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다큐플렉스-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 한장면.

MBC <다큐플렉스-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 한장면. ⓒ MBC

 
망연자실. 지난해 10월 14일 오후, 설리(최진리)의 안타까운 비보를 접한 뒤 든 믿기 힘든 심경은 저 네 글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던 듯 싶다. 그날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하던 일을 작파하고는 지인과 함께 설리가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는지, 설리를 그런 선택으로 몰고 간 이들이 누구였는지, 또 설리가 남긴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돌아봤던 기억이 난다.

그간 설리에게 쏟아진 선정적인 기사들과 그에 달린 악플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방치하고 공생해 온 연예계와 연예 매체를 포함한 산업 전반까지, 공범들이 뚜렷했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 입장에서 설리(를 포함한 여성 연예인과 유명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칼날을 휘두르진 않았는지, 혹은 적재적소에 휘두를 칼날을 거두는 방식으로 공범이 됐던 건 아닌지 되돌아 봤던 기억 역시 선명하다.

그리고 10일, MBC가 그 기억을 재소환했다. <다큐플렉스>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 편을 통해서였다. 1년여가 흘렀음에도 여전히 상처가 가시지 않은 이들이 적지 않은 만큼, 방송 전부터 '설리 다큐'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방송국 관계자들 역시 설리의 죽음과 무관하다 할 수 없기에, 또 방송 다큐가 지닌 무게감이 상당하기에 과연 제작진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에도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었다.

"설리가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았다. 사망 기사 보고 다들 그랬겠지만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나서서 욕하지 않았어도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다. 악플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 하긴 했지만 어떤 사람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할 때 그 이유만으로 그랬을까. 설리를 알아보고 싶다, 몰랐던 부분이 있다면 재조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1일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편을 연출한 MBC 이모현 PD가 <스포티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연출의 변'이다. 그런데 이러한 취지와 달리 방송 자체에 '불편함'을 호소하다 못해 '2차 가해'가 아니냐는 평가까지 난무하는 중이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고인을 다루는 다큐에 섬세함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터. 실제 내용이 어땠기에 이런 반응이 쏟아진 걸까.

쏟아진 비판의 이유
 
 MBC <다큐플렉스-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 한장면.

MBC <다큐플렉스-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 한장면. ⓒ MBC

 
"사람한테도 상처받다 보니까, 그때 완전히 무너져 내렸던 거 같아요. 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힘을 내고 그랬었는데. 이제 가까웠던 사람들조차도 떠났던 경우도 있고, 그 사람들도 나약한 사람들이었으니까. 그 사람들 또한 자기들을 지키기 급급했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도와달라고 손을 뻗기도 했었는데 그 때 사람들이 잡아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때 무너져 내렸어요. 말할 곳이 없으니까."

지난해 설리가 야심차게 시작한 리얼 웹예능 <진리상점>에서 본인이 털어놓은 속내는 이랬다. '왜'에 방점을 찍은 다큐 역시 설리의 일기와 생전 인터뷰, 소셜 미디어 속 글과 영상 등을 통해 설리의 심리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리 본인 못지않게 많은 비중과 공을 들인 것이 바로 설리의 모친 김수정씨의 목소리였다.

설리가 스무 살 이후 경제적으로 독립을 선언하며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일종의 '단절'을 겪었다는 김씨의 입을 통해 다큐가 주목한 것은 성인이 된 설리의 변화였다. 김씨는 설리가 스무 살이던 2013년에 불거져 2014년에 본인과 소속사가 인정한 열애설에 대해 "딸 열애설 나기 전까지는, 온 가족이 다 행복하고 좋았어요"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딸이) 모든 게 불안했을 거 같아요. 사랑하는 남자는 떠날 것 같지. 엄마는 옆에 없지. 모든 것들이 본인이 감당하기엔 어려웠겠다. 그리고 진심으로 누가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었겠다."

