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이면 TV 예능이나 혹은 드라마에서 '납량 특집'을 내세운 프로그램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또 때를 맞춰 극장가에서는 공포영화가 여름 특수를 노리며 줄줄이 개봉하기도 한다. 그러나 올여름에는 TV에서도 또 스크린에서도 '공포'가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동양의 귀신이든 서양의 악령이든, 결국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보다 더 무섭진 않은 탓이다.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공포가 지금 전 세계를 뒤덮고 있다. 바이러스란 대체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어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퍼져나가는 것인지, 평범한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코로나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사실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평범한 것의 소중함이 사무치게 그리운 날들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공포를 다루고 있는 독특한 영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버드 박스'이다.
 
그동안의 공포영화는 일상의 평화로운 모습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변곡점이 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하나둘 드러나는 일상성의 파괴를 보여 주는 식이다. 일상이 파괴될수록 주인공의 심리적 압박감은 점점 커지기 마련이고, 주인공이 느끼는 공포심은 그대로 관객에게 옮겨간다. 그것이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공포영화의 주된 포맷이었다면 '버드 박스'의 출발은 참신하고 또 독특하다.
 
안전한 공동체가 있으니 강을 따라오라는 음성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이내 '보이'와 '걸'을 향해, 우리는 지금부터 아주 힘든 여행을 떠날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눈가리개를 벗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는 여주인공(맬러리 역/ 산드라블록)의 모습을 보여 준다. 관객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맬러리는 이름조차 없이 '보이'나 '걸'로만 불리는 어린아이들과 함께 눈가리개를 한 채 집을 나선다.
   
그때 맬러리의 시선을 따라 관객도 마치 눈가리개를 한 것처럼 컴컴한 화면을 바라보게 되는데, 맬러리가 사방을 더듬어 가며 강가에서 배를 찾아 타는 데 성공하는 순간 관객은 안도하기보다는 더 크게 긴장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영화 시작 2 분 내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처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순식간에 관객을 몰입시킨다. 서서히 조여오는 통상적인 공포가 아니다. 평범한 일상이 아닌 파괴된 일상에서부터 영화는 시작되고, 관객은 '범인은, 혹은 귀신은 과연 누구인가?'가 아닌 '도대체 맬러리와 아이들은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기다려도 관객의 눈에 맬러리와 아이들을 위협하는 그 무엇도 등장하지 않으니 말이다.
 
나처럼 성격이 급한 관객은 분명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맬러리가 '보면 죽는다!'고 신신당부한 그 공포의 대상을 관객에게조차 보여 주지 않으면 도대체 관객은 뭘 보고 무서워하라는 거지? 이렇게 관객이 어리둥절한 채 영화에 빠져드는 사이, 맬러리는 '5년 전'이라는 자막과 함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5년 전, 만삭인 맬러리는 여동생과 함께 산부인과에 검진을 받으러 간다. 그런데 맬러리는 딱히 엄마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이의 아버지는 이미 떠났고, 상처받은 맬러리는 배 속의 아이가 달갑지 않다. 여동생이 태어날 조카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는 것과는 정반대다. 그때, 사건이 벌어진다. 병원 유리창 너머로 보아선 안 될 것은 본듯한 여자가 갑자기 공포심에 질려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자살을 시도한다.
 
맬러리는 여동생과 함께 병원을 빠져나오는데 밖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두려움을 느끼고, 그 순간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며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맬러리의 여동생 또한 맬러리가 보는 앞에서 트럭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맬러리는 우연히 만난 '톰(트래반트 로즈)'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근처에 있는 누군가의 집으로 피신한다.
    
그 집에는 맬러리처럼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들은 사람들을 스스로 죽게 만드는 괴물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절대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확신하고 있다. 맬러리는 거기서 아들 (보이)을 낳고, 같은 날 그 집에 있던 또 다른 만삭의 임산부 올림피아 역시 딸(걸)을 낳는다.
 
5년 뒤, 맬러리는 톰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함께 보이와 걸을 기르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그 보이지 않는 공포의 실체로 인해 종말 직전처럼 어둡고 황량하다. 그러던 어느 날 톰은 라디오에서 '지금 안전한 공동체에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음성을 듣게 된다. 톰은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함께 떠나자고 맬러리를 설득하지만, 맬러리는 음성을 믿을 수 없다며 거절한다. 결국 톰은 맬러리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눈가리개를 벗게 되는데…
 
과연 맬러리와 아이들은 무사히 공동체를 찾아낼 수 있을지, 또 그 공동체는 톰의 믿음대로 아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인지,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심장이 쫄깃한, 독특한 공포의 세계에 빠져든다.
 
<버드 박스>는 단순히 관객을 놀래키거나 직관적인 오싹함을 강요하는 영화가 아니다. 크게 잔인한 장면도 없다. 그러나 어쩐지 보고 나면 여운이 길게 남는다. 물론 많이 알려진 대로 결말에서 호불호가 갈리긴 하는 모양이다. 나는 "이야!" 할 정도로 감탄했는데, 내 추천으로 영화를 본 언니는 보는 내내 몇 번이나 화면을 멈추었을 정도로 무서웠지만, 결국 결말 때문에 피식 웃으며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 한다. 궁금하다면 직접 확인해보시기를.
 
영화관을 찾는 평범한 일상의 즐거움조차 포기하게 되는 요즘이다. 그러나 마스크 뒤에 숨은 당신의 답답한 오늘이 '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는 것과의 이 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면 좋겠다. 그래서 '집콕'해서 보기 딱 좋은, 독특한 공포영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버드 박스'를 추천하고 싶다. 집에서 혼자 즐겨도 충분히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