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3일 방송된 SBS 스페셜 <개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는가>의 한 장면

8월 23일 방송된 SBS 스페셜 <개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는가>의 한 장면 ⓒ SBS


20년 전, 나는 가까운 선남선녀(善男善女)의 만남을 주선했다. 선남(善男)의 직업은 수의사였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물었다.

"특이한 반려견 이름도 많죠?"
"육두문자를 붙이는 몹쓸 사람도 있어요."
그때 옆에 있던 선녀(善女)가 말했다.
"어머, 여섯 글자나요?"
 

우리 모두 '와하하' 웃었다. 그저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반려견 망고를 키우기 전까지는.

5년 전 웰시코기를 입양해 망고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하루에도 수백 번 이름을 부르면서 가끔 그 일이 생각났다. 이런 선한 눈망울을 가진 개에게 어떻게 그런 이름을 붙일 수가 있지? 사람을 무조건 따르는 개에게 그런 이름으로 부를 수가 있지? 아무리 장난이라고 해도, 개는 그 뜻을 알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욕이란 대개 사람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내뱉는 말인데, 그런 감정이 전해지지 않을까?
 
내가 반려견 망고를 통해 개는 사람과 교감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반려견 망고는 우리 가족이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우리가 슬플 때 와서 위로해준다. 케이크를 앞에 놓고 손뼉 치며 생일 노래를 부를 때면 자기도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컹컹 짖는다. '파이팅'을 위해 가족들이 한 손을 한곳에 모으면 자기도 와서 한 발을 턱 하니 얹는다. 망고는 과묵한 편이고 사람에게 치대지 않는다. 하지만 딸이 시험에 떨어져 울고 있을 때 성큼성큼 걸어와 커다란 엉덩이를 아이에게 붙이고는 계속 옆에 있어 주었다.
 
 8월 23일 방송된 SBS 스페셜 <개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는가>의 한 장면

8월 23일 방송된 SBS 스페셜 <개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는가>의 한 장면 ⓒ SBS

 
지난 8월 23일 방영된 SBS 스페셜 <개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는가>를 통해서 '개와 사람이 교감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국회 첫 출입 안내견 조이는 시각장애인 김예지 국회의원의 눈이 되어주고, 당구선수 청각장애인 원서연씨의 보조견 구름이는 그녀의 귀가 되어준다. 장애인 보조견 훈련은 마음을 맞추는 데서 시작한다고 한다. 사람을 도와주려는 목적의식은 유대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명령에 복종보다는 자율성을 부여할 때 개는 놀이의 연장으로 훈련 동작을 더 잘 익힌다.
 
"연구를 통해서 보면 개는 특별하게 사람과 눈으로 소통하도록 근육이 진화됐어요. 늑대랑 다른 점입니다. 사람과 교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사람의 마음을 읽고 소통하는 능력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한국 성서대 김성호 교수 인터뷰)
 
개와 사람이 눈을 마주치면 옥시토신 분비가 촉진되어 기분이 긍정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병원에서 보조견을 활용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일본 가와사키의 한 대학 병원에서 3년째 근무하고 있는 치료 보조견 모리스는 환자를 정서적으로 돕는다. 뇌졸중 환자는 모리스와의 놀이를 통해 재활 치료의 의지를 독려받고, 10년째 장기입원 환자는 힘든 마음과 통증의 두려움을 모리스에게 털어놓으며 위로받는다.
 
 8월 23일 방송된 SBS 스페셜 <개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는가>의 한 장면

8월 23일 방송된 SBS 스페셜 <개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는가>의 한 장면 ⓒ SBS

 
개와 사람의 교감은 함께 한 시간이 말해준다. 개는 인간이 길들인 최초의 동물로, 그 시작은 약 1만 5000년 이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사피엔스는 개를 집단 사냥이나 싸움, 외부 침입자에 대한 경비원으로 활용했지만, 세대를 거듭하면서 유대 관계 통해 인간과 개는 서로 의사소통이 잘되는 동료로 진화했다고 말한다.
 
"동료인 인간의 필요와 감정을 잘 경청하는 개는 추가적인 보살핌과 먹을거리를 얻었으며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커졌다. 이와 동시에 개는 자신의 필요에 맞게 인간을 조종하는 법을 배웠다. (79쪽)"
 
영국 생물 인류학자 앨리스 로버츠도 사피엔스가 일방적으로 개를 길들인 것이 아닌 쌍방의 과정이었다고 주장한다. 나의 반려견 망고를 보아도 개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요구하며, 문제를 해결한다. 공놀이하고 싶을 때는 공을 가지고 와서 우리 앞에 내려놓고 발로 툭툭 친다. 야식이 먹고 싶을 때면 간식 인심이 후한 남편 주위를 돌며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웰시코기는 다른 개에 비해 흰자위가 많이 보여 표정이 풍부한 편이다) 동영상 플랫폼에는 '산책하자고 조르는 개' 영상이 특히 많다. 개가 문을 쳐다보며 낑낑대거나 하네스(가슴줄)를 물고 오면 대개 주인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산책하러 나간다.
 
네 발로 걷는 동물과 두 발로 걷는 동물은 눈을 맞추며 서로를 길들여왔다. 인간은 영리하고 충성스러운 개를 가장 가까이 두었고, 개는 인간에게 조건 없는 우정과 사랑을 주며 머물렀다.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종(種)이 비언어적 의사소통으로 수만 년의 세월을 교감해왔다.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사피엔스> 서문에서 유빌 하라리는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 그리 능하지 못하다 (10쪽)"고 적었다. 개는 주인에게 크고 놀라운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작고 소소한 것에 행복해할 뿐이다. 개는 자신을 포장하거나 꾸미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뿐이다. 어쩌면 개는 인간에게 '행복이란 무엇인지' 가르쳐주기 위해, '나다운 모습으로 사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 곁에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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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같던 20대와 한여름 초록을 지나, 가을 단풍처럼 지혜롭게 중년을 보내고자 글을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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