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아이콘

페이스북 아이콘 ⓒ 페이스북

 
전철이나 버스 안에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페이스북에 접속한다. 파란 바탕에 하얀색 f자가 그려져있는 동일한 애플리케이션(앱)을 누른다. 그런데, 두 사람의 페이스북 초기화면은 똑같지 않다. 동일한 시간대에 다음이나 네이버에 접속하면 동일한 초기화면이 뜨지만, 페이스북은 사람마다 앱을 실행할 때 나타나는 초기화면이 다르다.

비단 초기화면뿐이랴. 동일한 시간대, 동일한 앱을 사용하고 있지만 보고 듣는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페이스북에 오랜 시간 머물수록 정보의 내용들은 더욱더 심각하게 달라진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사용자가 애초에 지녔던 취향과 성향(편향)이,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중에 더 강화된다. 성향 및 편향의 확증이다.
 
'좋아요'에 일희일비하는 우리는···?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다른 소셜 미디어들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유튜브의 경우 어떤 한 영상을 보고서 '좋아요-구독-알림설정'까지 하고 나면, 그 다음부턴 그와 유사한 컨텐츠들이 내 화면으로 질서 있게 차례대로 몰려든다. 무슨 별도의 설정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런 식으로 내 취향과 성향을 다 꿰고 있는 소셜 미디어! 편리하긴 한데, 괜찮은 걸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the Social Dilemma)에서 염려하는 문제들 중 중요한 하나가 바로 그 지점이다. '나'라는 존재의 정보가 소셜 미디어에 차곡차곡 기록된다는 사실! <소셜 딜레마>는 넷플릭스에서 관람할 수 있다. 러닝타임은 약 95분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여러 소셜 미디어(우리나라에서는 SNS라고 부름)에서 일했던 경력을 지닌 사람들이 인터뷰에 응한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경력을 쌓은 사람들인데, 마치 짠 것처럼 한 목소리로 주장한다. 열여섯 살 이전의 자기 자녀들에게는 절대로, 절대로! 소셜 미디어를 오랫동안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잠들기 전 30분 동안은 스마트폰을 쳐다보지도 못하게 하는 '규칙'을 갖고 있다고 말이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나이가 어릴수록 '좋아요'가 많으면 과도하게 만족하고, '좋아요'가 없으면 지나치게 절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열여섯 살 넘은 수많은 어른들 역시 사실 '좋아요'에 일희일비하는 걸 볼 수 있다. 
 
소셜 미디어에 중독된 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무엇일까?

경험상 소셜 미디어는 정보 검색을 위해 접속하지 않는다. 그저 별일 없을 때, 심심할 때, 혹은 알림이 왔을 때, 들여다보게 된다. 화면을 내리다가 '좋아요'할 만한 내용이 나오면 '좋아요'를 냉큼 누른다. 1회 접속에서 재미를 느끼게 되면 이후 접속횟수가 늘어나게 된다. 여기서 접속횟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접속 자체가 약간 '습관'이 되어간다는 얘기다. 소셜 미디어 접속을 통해 뚜렷한 유익이 없을지라도, 습관처럼 소셜 미디어 앱을 켠다.

바로 여기서 소셜 미디어가 지니는 또 하나의 문제가 나타난다. '중독'이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는 소셜 미디어 중독이 미국 사회에서 일으킨 현상에 대한 통계를 실례로 보여준다. 습관을 넘어 중독에 가까워진 청소년들은 소셜 미디어에 수시로 접속한다. 거기 올라오는 친구들의 사진을 보고 글을 읽으며, 자기와 비교하며, 우울해진다. 우울증 상승지수와 자존감 하강지수, 그리고 자살률이 소셜 미디어의 안정적인 보급 무렵(2011~2013년경)부터 부쩍 늘었다. 어린 10대 여아(10~14세)의 경우엔 무려 169%나 늘었다.

청소년뿐 아니라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소셜 미디어를 들여다보니, 정치적 의견을 공유하면서 집단화 경향성이 날카롭게 나타난다. 정당별 세력집중이 일어나며,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건전한 토론보다는 동일한 의견을 지닌 사람들끼리 소셜 미디어 안에서 헤쳐모인다. 소셜 미디어는 진영논리를 보다 빈번하게 하고 보다 강력하게 만든다. 소셜 미디어가 특별히 무슨 거대한 조작을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좋아요'라는 취향과 성향을 슈퍼 컴퓨터 기술로 뒷받침해줄 뿐이다. 소셜 미디어 전(현)직 경력자들은 말한다. 이러다 '내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나의 취향과 성향이 광고주에게 고급정보가 되어···

세상엔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는데, 소셜 미디어 안에서는, 아니 내 소셜 미디어 화면에서는 다양성이 별로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 시스템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고, 특정한 정보가 왜 내 화면에 편리하게(?) 떠오르는지 문제삼지 않고, 그저 습관적으로 접속하면서 거의 중독되어 있으면 누가 '좋아요' 할까? 광고주들이다.

광고주들은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누른 수억, 수십억 개의 '좋아요'들을 합산해 사용자들의 취향과 성향을 파악한다. 사용자들의 취향과 성향, 그리고 필요에 맞게 광고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소셜 미디어에 뜨는 광고는 내가 스스로 찾아서 알게 되는 정보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도 모르는 새, 광고주에게 공짜로 내 정보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소셜 미디어 덕분에 기업들은 사용자들의 관심사를 훤히 알게 된다. 결국 해당 취향·편향·성향을 가진 사용자들의 주머니를 열만한 상품을 광고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나의 '좋아요' 한 번은 광고주들에게 이익을 더 많이 가져다주는 활동이다. 덩달아 소셜 미디어를 디자인하고 운영하는 회사들도 돈을 벌어들인다.
 
소셜 미디어, 어떻게 해야 할까?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의 한 장면. ⓒ Netflix


기업과 소셜 미디어 운영회사들은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소셜 미디어 시스템을 결코 바꾸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 시스템(좋아요, 친구추천, 추천영상 등)에 묶여있고 중독돼있으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 테니까···.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에 출연한 소셜 미디어의 전(현)직 경력자들은 결론내리기가 참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소셜 미디어가 그것 자체로 유토피아일 수도 있고, 디스토피아일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딜레마"라는 것이다. 그래도 해결방안은 없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중론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소셜 미디어 시스템 의존 정도를 스스로 낮추겠다는 결심과 노력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이상하게도 내 취향에 딱 맞는, 내가 선택한 적 없는 정보를 먼저 클릭하지 말고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찾아보는 것, '좋아요' 숫자의 높낮이에 얽매이지 말기, 시간을 정해두고 소셜 미디어에 접속하기, 나와 의견이 아주 다른 사람들과 '의식적으로' 소셜 미디어 친구 맺기, 팔로우하기 등···.

그런데 우리가 과연 그 같은 제안들을 실천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글 올리고 나서 나는 곧바로 페이스북 앱을 열어볼지도 모르겠다. 습관적으로 '좋아요' 개수를 헤아릴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소셜 딜레마>를 본 이후의 나는 성향, 편향, 중독에 대하여 신경을 쓰게 되긴 했다. 우선 스마트폰에서 페이스북 앱을 구석으로 옮겼다. 말하자면 첫 걸음 정도는 뗀 셈이다. 허나,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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