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의 시대다. 가급적이면 만나지 말고 교류하지 말고 얽히지 말아야 하는 시대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만남'과 '관계'에 대한 갈망은 더해간다. 이 시절에 한 번쯤 '관계 맺음'과 '사랑'에 대해 되돌이켜 보는 건 어떨까. 

이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노희경 작가의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이다. 1999년 총 44부작으로 방영된 MBC 드라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는 '우정사' 신드롬을 일으키며 오래도록 회자됐다.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 mbc

 
연탄재 같은 인생, 강재호
 

재호(배용준 분)는 27살 늦깎이 대학생이다.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교정을 누비는, 스포츠카보다 더 훤칠한 외모로 무엇하나 부러울 것 없는 '난 놈'처럼 보인다. 그런 재호의 시건방은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사람 겉보기만으로 모른다고, 그 '잘남'은 재호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걸친 '갑옷'과도 같은 것이다. 재호의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적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어린 재호와 그보다 더 어린 재영(이나영 분)을 놀이공원에 버렸다. 재영을 데리고 술을 파는 이모를 찾아간 재호. 그 후로부터 쭉 재호는 '가장'이었다. 

스물일곱, 가장인 재호는 새벽에 노량진 수산 시장의 '게'를 파는 능력있는 경매인이 되었다. 남자한테 돈을 털린 이모에게 뭉칫 돈을 건넬 수 있을 만큼, 재영을 대학에 보낼 정도의 능력을 갖췄다. 하지만 재호는 그 정도에 만족할 수 없었다. 더 많은 것을 가짐으로써 자신을 버린 엄마에게, 아니 세상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그래서 뒤늦게 대학에 갔다. 그리고 대학에서 만난 현수(윤손하 분)를 통해 노량진 수산 시장 게 경매인이 가질 수 없는 '신분 상승'을 꿈꾼다.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의 한 장면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의 한 장면 ⓒ MBC

 
현수도 재호에게 호감을 보이고 이제 그가 이루고자 하는 '고지'가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그가 도달하려 했던 고지가 신기루처럼 허물어져 간다.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보살피던 여동생 재영이 하필이면 재호의 둘도 없는 친구이지만 세상 무능력하다 못해 하는 일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석구(박상민 분)와 사랑에 빠졌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친구라고 품었던 석구로 인해 게 경매인 자리마저 놓치게 생겼다. 

아니 어쩌면 더 큰 문제는 재호 자신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자신과 동생을 버리고 간 후 그의 목표는 오로지 성공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사랑에 목매는 이모를 한심하게 여기며 자신에겐 사랑도 쟁취의 대상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시간 강사로 들어온 신형(김혜수 분)이 자꾸 재호를 거슬리게 한다.

재호는 잡초처럼 살아온 자신을 신형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냉소했다. 그런데 자꾸 마음이 그녀 주변을 맴돈다. 사는 게 재미없다고 말해버리게 만드는 여자. 어쩐지 그녀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아니 하기 싫어진다. 그건 신형 역시 마찬가지다. 수업 시간에 만난 오만불손한 학생이라 생각했는데 점점 재호가 신경쓰인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가 언뜻언뜻 보이는 황량한 눈빛에 마음이 간다. 

사랑을 향한 용기 

사랑은 둘 사이의 불가능할 것 같은 것들을 자꾸 넘어서게 만들었다. 서른의 시간강사와 스물일곱의 늦깎이 대학생, 안온한 삶과 들풀 같은 인생의 간극도 이들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무엇보다 신형에게 한 발자국씩 다가갈수록 뒤틀린 삶에 대한 복수와도 같은 '성취'들이 재호에게는 무의미해져 갔다.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 mbc

 
그러나 삶은 재호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가장'의 마음으로 돌보는 동생은 그의 뜻에 늘 어긋났고, 그가 겨우 이룬 것들은 그가 믿었던 사람들로 인해 허물어져 간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하늘도 무심하게 겨우 스물일곱 재호에게 '뇌종양'이란 병마가 찾아든다. 

재호가 뇌종양을 앓게 된 이후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는 재호에 대한 신형의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채워지는 듯 보인다. 살고 싶다는 재호를 부여안고 괜찮다며 울고 싶으면 맘껏 울라고 보듬어 주는 신형. 

드라마의 마지막 신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하게 자신의 품에서 영원히 잠든 재호를 깨우지 않았다고 내레이션을 한다. 나는 재호의 죽음을 보며 대성통곡했지만, 아마도 신형은 재호와의 '완성'된 사랑으로 오래오래 충만한 삶을 살아갔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주기만' 하는 그런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재호가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신형에게 다가가는 용기를 내주었기에 그녀와 완전한 '사랑'을 이룰 수 있었다. 아픈 재호로 인해 신형 역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삶의 마지막 고비에서 재호는 용기를 내주었다. 그는 죽어갔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삶을 긍정했고 삶을 향해 열렬한 구애를 보냈다. 사랑을 인정하자 놀랍게도 그가 잃었던 것들이 그를 찾아왔다. 사랑이 왔고, 그의 곁을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다. 오랫동안 미워했고 그리워했던 어머니마저도. 

20년도 더 지난 지금 여전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드라마를 생각하면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가 떠오른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허락하지 않았지만 코로나19가 우리 삶에 스며들어 힘든 시기, 강퍅했던 재호(배용준 분)의 삶이 유독 아른거리는 이유는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가 이 시대에 던지는 사랑과 관계에 대한 화두 때문일 것이다.

그간 우리가 '갑옷'처럼 두르고 살았던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용기 내 한 걸음 내디뎌야 할 곳은 어디일까. 무엇보다 지금까지 나는 연탄재가 되도록 뜨거운 사람이었는가. 어쩌면 늦었다고 생각한 지금이야말로 가장 뜨거울 수 있는 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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