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경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나를 구하지 마세요>는 낙동강 하류에서 엄마와 어린아이가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정 감독은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정연경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나를 구하지 마세요>는 낙동강 하류에서 엄마와 어린아이가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정 감독은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 리틀빅픽처스

 
"십자수, 색종이 접기 책을 종이접기를 좋아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달라."

엄마와 함께 사라진 11살짜리 아들이 남긴 메모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2016년 가을이었다. 엄마의 시신이 대구 낙동강에서 먼저 발견되었고 며칠 안 돼 아들의 시신도 발견되었다.

"이 아이가 어떻게 이런 메모를 쓸 수 있었을까."
 
뉴스를 본 정연경(43) 감독은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내일은 뭐 하고 놀까"라며 즐거워하는 걸 떠올리는 또래의 자기 아들과는 너무 다른 삶이었다.

"이 아이는 엄마가 죽을 걸 알고, 자기도 따라 죽어야 된다는 생각을 그 나이에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어요."
 
그래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사회의 부모로서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했어요.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구하지 마세요>(10일 개봉)가 세상에 나오게 된 이유다.

최근 전화로 만난 정 감독은 "아이가 어느 순간에 행복을 느끼고 어른에 의해 어떻게 상처를 받는지 아이의 시선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부모들이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이 아이 심정이 되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빚을 남기고 아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선유(조서연)와 엄마 나희(양소민)는 새로운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계속되는 어려운 가정 형편은 선유가 또래보다 일찍 철이 든 이유다. 학교에서는 내색하지 않지만 친구들과는 거리를 두려고 한다. 장난이 많은 정국(최로운)의 모습에 웃으며 마음을 조금씩 풀기도 한다. 하지만 모녀의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특히 엄마는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 동창생이 떠나자 극도로 불안해한다. 엄마가 지칠수록 선유도 불안하다.

상을 받고 떠오른 고민
 
 <나를 구하지 마세요>의 선유(조서연)와 엄마 나희(양소민).

<나를 구하지 마세요>의 선유(조서연)와 엄마 나희(양소민). ⓒ 리틀빅피쳐스

  
"주변과의 단절이 엄마를 가장 힘들게 했다고 생각해요. 가장 친한 사람도, 자기를 도와준 사람도 떠나잖아요. 이 세상에서 혼자가 된다는 생각이 들 때 사람이 약해지잖아요. 반대로 이 모녀가 다시 살아가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된 것도 누군가 관심을 가지고 따뜻한 말을 건넸을 때에요."
 
옆에서 선유를 즐겁게 해주려는 정국의 모습에 정 감독의 시선이 담겨있다. 정국은 선유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도 하며 선유가 엄마의 친구를 찾으러 갈 때는 동행하기도 한다.

"내가 사람들의 아픔이나 상처를 다 이해할 수는 없겠죠.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행복하고 살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정국의 대사로 전하고 싶었어요."
 
정 감독은 이 영화 시나리오로 2017년 제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사전제작 지원 프로그램인 피치&캐치의 극영화 부문상을 받았다. 정작 상을 받으니 떠오른 고민은 "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자격이 나에게 있는가"하는 물음이었단다.
 
"제가 남을 크게 도와준 적도 없는 사람인데 이런 이야기를 꺼낼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부담감이 컸어요. 잘못 만들면 메시지가 흐트러질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상을 받고 앓아누웠어요."

영화를 만들면서 자문을 구한 자살심리상담가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다. 상담가는 정 감독에게 자살 방지에 관해 영화를 만들고 싶어한다는 것 자체가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그제야 정 감독도 자신감이 붙었다.

"훌륭한 여성 감독이 될 수 있다"
 
 정연경 감독.

정연경 감독. ⓒ 리틀빅피쳐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영화와 이해'라는 교양수업을 듣고 영화 연출에 막연한 꿈을 가지게 됐다. 단편 영화를 만들어오는 과제를 받은 그는 캠코더를 빌려 껌을 주제로 단편 영화 한 편을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쓰다 버려진 존재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그린 5분짜리 단편 <당신이 뱉은 껌이 어디에 붙어있는지>였다. 교수는 정 감독에게 "훌륭한 여성 감독이 될 수 있겠다"는 말을 건넸다.
 
정 감독은 이후 2000년대 초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영화학교 영상과에서 유학했다. 졸업할 무렵 <역도산>(2004) 촬영이 일본에서 있었다. 통역을 맡았다가 스크립터로 참가해 영화 후반작업을 하면서 현장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미녀는 괴로워>(2006)와 <마이 뉴 파트너>(2007)에서 스크립터와 연출부를 각각 맡았다.
 
2011년에는 단편 영화 <바다를 건너 온 엄마>를 연출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일본에 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쓰라린 기억과 본인이 일본 유학 시절 한국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자신을 챙겨준 중국인을 통해 엄마를 떠올렸던 감정을 스크린에 옮겼다. 제주 여성민우회에서 상영한 이 영화를 통해 한국에 온 이주 여성들이 위안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누군가 내 영화에 위안을 받았다는 이야기에 정 감독의 쓰라렸던 마음도 치유가 됐다고 했다.
 
그래서 정 감독은 관객들이 이번 영화를 통해서도 위안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는 "청소년들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 깨달을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며 "부모님들은 아이 입장에서 상상하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죽음에 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기사) 댓글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안타까워하며 슬퍼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이 사람들의 마음이 미리 전해질 수 있었다면 그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안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주변에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거나 도움을 주는 분이 한 분도 없다고 하더라도 어디선가 모르는 사람들이 나의 행복을 빌어줄 수도 있거든요. 이 사람들의 마음을 영화로 대신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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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문화부 기자. 팩트만 틀리지 말자. kjlf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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