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인간의 본성과 편견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tvN 드라마 <악의 꽃>. 주인공 도현수(이준기)는 편견에 의해 망가진 '현수'의 삶을 버리고 '백희성'이라는 새로운 인물로 살기 위해 애써온 인물이다. 8회 그는 "나는 사랑 같은 감정 모른다. 지원을 한 순간도 사랑한 적 없다"고 털어놓고, "내가 바라는 건 백희성으로 사는 것 뿐"이라고 말한다. 지원(문채원)에게 쏟는 정성 역시 백희성으로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라는 의미였다.

그런 그가 9회부터 이상해졌다. 지원이 "당신이 싫어졌다"고 말하자 그는 무척이나 당황한다. 그리고 무진(서현우)과 해수(장희진)에게 "칼 맞고 산에서 내려왔을 때보다 더 막막하다"며 지원에게 "공범을 선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더니 위험을 무릅쓰고 인신매매단으로 들어가 "지원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며 인질을 구하기 위해 애쓴다. 

도대체 왜 현수는 지원을 사랑하지 않는다면서, 사랑 같은 감정을 아예 모른다면서 이토록 지원을 위해 애쓰고, 그녀를 닮고자 하는 걸까? 11회 '떠나라'는 지원의 말에 처절하게 울부짖는 그를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가 그토록 간절하게 추구한 것은 바로 '자기대상(self object)'이었다. 

나를 살아있게 하는 것, '자기대상'

'자기(self)'는 심리학에서 학파마다 조금씩 다른 의미로 해석되지만 대체로 한 사람의 인격 전체를 의미한다. 하인즈 코훗이 창시한 '자기심리학'은 이 같은 '자기'의 발달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 학파다. 코훗은 '자기'를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욕구와 소망에 공감적으로 반응해주는 양육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자기대상'이라고 불렀다. 

유아는 주양육자가 보여주는 따뜻하고 공감적인 반응,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간다. 이 때 주양육자는 '자기대상'이 되고, 사람은 자기대상을 내면화하면서 점차 확고한 자기를 확립해간다. 코훗은 이 같은 '자기대상'이 어린 아이 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어른들도 '자기대상'을 통해서만이 생생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자기대상'은 심리적으로 살아있게 하는 '산소'같은 것인 셈이다. 

그런데 드라마 속 현수는 '자기대상'을 여러 차례 상실한다. 어머니는 갑자기 실종되고, 아버지는 연쇄 살인마로 밝혀진다. 어머니가 사라진 후 자기대상이 되어주었을 아버지가 연쇄 살인마였다는 사실은 그에겐 크나큰 상실이었을 것이다. 자기를 비춰준 대상이, 나를 살아있게 했던 존재가 다수에게 죽음을 선사했다니, 그 배신감과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수는 이제 사라진 '자기대상'의 흔적에 매달린다. 그는 오랫동안 어머니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에 집착하는데 아마도 이 목소리가 현수의 자기대상을 대신했을 것이다. 또한 11회 그는 자신의 첫 기억이 10살 때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아버지가 구해준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이 역시 그가 얼마나 애타게 '자기대상'을 찾아 헤매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지원(문채원)은 현수에게 '자기대상'이 되어준다.

지원(문채원)은 현수에게 '자기대상'이 되어준다. ⓒ tvN

 
새로운 자기대상 지원

이런 현수의 삶에 지원이 등장한다. 과거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지원은 그에게 묘하게 끌리고,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나 같은 걸 왜 좋아하냐며 도망치려는 현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니 문제는 하나야. 내가 너를 보는 것처럼 너는 너를 못 봐."(5회) 

지원은 이렇게 현수에게 새로운 '자기대상'이 되어준다. 5회 지원과 첫 키스를 하면서 그는 자꾸만 나타나는 아버지의 환영을 향해 "아버지 이제 제발 그만 가. 난 여기 있을게. 그만 가"라고 속으로 외친다. 정말로 그 순간 현수를 괴롭혀왔던 아버지의 환영은 사라진다. 이는 그가 아버지와 함께했던 이전의 자신의 모습은 지우고, 지원과 함께 새로운 '자기'로 살아가기로 다짐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후 현수는 지원을 '자기대상' 삼아 백희성이라는 새로운 인격으로 살아간다. 비록 과거를 숨기고 연습해서 얻은 표정들이라 할지라도 지원과 함께 하는 백희성으로의 삶은 그에게 행복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맛보게 했을 것이다. 때문에 현수는 "난 백희성으로 살고 싶어. 그것 뿐이야. 내 인생을 잃고 싶지 않아. 절대로"라는 대사처럼 희성으로의 삶을 소중히 여겼을 것이다. 