해당 다큐는 아역 시절 데뷔부터 그리 길지 않은 설리의 인생사를 총체적으로 짚고 있긴 했다. 그런 관점에서 설리의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두루 훑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사적인 영역은 감정적으로 부풀려진 반면 공적인 영역은 설리가 받은 상처의 여러 부분 중 하나로 축소됐다는 사실이다.

모친의 입을 통해 강조된 설리의 공개 연애 과정이 대표적이었다. 수년 전 마무리된 남자친구와의 연애가 마치 설리가 안타까운 선택을 하게 된 계기라는 듯한 뉘앙스의 이 인터뷰 직후, 제작진은 2009년 발표된 최자의 뮤직비디오 영상과 해당 곡의 가사, 그리고 최자 본인의 과거 연애 관련 인터뷰를 삽입했다. 

같은 맥락에서, 설리가 '스무살 위시리스트'로 꼽았던 '클럽가기, 맥주마시기, 19금 영화관람, 남자친구 사귀기'는 "자신이 만난 남자친구를 허락을 안 하니까 화가 많이 났던 거죠. 엄마가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남자친구를 못 받아들이지. 화도 많이 내고 서운해 하고"란 연이은 모친 김씨의 회고를 통해 재차 선정적인 이미지로 덧칠됐다. 방속 직후 최자에게 대중의 비난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제작진이 초래한 셈이다.

제작진이 빠진 함정

이뿐만이 아니었다. 제작진이 보여준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 사이의 불균형은 설리를 두고두고 괴롭혔을 선정적인 기사와 악플들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드러났다. 이 대목에서도 제작진은 현직 연예부 기자의 목소리를 빌려 '연애'와 관련된 내용을 언급했다.

또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설리씨는 이러한 비난을 즐기나?"라고 반문한 어느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의 설리에 대한 평가와 소셜 미디어 영상과 사진들을 연결 짓기도 했다. 뒤이어 소녀시대 티파니 등 지인의 비판적인 증언을 이어 붙이긴 했지만, 그 전에 제시됐던 내용들을 상쇄시킬 정도로 비중이 높진 않았다. 

물론 제작진은 "그저 자유롭고 싶었다"던 설리와 지인들의 비판적인 인터뷰를 이어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수 년 동안 이어졌던 선정적 기사나 악플에 대해 설리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대체 의도가 무엇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편집이라는 생각을 지우긴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이 역시 설리의 내면에 훨씬 더 천착하며 빚어진 패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 갓 스물다섯을 넘겼을 뿐이었던 여성 연예인이 안타까운 선택으로 내몰려야 했던 원인을 좀 더 분석적으로 짚었어야 했다. 또 그 사회적 요인들과 구조적인 문제들을 한층 더 강하고 성찰적으로 비판했어야 했다.

"나한테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더라고. 나한테 오해하지 마라. 나 나쁜 사람 아니야." (설리의 인스타그램 영상 중)
"기자님들, 저 좀 예뻐해 주세요. 시청자님들, 저 좀 예뻐해 주세요." (웹예능 <진리상점> 인터뷰 중)


생전 설리의 영상과 목소리를 다시 마주하는 일은 누구에게는 고통을 수반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제작진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던 듯싶다. 이를 위해 제작진 또한 대중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 연예인이자 '셀럽'이었던 동시에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고 싶어 했고, 특히 본인의 행동이 친구와 동료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까 노심초사했던 설리의 목소리를 들여다보고자 많은 분량을 할애한 건 사실이니.   

결론적으로, 다큐멘터리란 장르 자체가 그러하다. 카메라의 주체가 균형감을 잃고 대상의 감정에 천착할 때, 그 자체로 선정성에 함몰되기 마련이다. 설리의 안타까운 선택을 감정적으로 소비하는 동시에 유가족의 슬픔을 전면에 내세운 <다큐플렉스>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편이 빠진 함정이 무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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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어제는 영화기자, 오늘은 시나리오 작가, 프리랜서 기자. https://brunch.co.kr/@hasungtae 기고 청탁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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