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의 이춘숙씨와 정형민 감독.

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의 이춘숙씨(좌측)와 정형민 감독. ⓒ 영화사진진

 
가까운 이웃 나라는커녕 국내 제주도 여행조차 꺼리던 사람이 네팔과 티베트를 가로질러 총 2만km의 여정을 다녀왔다. 그것도 여든넷 노구를 이끌고 말이다. 히말라야 인근 어느 작은 사찰을 다녀온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서 기도를 해야겠다는 이유가 전부였다. 그렇게 다큐멘터리 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이 탄생할 수 있었다.

영화엔 2014년부터 2017년에 걸친 기록이 담겨 있다. 히말라야 무스탕 마을, 몽골과 티베트의 험준한 산을 거의 눕다시피 한 자세로 오르는 주인공 이춘숙씨의 힘겨운 모습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1934년생인 이춘숙씨는 대체 왜 아들이자 감독에게 기나긴 여행을 제안했던 것일까. 그리고 감독은 무슨 생각으로 영화로 남길 생각을 했을까. 지난 8월 31일 경상도 봉화마을에서 막 서울로 올라온 두 사람에게 그 질문부터 던져야 했다.

타인을 위한 삶

"저 자신을 알고 난 뒤로부터는 '나 외의 다른 사람을 위해 살 것이다'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리 살고 있는데 70살 후반부터 아들이 공부도 마치고, 영화도 한다 하니 대한민국보다 못사는 나라가 있는가 나가봐야 하지 않나 싶더라고요. 제가 스스로 (종교를) 불교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석가모니를 좋아하고, 기도를 올리는 사람인데 우리 감독이 그게 불교라 하더라고요. 

하루에 두 끼만 먹더라도 그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바이칼 호수를 가장 좋아하게 됐습니다. 새벽에 거기서 샤워하면서 기도하면 부처님이 들어주지 않겠나 싶어 얼음물을 망치로 깨고 들어가 기도를 했지요. 돌아와서도 지금도 울면서 기도합니다." (이춘숙)


기도한다는 말에 이춘숙씨는 호흡을 거칠게 뱉으며 울먹였다. 사실 그는 큰 포부와 꿈이 있었다. 1960년대 당시엔 흔치 않았던 여성 공무원이었던 이춘숙씨는 서른둘에 낳은 첫째 아들을 7개월 만에 잃고, 서른일곱에 남편이 사망해 근 40년간 홀로 둘째 아들을 키워냈다. 농촌을 잘 살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4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고, 국회의원도 꿈꿨으나 아들을 바라보며 꿈을 접고 깊은 산골 마을로 들어가 자연을 벗 삼아 살고 있다. 
 
 <카일라스 가는 길> 스틸컷

<카일라스 가는 길>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지금에서 꾸기 시작한 또 다른 꿈이 있다면 죽기 전에 바이칼 호수에 한 번 더 가는 것과 인도 보드가야 빈민들에게 쌀과 담요를 나눠주는 것이란다. 그 일을 위해 이춘숙씨는 국가에서 주는 연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오고 있었다.

정형민 감독이 설명을 보탰다. 2014년 첫 번째 순례를 마친 뒤, 2017년 어머니와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여정을 구상하던 감독은 세월호 미수습자 관련 보도를 보며 우는 어머니를 보고 계획을 실행하기로 결심한다. "계속 우시던 어머니가 팽목항으로 가자고 하셨는데 거기 가면 쓰러지실 것 같더라. 그러지 말고 히말라야 바이칼이라고 신성한 호수가 있는데 거기로 가서 기도를 드리면 어떨지 말씀을 드렸다"며 "우리에겐 일종의 피난이었다"고 정형민 감독이 설명했다. 

"평소 어머니를 봐왔을 때 참 파란만장하다는 걸 깨달아서 언젠가 어머니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써야겠다는 꿈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워낭소리> 같은 다큐를 접하게 됐는데 방송에 나오는 노인들 다큐도 그렇고, 제가 실제로 보고 알던 노인의 모습과는 좀 다르더라고요. 봉화에 70대 부부가 있는데 여전히 1000평이 넘는 땅을 직접 관리하고 농사하면서 쟁기를 지십니다. 미디어가 어쩌면 노인의 모습을 한정 지어 세대 갈등을 격화시키는 건 아닌지 싶더라고요.

