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의 한 장면.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의 한 장면. ⓒ watcha

 
영국 BBC와 미국 HBO 채널의 합작 드라마라고 이 작품을 설명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다. 자국 대통령과 총리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두 나라의 모순을 아프게 꼬집기도 하니 말이다. 

지난해 미국과 영국에 방영된 데 이어 국내 OTT 플랫폼 왓챠에서 3월부터 독점 수입한 <이어즈 앤 이어즈>는 말 그대로 현실 세계 곳곳의 모순점을 드러내고 나아가 근미래를 예견하는 장르 드라마다. 2019년부터 2034년을 배경으로 한 대가족이 해마다 터지는 굵직한 사건을 경험하며 말 그대로 민낯을 보이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실물 경제 위기와 괴물 정치인의 등장

총 6화 완결로 비교적 짧은 구성인 이 드라마는 '정치, 기술, 사회, 환경 등 다양한 소재로 풀어낸 현실적인 SF블랙코미디'로 홍보되고 있다. SF와 근미래, 과학기술의 발달을 주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또 다른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 시리즈와 비교되는데 오히려 훨씬 더 현실적이다. 캐릭터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나 일부 캐릭터가 사용하는 기기와 시스템을 제외하면 2020년 지금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주변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 담겨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스티븐(로리 키니어) 가족이다. 위로는 스티븐의 할머니(스티븐의 부모는 일찌감치 이혼한 뒤 가족을 떠난 것으로 나온다) 아래로는 아들, 딸이 한꺼번에 등장하는데 영국 전역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이 가족이 주요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족 통화와 가족회의를 하는 장면이 주요하게 등장한다. 

시작은 경제 위기다. 재무 설계사-회계사인 스티븐과 셀레스트(티나 밀러) 부부는 나름 중산층으로 다른 가족보다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다 미중 무역 갈등이 결국 무력 분쟁으로 번지게 되고 하루아침에 영국 전역 은행들이 폐업하면서 두 사람의 은행 자산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정부의 예금 보호 조항은 무용지물이 된지 오래, 결국 스티븐은 일용직으로 전락하고, 셀레스트와 아이들은 스티븐 할머니 집에 얹혀사는 신세가 된다.

난민 문제도 주요하게 다뤄진다. 동성애자인 스티븐의 동생 대니얼(러셀 토비)은 본래 배우자와 파혼하고 새로운 사랑 빅토르(막심 발드리)를 만나게 되는데 하필 그가 우크라이나 난민이다. 정치적으로 위험분자로 몰려 영국 망명을 신청하지만 빅토르는 결국 불법 체류자로 전락한다. 어떻게든 그를 구명하려 노력하는 대니얼과 스티븐 가족의 모습, 그리고 가족 내에서도 서로 입장을 달리하며 싸우는 모습은 익히 우리도 공감할 장면들이다.

여기에 세대 갈등도 묘사된다. 스티븐-셀레스트의 두 딸과 스티븐의 여동생 로지의 두 아들은 대가족 회의에서 종종 휴대폰이나 개인 기기를 이용해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놀곤 한다. 특히 스티븐-셀레스트의 둘째 딸은 육체를 버리고 자신의 영혼을 데이터 화시켜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싶어하는 이른바 '트랜스 휴먼'에 꽂혀 있다. 결국 영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뇌에 칩을 이식하고 신체 일부분이 모바일 기기처럼 작동하는 장치를 심게 되며, 극 후반부로 갈수록 그 능력을 십분 활용해 가족을 돕게 된다.  