현수는 9회 자신의 정체가 들통날 위기에 처한다. 이는 그에겐 절체절명의 위기였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지원에게 "난 네가 싫어졌어"라는 말을 듣는다. 이 말을 들은 현수는 자기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 것을 걱정하기보다 지원의 모진 말에 더 신경을 쓴다. 그러더니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원을 기쁘게 하기 위해' 공범을 잡는데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 

무진과 해수는 이런 그의 모습에 당황하지만 이는 현수에겐 타당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현수는 백희성으로 살기 위해서는 자기대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함을 간파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원의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희성으로의 삶을 잃는 것과 다름 아니다. 때문에 그는 지원을 잃지 않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애를 쓴다. 

마침내 통합된 온전한 자기 

하지만 현수는 여전히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지원을 대하지 못한다. 어릴 적 받은 편견에 스스로를 낙인 찍은 채, '사랑할 줄 모르며, 감정 같은 걸 느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믿어온 그는 '도현수'의 모습으로는 지원을 만날 수 없다고 믿는다. 

자기대상과도 온전히 만날 수 없기에 현수는 늘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딸 은하가 태어난 날 "걱정돼. 얘가 날 좋아하지 않을까봐"라고 걱정하고(11회), 유치원 생인 딸에게 타인의 평판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2회)은 그의 두려움과 불안이 잘 드러난 장면들이었다. 그럼에도 지원은 그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픈 욕구를 계속해서 불러 일으키고 현수와 희성의 경계를 점차 모호하게 만든다. 

10회 현수는 지원에게 전화해 "지원아 난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너한테. 괜찮은 사람이고 싶어"라고 말한다. 또 갇혀있는 인질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면서 "지원이였다면 절대로 그 사람들을 모른 척 하지 않았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이는 지원이라는 자기대상이 백희성을 넘어 도현수의 정체감에도 내면화되고 있을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11회 마침내 현수는 지원이 자신의 정체를 모두 알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를 알고서도 지원이 자신을 믿어주고 있음을 깨닫는다. 현수와 희성을 구분하지 않고, 그저 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지원을 느끼게 된 그는 마침내 스스로도 현수와 희성을 하나로 통합시킨다. 그리고 지원에게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며 온전한 '자기'를 찾아간다.
 
 현수(이준기)는 "지원이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인질을 구해내기 위한 작전을 펼친다.

현수(이준기)는 "지원이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인질을 구해내기 위한 작전을 펼친다. ⓒ tvN

 
통합된 자기의 놀라운 힘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그토록 타인의 평판을 두려워하고, 심지어 갓 태어난 딸의 평가까지 걱정했던 현수는 11회 말미 "내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내리고 판단하고 싶어할거야"라는 지원의 말에 "괜찮아. 이젠 그런 거 아무렇지도 않아"라고 답한다. 든든한 자기대상 지원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신을 통합시킨 그에겐 두려울 것이 없다. 게다가 처음으로 자신이 지원을 사랑하고 있었음도 깨닫는다. 인식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그에게 백희성이냐 도현수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분열됐던 자기가 하나로 통합되었고 이를 든든하게 지지해주는 자기대상 지원이 곁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법의 심판과 세간의 평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는 생생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자기대상'은 한 사람의 심리적 삶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지금 우리 곁에는 어떤 '자기대상'이 존재하고 있을까. 기억해야 할 건 성인의 자기대상은 바로 곁에 실재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세상을 떠났을지라도,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내가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던 대상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이 '자기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생생한 나'로 살았던 느낌과 기억들이니 말이다. 지금 삶이 지치고 힘들다면, 나만의 '자기대상'을 떠올려보자. 아마도 생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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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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