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부산영화제 페막식.전양준 집행위원장

2019년 부산영화제 페막식.전양준 집행위원장 ⓒ 부산영화제

 
작품 수가 줄었다고는 해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개최되는 전 세계 국제영화제 중 상영작 수가 가장 많았다. 이후 코로나 상황에 따라 개최가 유동적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관객에게만 초점을 맞추겠다는 방향은 분명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14일 온라인 기자회견을 통해 올해 행사의 전반적인 기조를 공개했다. 상영작 68개국 192편은 예년에 비해 규모를 상당히 축소한 것이어서 개최에 의미를 두는 정도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코로나19 이후 개최된 다른 영화제들과 비교하면 월등히 많은 작품 숫자로 부산영화제의 정상 개최 의지를 엿보게 했다.
 
지난 2일부터 12일까지 개최된 이탈리아 베니스국제영화제나 10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되는 북미 최대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가 영화 55~70편을 중심으로 개최한 것과 비교하면 상영작 수가 3배 정도 많다. 
 
전양준 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올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좋은 영화를 가져올 수 있었고 메이저 영화제 선정작과 수상작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고 밝혔는데, 형식적인 말이 아닌 프로그램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홍콩의 추억' 강조한 개막작
 
 25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칠중주 : 홍콩이야기>

25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칠중주 : 홍콩이야기> ⓒ 부산영화제 제공

  
 2020 부산영화제 폐막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20 부산영화제 폐막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 ⓒ2020 Seiko Tanabe/ KADOK

 
개막작으로 선정된 <칠중주: 홍콩 이야기>는 홍콩의 전설적인 감독 7명이 '홍콩'을 주제로 만든 옴니버스 영화다.
 
홍금보는 <수련>에서 무술을 배우던 소년기의 수업시대를 회고하고, 허안화의 <교장선생님>은 가난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나눴던 1960년대 초등학교 친구들과 선생님을 불러온다. 담가명은 <사랑스러운 그 밤>에서 영국 이민으로 헤어지게 되는 연인들의 풋풋한 첫사랑을, 원화평은 <귀향>에서 쿵푸 마스터 할아버지와 손녀의 세대를 뛰어넘은 우정을 그린다.
 
조니 토는 <보난자>에서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아시아 금융위기와 닷컴 버블, 사스 위기 등을 거친 극적 반전의 시대에 주식투자에 열중했던 청춘들의 모습을 담았다. 임영동의 <길을 잃다>는 홍콩의 과거를 고집스레 사랑했던 아버지의 죽음을 추억하며, 서극의 <속 깊은 대화>는 소통 불가능성이 지배하는 근 미래를 배경으로 동시대 영화와 감독들에 대한 애정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전 집행위원장은 "정치적인 메시지가 들어 있지는 않다"고 했으나 최근 홍콩 국가보안법 문제로 국제적 비판여론이 고조된 상황과 맞물리며, 예전의 홍콩을 추억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칠중주: 홍콩 이야기>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었다가 칸영화제가 취소되면서 '칸 2020' 작품이 됐다. 올해 부산영화제에 칸 2020 작품이 23편 상영된다는 점에서 개막작 선정은, 칸영화제에 대한 존중으로도 해석된다.
 
폐막작은 타무라 코타로 감독의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선정됐다. 이미 2003년 이누도 잇신 감독의 연출로 츠마부키 사토시, 이케와키 치즈루, 우에노 주리 배우가 출연한 같은 이름의 영화가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이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이누도 잇신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 영화가 사랑과 청춘의 파고를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그리면서도 현실적인 고통의 무게를 동등한 비중으로 이야기했다면,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한 영화는 보다 희망적인 판타지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윤재호 감독,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2편 선정
 
 워낭소리 이충렬 감독의 신작 <매미소리>

워낭소리 이충렬 감독의 신작 <매미소리> ⓒ 부산영화제 제공

 
칸영화제 선정작인 '칸 2020'은 개막작뿐 아니라 거장의 신작이나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화제작을 소개하는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도 포함됐다. 이 부문에선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트루 마더스>와 왕가위 <화양연화>가, 오픈시네마 부문에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썸머 85>이 상영된다.
 
동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아이콘' 섹션에는 홍상수 감독의 <도망친 여자>, 대만 차이밍량 감독의 <데이즈>, 지아장커 감독의 <먼바다까지 헤엄쳐 가기> 등이 선정됐다.

