한 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느냐의 문제예요. 그 이야기 안에 우리 마음을 끄는 무언가가 있는지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무언가가 있는지를 일차적인 기준으로 생각해요."

"왜 친구들이 죽어야 했는지 평생 물음표 삼았어요"
 
 일본 가서 취재 중인 정혜윤 CBS PD

일본 가서 취재 중인 정혜윤 CBS PD ⓒ 정혜윤 제공

 
- <조선인 전범 – 75년 동안의 고독>는 어떤 다큐인지 간단하게 설명 부탁드려요.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있는 다큐예요. 전범이 된 사람들은 태평양 전쟁 말기의 포로감시원들이었어요. 이분들 중 강제로 간 사람도 있고 선택해 간 사람도 있어요.  당시에 자기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선택을 한 거예요. 포로감시원이 되면 월급도 많은 편이고 직접 총은 안 쏘고 직접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되고, 식민지 조선을 떠나 다른 나라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제가 이 다큐를 하게 된 계기 중의 하나가 조선인 전범으로 사형당한 사람의 유서를 본 것인데요. 유서의 내용은 '아무래도 이 세상에서 살기 싫다는 말은 좀 거짓말인 거 같다. 할 수 있다면 여기서 좀 더 살고 싶다. 꼭 죽어야 한다면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라도 남고 싶다' 이렇게 적혀 있어요. 그 다음에 짧았던 26살의 삶을 돌아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이야기해요. 사실 이부분에서 제가 더 놀랐는데요. '26살 짧았던 나의 삶을 돌아보니 나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다. 내 것이라고 할 게 없다. 다 모방 아니면 허영이었다'라고요. 그러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아, 당신은 당신 자신의 지혜를 갖고 당신 자신의 삶을 살라'고 해요.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자신의 목소리를 갖는다는 게 뭔지 이 유서를 따라가면서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 포로감시원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됐어요?
"리처드 플래너건 작가의 <먼북으로 가는 좁은 길>이라는 소설이 있는데요. 맨부커상 수상작이고 엄청나게 힘이 있는 좋은 소설이에요. 그 소설은 <콰이강의 다리>를 만들기 위해서 강제노동을 하는 호주 포로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근데 그 프로들을 가장 학대하는 존재가 바로 조선인이에요.

세계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에서 가장 악역을 맡는 사람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이 가슴 아팠어요. 이 조선인들은 포로들을 학대하기도 하지만 또 일본인으로부터 학대당하는 존재예요. 소설 속 조선인은 결국 전범 재판을 받고 교수형을 당해요. 그때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 '내 돈 50엔 줘!'예요. 50엔은 일본이 포로감시원들에게 주기로 한 월급이었어요. 죽을 때 사람이 '내 돈 줘'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는 건 너무 비참하잖아요. 이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고 어떻게 태국까지 가서 백인 포로들을 감시하게 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었는지 궁금했어요."

- 복잡한 문제인데, 포로감시원은 친일파로 볼 수 있는 건가요?
"그렇게 단순한 규정짓기로 이해할 수 있는 삶이 아니죠. 태평양 전쟁이 끝나니까 전쟁 재판이 열렸어요. 제네바협약에 따라서 포로를 학대한 사람이 재판을 받게 된거예요. 엄청난 사람이 죽은 거대한 전쟁의 책임은 천황도 아니고 일본 군부도 아니고 731부대 책임자도 아니고 식민지 조선인 포로감시원이 진 거예요. 우리는 정의를 원하지만, 그 정의는 전쟁 재판에서 너무나 초라하게 실현됐어요. 조선인 전범들은 귀국해서 친일파 부역자라고 손가락질 받아요. 많은 사람은 자기가 전범이었다는 걸 죽을 때까지 말하지 않기도 했고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묻혀버린 목소리가 된 거죠. 그러나 사실 천황에게 충성하러 거기 간 사람은 없는 거잖아요."

- 엄밀히 말하면 그렇죠. 
"하지만 상황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궁색한 변명이죠. 그 시절에 누군가는 독립운동을 했고 누군가는 끌려가서 엄청나게 고문도 당했잖아요. 그러니까 전범들은 자신이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어려운 경계선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훗날 다시 일본에서 정의를 요구하는 전범재판을 할 때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일본도 밉지만 일본에 충성한 내 자신의 무지가 원망스럽다'고요. 저희도 많은 일을 하지만 그중에 과연 어떤 일이 올바른 걸까요? 지금 확신에 차서 하는 말이 나중에 틀릴 수도 있는 거잖아요. 내가 열정을 불태우는 그 일이 사실은 올바른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이분들의 말을 통해 배우는거죠."

 - 처음 어디서부터 취재를 시작했어요?
"일본으로 갔어요. 아마 전범 마지막 생존자일 텐데요. 이학래 할아버지를 만났어요. 현재 95살일 거예요. 그때 할아버지가 긴 시간 할 수 있는 마지막 인터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취재 끝나고 가려는데 주머니에서 뭘 꺼내 보여 주시는 거예요. 전쟁 때 죽은 조선인 사형수명단이에요. 그분은 그 명단을 평생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잊지 않았던 거죠. 왜 우리 친구들이 죽어야만 했는지 평생 물음표로 삼았던 거예요."

- 취재하면서 마음이 가장 아팠을 때는 언제였나요?
"유서를 볼 때죠. 이 사람들은 식민지 조선에 태어나서 태국이든 인도네시아든 남방으로 가서 일본의 최말단 군속으로 근무하다가 이후에 말도 안 통하는 재판을 받고 왜 죽는지도 잘 모르고 죽은 거잖아요. 그리고 그것이 정의 실현이라는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나는 거고요. 그런 부분이 마음 아팠어요."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있나요?
"있죠. 콰이강의 다리 건설 현장에서 일한 100살 먹은 일본인 장교를 찾았어요. 당시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의 상황이 어땠는지 증언해 줄 수 있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그 일본인 장교를 만나려고 비행기를 타고 규슈로 갔는데 폭우가 내렸어요. 도로가 봉쇄되어 그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했어요. 그때 너무 속상했어요."

- 그 후에도 못 만났나요?
"두 분 중에 한 분만 만났고요. 한 분은 끝내 못 만났죠."

- 마지막으로 취재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거의 말한 부분이랑 비슷한데요. 큰 역사가 있다면 수많은 개인의 작은 역사가 있어요. 유서를 남긴 조문상씨가 사형당하던 날 비가 많이 내려요. 죽으러 가는 사람인데 비가 너무 차다고 생각해요. 추운데 그냥 참고 맞고 가자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사형당하러 가는 사람도 비가 차고 춥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생명이란 게 뭘까 생각 많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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