이런 주요 사건을 관통하는 건 소위 영국 시민들의 민심 변화다. 보수당과 노동당 양당 정치로 오랜 시간 민주주의를 지탱해 온 영국 사회가 앞서 언급한 문제들로 휘청거리고 사람들은 내심 변화를 갈망한다. 그 변화를 감지하고 변종처럼 등장한 인물이 비비안 룩(엠마 톰슨)이다.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의 한 장면.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의 한 장면. ⓒ watcha

 
"IQ 70 이하는 투표를 하지 말아야 한다", "영국 와인 판매자는 오히려 장려금을 줘야 하고 수입 와인에 관세를 잔뜩 물려야 한다", "영국 사람들은 양당 정치에 지쳤다. 내가 다 깨부수겠다. 보수당과 노동당은 앞으로 내게 와서 결제를 받아야 할 것"이라는 등 전형적인 포퓰리즘 발언을 일삼던 비비안은 빈민층의 절대적 지지를 얻으며 하원의원, 나아가 영국 총리에까지 오른다. 

문제적 발언을 일삼는 비비안은 총리가 된 이후 "(난민과 빈민을 대상으로 한) 수용소를 대거 조성해 사회 빈민이 자연적으로 도태하게 해야 한다"며 신종 독감을 방치하고 팬데믹(대유행) 사태에 이르게 하는 등 이른바 파시즘에 가까운 정책을 하나 둘 시행한다. 영국 사회의 퇴보를 적나라하게 보이는 에피소드 중 하나다.   

보수주의자의 몰락, 진보주의자의 타락

재밌는 건 이 대가족 구성원들 역시 나름 심리적, 혹은 가치관 변화를 겪는다는 사실이다. 골수 노동당 지지자인 스티븐, 그 반대로 보수당 지지자인 셀레스트, 무정부주의자이자 정치 활동가인 스티븐의 동생 이디스(제시카 하인즈) 등 투표권이 있는 기성세대들이 앞선 사건을 겪으며 해가 갈수록 혼란스러워한다.

이웃에게 좋은 사람이라 평가받고 자상한 아빠이자 착한 심성의 소유자인 스티븐은 외도를 한다. 자신의 가족에 해를 끼친 사람에게 사소한 복수를 하거나 나아가 가족회의에서 결정한 빅토르 구명 활동에 반기를 들며 홀로 빅토르에게 위법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반신 장애가 있는 로지는 대니얼이나 스티븐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비안의 강한 지지자가 된다. 그 결과 로지는 아들과 생이별(비비안 룩의 우범지대 분리 정책 때문)을 하게 되거나 다른 형제들과도 떨어져 매번 감시를 받아야 한다. 

사회 취약계층의 보수화를 단적으로 보이는 예다. 기성 보수이자 기득권층은 이렇게 정보가 취약한 취약계층을 홀리곤 했다. 진보주의자들 역시 도덕적으로 타락하거나 저소득층으로 몰리며 무기력해졌다. <이어즈 앤 이어즈>가 보인 놀라운 통찰력이다.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의 한 장면.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의 한 장면. ⓒ watcha

 
유일하게 이 드라마에서 무게중심을 잡고있는 존재가 다름 아닌 스티븐의 할머니 뮤리엘(앤 레이드)이다. 손주 며느리인 셀레스트를 괴롭히거나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는 꼬장꼬장한 꼰대처럼 묘사되기도 하는데 자신의 어느 생일날 손주와 증손주들에게 던지는 그의 말이 꽤 묵직하다. 

"이게 다 너희들 잘못이다. 그걸 알아야 해! 너흰 기회가 있었는데도 늘 불평불만만 해왔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1파운드짜리 티셔츠 때문이야. 너희들이 1파운드에 그 티셔츠를 살 때 그걸 파는 상점 주인은 0.5파운드나 받겠지. 그리고 그 섬유를 생산하는 사람은? 0.03이나 받을까? 근데 너희들 중 아무도 거리에서 그걸 위해 시위를 한다든가 항의 서한을 정부에 보낸다든가 하지 않았잖아. (중략)

(비비안 룩과 또 다른 정치 신인의 등장을 TV로 보며) 달콤한 말과 광대 같은 저 행동들을 조심해야 해. 우리 삶을 망치기 딱 좋은 정치인이 될 테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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