노인도 우리와 다를 바 없다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노인의 다양한 모습이랄까요. 어머니가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카메라에 담게 됐습니다. 제가 2014년까지 히말라야를 다녀오곤 했는데 불교왕국 무스탕(까그베니 마을)과 작은 사찰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거기에서 기도를 해야겠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죠." (정형민 감독)


"젊은 사람들, 80살 먹은 할망구보다는 나은 선택 해야"

영화에는 이춘숙씨가 세 존재의 이름을 부르며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종종 나온다. 바로 일찍 이별한 남편, 큰 아들, 그리고 13년간 이춘숙씨와 함께 했던 손주 같은 반려견이다. 이춘숙씨는 "지금도 그 셋을 위해 기도한다"며 "언젠가는 기도가 상달되리라 믿는다"고 짐짓 확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중학교 2학교 때부터 문맹 퇴치한다고 촌에 가서 한글을 가르쳤어요. 우리 학급에서 나 혼자 그랬지요. 지금 젊은 사람들이 엉뚱한 길 가는 걸 보면서 80살 먹은 할망구보다 못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은 선택을 해야죠.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더욱 기도에 빠져 사는데 우리 대한민국, 위에서 말단까지 다 지켜달라고 합니다. 제가 사회생활을 못 하니까 그거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순례 때는) 걱정보다 너무 신났습니다. 못사는 나라지만 그 순수함에 신났죠. 그곳 아이들은 배불리 못 먹어도 활기 있더라고요. 네팔에서 제가 동네 청소도 하고, 소똥도 치우고, 아이들 머리도 감기고 그랬거든요. 아이들 눈빛이 세끼 밥 먹는 한국 아이들보다도 좋더라고요. 한참 배우고 왔습니다. 제가 1963년도에 대구에서 탁구 선수를 하기도 했어요. 체력엔 자신 있었습니다(웃음)." (이춘숙)

"한국 전쟁 이후 빈민 청소년이나 노동자를 모아서 한 한빛 야학 활동이 있었거든요. 어머니가 그 활동을 하셨습니다. 농촌 계몽 운동 시절 전국에 10명 정도만이 여성 공무원에 뽑혔는데 어머니께서 그 안에 드셨어요.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어머니가 절 서울에 맡기고 내려가시곤 했는데 제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하도 울고 그래서 결국 어머니가 공무원을 그만두셨어요. 지금까지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꿈을 포기하신 거라." (정형민 감독)

 
 <카일라스 가는 길> 스틸컷

<카일라스 가는 길>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오래 품고 있던 미안한 마음을 꺼내며 정형민 감독은 지난 순례를 통해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코로나19 시기에 개봉하게 돼서 죄송한 마음"이라며 그는 "우리 삶이라는 게 바라는 대로 되는 게 아닌 흘러가는 것임을 지난 여정을 통해 배웠다. 나이를 먹어도 새로운 사람과 풍경을 만나며 지금까지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춘숙씨는 당장 코로나19로 더욱 생활이 열악해졌을 이들이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지난 순례길에서 만난 현지 이웃들이었다. "내가 그때 봤을 때보다 더 어려워지지 않았는지 걱정된다. 이렇게 걱정이 많은 할망구다"라며 "바람이 있다면 이 영화로 좀 더 그들이 배불리 먹고 아프지 않길 바란다. 많이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다시금 눈물을 보였다.

이제 여든일곱. 여전히 이춘숙씨는 봉화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고 농사를 짓는다. 최근까진 단호박 100그루를 심었다가 맷돼지의 습격으로 절반을 잃기도 했단다. "아들이 와서 짐승도 먹어야 하지 않겠나 말하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라며 그는 "인간이 바라는 대로 되는 건 역시 없다"고 덧붙여 말했다. 

"언제 한번 봉화로 놀러 오시라"며 인터뷰 말미 기자에게 말하는 그는 영락없는 우리네 할머니였다. 다시금 그가 순례길에 오를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올린 수많은 기도는 이미 하늘을 감동시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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