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EBS국제다큐영화제 메인 타이틀

제17회 EBS국제다큐영화제 메인 타이틀 ⓒ EBS국제다큐영화제


01.

딜로바르의 오빠 이스칸다르는 자슬리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딜로바르의 말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그가 중죄를 지었다는 명목으로 기소했다고 한다. 1999년에 수도 타슈켄트에서 일어난 네 번의 폭발, 카리모프 대통령을 노린 테러의 주요 인물로 지목 당한 것이다. 당시 카리모프 대통령은 소련의 해체로 위험 지역에 남게 된 국가를 근본주의자들과 이슬람 테러로부터 지켜내겠다는 명목 하에 독재에 가까운 국가 운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스칸다르가 끌려간 지는 벌써 16년도 더 넘었고, 딜로바르가 오빠를 되찾기 위한 지난한 싸움을 위해 스웨덴으로 이사 온 후에는 연락조차 닿질 않고 있다. 그가 스물 다섯에 찍은 여권 사진만이 그를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증거다. 그녀는 자신의 오빠가 허위로 기소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스칸다르를 알고 지낸 사람들은 모두 그가 그런 사건에 연루될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믿고 있으며, 오빠 본인 역시 당시에 집으로 보낸 몇 통의 편지에서 자신의 누명과 억울함을 호소한 바 있기 때문이다.

마그누스 게르텐 감독의 작품 <악은 오직 절망 속에 산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로부터 국가를 지키겠다는 강경한 정부의 태도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 이들과 그들의 인권과 자유를 구하기 위한 나선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그런 정부를 상대로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는 딜로바르의 모습을 극의 중심에 담아 이 문제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악은 오직 절망 속에 산다> 스틸컷

다큐멘터리 <악은 오직 절망 속에 산다>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2.

딜로바르의 주된 활동은 자슬리크 교도소에서 형량을 채우고 나온 사람들에게 오빠의 행방을 수소문 하는 일이다. 하지만, 교도소 내에서도 가장 엄중한 공간에서 격리되어 있는 오빠의 소식은 알 길이 없고, 가혹하기만 한 그 곳의 환경에 대해서만 더 잘 알게 될 뿐이다. 국가에 의해 철저한 보안 속에 운영되고 있는 자슬리크 교도소는 사막 한가운데 지어진 감옥으로 국가 기밀로 분류되는 탓에 외형을 담은 사진은 물론, 수감 인원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베일에 싸여있다. 이 곳을 방문할 수 있는 독자적인 국제 기구조차 존재하지 않는 까닭이다. 면회는커녕, 그녀가 주기적으로 보내고 있는 편지조차 오빠에게 전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딜로바르의 증언과 활동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동시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의 인터뷰가 함께한다. 그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는 갈리마 라는 이름의 우즈베키스탄 독립 기자다. 그녀가 취재하고 직접 목격한 바에 따르면, 딜로바르의 오빠인 이스칸다르가 끌려갈 당시 법정에서는 매일 같이 정치 사건이 다뤄지곤 했는데, 그들 모두는 체포된 이유와 무관하게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고문으로 인한 자백이 곧 증거가 될 만큼 말이다.

이스칸다르의 혐의 역시 이슬람 극단주의자 중 하나로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한 테러를 계획했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그 당시에 국가가 혐의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자주 사용했던 기소 내용이었다고 한다. 담당 판사에게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관련된 재판이 주어졌고, 판사는 재판을 진행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판결문만 읽고 자리를 뜨곤 했다는 것이 그녀의 증언이다.
 
 다큐멘터리 <악은 오직 절망 속에 산다> 스틸컷

다큐멘터리 <악은 오직 절망 속에 산다>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3.

그녀의 끊임없는 노력과 그 의미에 뜻을 함께하는 이들에 의해 UN이 겨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오빠에게 내려졌던 사형 선고는 무기징역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 변화조차 딜로바르는 쉽게 인정할 수 없는데, 당시 오빠가 보내온 편지 속에는 그가 거짓 자백을 할 수밖에 없도록 가해진 엄청난 고문과 자백을 하지 않을 경우 그가 보는 앞에서 가족들을 모두 성폭행하겠다는 믿기 어려운 종류의 협박까지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 이스칸다르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문 앞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가족을 상대로 가해질 미래의 두려움 앞에 무릎을 꿇고 만 셈이다.

여기에 터키로 망명한 무함마드 살리 야당 대표의 증언이 힘을 더한다. 카리모프 대통령이 세운 정권은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정권 중 하나라고 설명하는 그는 어느 누구라도 정권에 대해 올바른 말을 하거나 약간의 비판이라도 하게 된다면 테러리스트로 지목되어 자신처럼 사형 리스트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연좌제의 명목으로 가족에게까지 화가 미치는 것이기에 그의 동생 역시 자신의 죄를 뒤집어 쓰고 18년째 수감되어 있다. 그 또한 현재는 정치적 망명을 하여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사람을 고문하고 살해하고 제거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카리모프 정권은 지금도 국외의 우즈베키스탄 인들을 추적하고 있다.

04.

가장 믿기 힘든 사실은 딜로바르에게 일어난 일이다. 오빠의 석방을 돕고 부당하게 끌려간 이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 그녀에게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반정부 지지자로 활동하던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 그녀는 결혼을 결심하게 되고 슬하에 아이까지 셋을 낳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완전히 돌변한다. 이따금씩 아무 이유도 없이 폭력을 가하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사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적 망명을 한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물론, 감옥에 갇혀 있는 그녀의 오빠 역시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뿐이라며 친정부적인 행동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현재 딜로바르가 지겹게 싸우고 있는 대상이 정부인데 말이다.

그가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비밀기관을 위해 일하던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이미 그녀를 만나기 전부터 해외를 돌아다니며 반정부 활동을 하는 사람들 속에 숨어 그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정보를 수집해 우즈베키스탄 정부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었음에도 모두를 속여냈다.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에게 접근한 것 역시 이스칸다르와 관련된 활동을 감시하고 유사시에 제거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이혼을 한 후에도 그는 딜로바르와 세 아이를 죽이기 위한 시도를 감행한다.
 
 다큐멘터리 <악은 오직 절망 속에 산다> 스틸컷

다큐멘터리 <악은 오직 절망 속에 산다>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5.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숱한 어려움 끝에 딜로바르는 오빠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같은 자슬리크 교도소에서 출소한 정권 초기의 인권운동가 아잠 파르모노프 변호사를 통해서다. 그 역시 국가가 씌운 테러리스트 혐의로 십 수년의 세월을 복역했고, 출소 이후 딜로바르 측의 정식 변호인을 맡아 처음으로 이스칸다르의 면회를 성사시킨다. 딜로바르가 직접 자리할 수는 없었으나 대변인을 통해서라도 오빠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오빠는 이제 자신을 변호하는 일을 그만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해온다. 자신이 그럴 만한 일을 저질렀기에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파르모노프 변호사는 그의 입장을 이해하는 듯하다. 자신의 현재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그의 출소 이후 벌어질 일들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국가는 그를 결코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이스칸다르 역시 교도소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자슬리크 교도소를 포함한 우즈베키스탄의 교도소에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카리모프 정부가 씌운 허위 혐의로 수감되어 있다. 카리모프의 사망으로 인한 정권 교체 등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변화의 흐름이 조금씩 포착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국민 역시 3000만 명 가운데 50명이 채 되지 않는다. 딜로바르는 비록 자신의 의지대로 모든 것을 바로 잡지는 못했지만, 그 시간이 분명히 가치 있었다고 믿는다. 오빠를 구해내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그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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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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