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성기를 이끈 세계적인 명장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은 "축구에서 99%를 차지하는 것은 선수이고 감독의 비중은 1%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1%가 99%를 지배한다"는 유명한 어록을 남긴 바 있다.

퍼거슨의 어록은 스포츠에서 감독의 역할과 영향력을 가장 잘 설명한 표현으로 회자된다. 경기에서 뛰는 것은 선수들이지만, 그 선수들을 얼마나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역할'로 기용하여 최상의 효과를 끌어낼 수 있느냐는 결국 감독의 선택에 달렸다. 명장과 범장의 차이도 그 한순간에 갈린다.

15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과 울산의 하나원큐 K리그1 2020 21라운드 '현대가 더비'의 운명을 좌우한 것도 감독의 선택 차이에서 비롯됐다. 전북과 울산은 올시즌 압도적인 전력을 바탕으로 K리그에서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팀들이다. 전력차가 큰 약팀들과의 대결에서는 선수들의 능력만으로 얼마든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엇비슷한 강팀들과의 맞대결에서는 감독의 역량이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변수가 되기도 한다.

분위기상 울산이 조금 더 유리해 보이던 경기였다. 전북은 김진수의 이적 이후 최근 3경기 연속 무승(1무2패)에 무려 7실점을 헌납하는 부진을 보이고 있었다. 울산도 앞선 광주-대구전에서 연이어 무승부에 그치며 주춤했지만 최근 11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달리며 전력에서 전북보다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상의 결승전으로까지 불린 빅매치를 앞두고 두 감독은 각기 다른 승부수를 꺼내 들었다. 공교롭게도 양팀 모두 22세 이하(U-22) 의무 출전 규정이 생각지도 못한 변수로 작용했다.

다른 승부수 꺼내든 두 감독

모라이스 전북 감독은 이날 22세 이하 선수들을 전원 선발 명단에서 제외했다. K리그 규정상 22세 이하 선수들을 기용하지 않으면 교체 카드 3장 중 1장을 손해 봐야하는 상황이었지만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최상의 선발 라인업을 가동하겠다는 승부수였다. 벤치 명단에도 22세 이하 멤버는 조규성 한 명뿐이었다. 전북 입장에서는 이날 비겨도 손해인 상황에서 패하기라도 하면 승점차가 8점까지 벌어지는 만큼, 반드시 이기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반면 김도훈 울산 감독은 최전방에 리그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는 부동의 에이스 주니오와 장신 공격수 비욘 존슨을 모두 선발에서 제외하고 그 자리에 2000년생 유망주 공격수 박정인을 원톱으로 기용하는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김 감독의 선택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모라이스 감독과 달리 U-22 카드를 기용하면서 교체 카드 3장을 확보, 올해 34세로 지난 경기에서 폼이 다소 떨어진 듯한 모습을 보였던 주니오의 체력도 안배하여 후반에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승부에서 너무 많은 '계산'은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올 때도 있다. 결과적으로 김도훈 감독의 선택은 팀이 가진 고유의 장점마저 스스로 희석시키는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울산은 불과 전반 1분 만에 바로우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기세 싸움에서 주도권을 내줬다. 다급해진 울산은 불과 전반 27분 만에 박정인을 빼고 주니오를 투입해야 했고, 교체카드 한 장을 무의미하게 소비한 꼴이 되어 전북보다 나을 게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준수한 모습을 보이던 원두재를 굳이 스리백에서 포어 리베로에 가까운 역할을 맡긴 것도 현명하지 못했다. 이날 경기초반 실점의 빌미로 이어진 장면을 고려하면, 오히려 이 선택이 박정인의 선발기용보다 더 치명적인 패착이었다. 첫 실점 이후에도 선수들이 스리백 적응에 애를 먹으며 헤매는 모습을 보이자 김도훈 감독은 다시 전형을 포백으로 바꾸어야 했고 원두재도 다시 미드필더로 복귀했다. 

울산은 후반에야 김인성-비욘 존슨을 잇달아 투입하며 승부수를 던졌으나 전북의 골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전북이 한교원의 추가골까지 터지며 승기를 잡았다. 울산은 후반 추가시간에 주니오의 PK골로 영패를 면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전북은 이날 승리로 승점 45점을 올리며 울산(승점 47)과의 격차도 2점으로 줄였다. 올시즌 정규라운드 홈과 원정 두 번의 맞대결에서 모두 승리한 것을 비롯하여 통산 상대 전적에서도 99전 37승 26무 36패로 우위를 점하게 됐다. 양팀 감독 간의 맞대결에서도 3승 2무 1패로 모라이스 감독이 김도훈 감독과의 격차를 벌렸다. 무엇보다 울산 쪽으로 기우는 듯했던 양팀의 우승 경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전북은 향후 경기결과에 따라 파이널라운드에서 한 번 더 울산에 승리한다면 '자력으로 역전우승'도 가능하다.

모라이스 감독은 그동안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전북 특유의 닥공 색채가 무뎌진 것과 전술적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울산전에서는 근래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중요한 빅매치에서 보여준 승부수가 제대로 먹혔다. 

김도훈 감독과 울산은 이번에도 큰 경기에 약하다는 이미지를 떨쳐내지 못했다. 김도훈 감독은 지난 2019시즌도 우라와 레즈와의 ACL 16강 2차전 완패, 포항과의 리그 최종전 패배 등으로 중요한 경기에서 소심한 전략을 쓰다가 자멸하는 패턴을 반복한 바 있다. 우승의 한을 풀기 위하여 역대 최고의 전력을 구축했다는 올 시즌에도 유일하게 전북에 2패를 당했다. 

지난 시즌에도 뒤집기로 다잡은 우승을 놓친 트라우마가 있는 울산은, 올해도 파이널라운드에서 다시 부담스러운 전북-포항 등을 상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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