아시아 영화들 중엔 중국 대만 일본 등 기존 영화강국 외에 카자흐스탄 아딜칸 예르자노프 감독<노랑 고양이>, 아프가니스탄 나비드 마흐무디 감독 <성스러운 물> 등 중앙아시아 영화가 눈에 띈다. 일본 미키 다카히로 감독 <너의 눈이 말하고 있어>는 특별상영된다.
 
이사아의 신인감독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쟁부문인 뉴커런츠에는 네팔에서 만들어진 수지트 비다리 감독 <유리창의 나비>, 미얀마에서 제작된 마웅 순 감독 <개와 정승 사이>가 상영되고, 이란희 감독 <휴가>와 이우정 <최선의 삶> 등이 다른 작품들과 경쟁한다.
 
한국영화로는 <죄 많은 소녀>로 2017년 뉴커런츠 상을 수상한 김의석 감독 <인간증명>, <워낭소리> 이충렬 감독의 <매미소리>, 신동일 감독 <청산, 유수>, 소준문 감독 <빛나는 순간> 등이 파노라마 부분에 선정됐다.
 
<셔틀콕>으로 2013 부산영화제 2관왕을 차지했던 이유빈 감독 신작 <기쁜 우리 여름날>과 2018년 개막작이었던 <뷰티플 데이즈> 윤재호 감독의 <파이터>가 비전 부문에 선보인다. 특히 윤재호 감독은 다큐멘터리 <송해 1927>도 경쟁부문에 선정돼 홀로 2편이나 초청되는 저력을 보였다.
 
주진우 기자, 김의성 배우도 감독 데뷔  
 
 <대무가 : 한과 흥>

<대무가 : 한과 흥> ⓒ 부산영화제 제공

  
독립영화가 아닌 상업영화 중엔 이한종 감독의 <대무가 : 한과 흥>이 오픈 시네마에 선정됐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신작 및 국제적인 관심을 모은 화제작을 대상으로 하는 오픈 시네마에 한국영화 신작이 선정됐다는 건 특별한 일이다. 영화적 재미와 완성도를 부산영화제가 인정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대무가 : 한과 흥>은 독립단편영화였던 <대무가>를 장편으로 확대시킨 작품이다. <대무가>는 취업에 몇 년째 실패한 청년백수가 '무당학원의 10주 코스를 거치면 무당이 되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전단에 혹해 과정을 밟지만. 열등생인데다 신 내림도 받지 못해 조급한 마음에 무당선생 몰래 신당을 차리고 한 여자 손님을 상대로 굿 작업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단편에 플롯을 확대시키고 이야기를 더 창조해 장편으로 구성했다.
 
와이드앵글에는 주진우 기자와 김의성 배우가 감독으로 나서 공동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촛불>과 꾸준히 작품을 만들고 있는 임흥순 감독의 <좋은 빛, 좋은 공기>, 박혁지 감독 <행복이 시간>이 쇼케이스로 상영된다.
  
 주진우 기자와 김의성 배우가 공동 연출한 <나의 촛불>

주진우 기자와 김의성 배우가 공동 연출한 <나의 촛불> ⓒ 부산영화제 제공

 
 이수정 감독의 다큐멘터리 <재춘언니>

이수정 감독의 다큐멘터리 <재춘언니> ⓒ 부산영화제 제공

 
경쟁 부분에는 <밀양 아리랑> <소성리>를 제작한 박배일 감독의 <사상>, 1980년대~1990년대 영화운동 앞장섰던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이수정 감독 다큐멘터리 <재춘언니>가 선정됐다.

<재춘언니>는 30년 기타 공장 노동자에서 일했던 중년의 노동자가 정리해고된 후 13년 투쟁의 세월을 보내는 담은 영화로, 콜트콜텍 투쟁을 8년 동안 기록한 감독이 대전 콜텍 노동자인 임재춘의 삶을 정리한 작품이다. 
 
관객에 집중
 
올해 부산영화제는 이렇듯 좋은 작품들이 넘쳐나지만 한정된 관객만이 영화를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영화상영 외에 대외적인 행사는 취소하거나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해외 게스트 초청은 없고, 취재진을 위한 별도의 기자회견 등도 마련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관객에게만 집중한다. 상영작 예매는 온라인으로만 진행한다. 사전에 표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 부산영화제를 찾기 어렵다. 다만 코로나19가 완화돼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될 경우 실내 50명, 실외 100명으로 한정된 관객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부산영화제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간절히 바라는 부분이다.
 
이용관 이사장은 "4000~6000석이 가능한 야외상영장에서 100명이 앉아 영화를 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상황"이라며 "800석 규모의 하늘연 극장에서 50명이 앉아서 보는 것 역시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객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여건이 되길 바란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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