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넛셀 테크닉>

<시나리오 넛셀 테크닉> ⓒ 상상출판사


  
"아마추어 시나리오 작가들의 99%가 이야기하기에 실패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시나리오 넛셀 테크닉>은 첫 문장부터가 다소 도발적이다. 99% 실패라고 말했지만 100% 실패라고 해도 다름이 없다. 저자인 질 체임벌린이 세계적인 시나리오 컨설턴트이자 코치로서 경험한 걸 이야기하는 것이겠지만 그가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산뜻한 대화나 장면 설정, 흥미로운 인물과 플롯 장치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하는데 실패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야기 대신에 존재하는 것은 상황일 뿐"이라며, 해결책은 이야기 구조에 있다고 말한다.
 
'이야기 구조'는 시나리오 작가들이 기울이는 창작 노력의 75%를 차지하는 매우 어렵고 중요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8개의 핵심 요소와 상호 의존성을 분석했고 이를 '호두껍질(넛셸) 속의 시나리오'라 이름 붙였다.
 
<시나리오 넛셸 테크닉>은 이를 구체적이고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안내서로써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기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큰 찬사를 받았고 질 체임벌린의 제자 중 다수가 영화제 수상하거나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펄프 픽션>, <유주얼 서스펙트>, <대부>, <식스센스>, <타이타닉>, <아르고>, <본 아이덴티티> 등이 <시나리오 넛셀 테크닉>이 도식화한 작품들이다.
 
흔히 좋은 시나리오가 좋은 영화의 바탕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시나리오 공모전도 열리고,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려는 창작자들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시나리오 넛셀테크닉>이 이야기 구조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창작자들에게는 알찬 지침서가 될 것 같다.
 
영화 25% 지점에 결정적 전환점 필요
 
질 체임벌린은 시나리오 단계를 ▲욕망설정 ▲결정적 전환점 ▲고난과 역경 ▲결함 ▲위기(희극) 또는 대성취(비극) ▲결정적 선택 ▲최종단계 ▲미덕에 이르는 8개로 구분했다. 일반적으로 장편영화가 120분 안팎이고 시나리오 역시 110~120페이지 정도로 시나리오 1장이 영화 장면 1분과 같다고 한다.
 
단계별로 적용되는 시간도 예시했다. 예를 들면, 영화 상영시간 25% 지점에서 결정적 전환점이 일어나거나 75% 지점에서 위기 혹은 대성취가 일어날 때 관객들의 호응을 얻게 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모든 장편영화를 희극과 비극 두 범주로 나누고 있다. 희극은 코미디 장르가 아닌 23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묘사한 희극과 비극의 학문적 정의를 따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주인공이 겪는 운명 변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쁜 운에서 좋은 운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운에서 나쁜 운으로 가는 것이어야 하며, 나쁜 운으로 가는 것은 악행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어떤 큰 결함 때문이어야 한다."

이를 시나리오에 응용하면, 비극은 주인공의 결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행운에서 불행으로 떨어지는 이야기로 보통 슬픈 결말이다. 반면 희극은 주인공이 자신들의 결함을 극복하고 그 반대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이야기로, 관객은 주인공이 운이 나쁜 것에서 좋은 것으로 가는 것을 보게 되고 보통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영화 <아르고>의 한 장면

영화 <아르고>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시나리오 넛셸 테크닉>은 8개 단계를 실제 영화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예시 작품 중 하나로 등장하는 <아르고>(2012)는 1979년 이란의 미국대사관이 시위대에 점령당한 뒤 캐나다대사관으로 피신한 6명의 직원을 구출하는 이야기다.
 
여기서 '욕망설정'은 CIA 최고 구출요원 토니 멘데스가 미국인 6명을 이란에서 탈출시킨다는 계획이고, '결정적 전환점'은 TV에서 <혹성탈출>을 보고 탈출 계획을 세우는 부분이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진짜 영화제작자로 보여야 하는 '고난과 역경'이 뒤따른다. 가족보다 일이 우선인 것이 주인공의 '결함'이었고, 상관이 임무가 취소됐다고 하는 부분이 '위기'였으며, 이를 거부하고 작전을 진행한 것이 '결정적 선택'이었다. '최종단계'는 가족과의 재회였고, 가족의 가치라는 미덕을 향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저자는 '결정적 전환점'과 '고난과 역경'은 1막에서 2막으로 넘어가는 신호로 100분 영화 시나리오의 경우 25분이나 25페이지 정도라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을 예로 들며 '잭이 로즈에게 배에서 뛰어내리지 말라'고 설득한 후 결정적 전환점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로즈가 배 밖으로 떨어지지만 잭이 그녀를 구하는 것은 194분 상영시간의 20~23% 지점(38:16~43:56)라는 것이다.
 
1985년 제작된 <위트니스>의 경우 외톨이라는 '결함'을 지닌 존북(해리슨 포드)이 정반대 개념인 공동체의 가치 '미덕'을 토대로 변화하기 시작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다. '결정적 선택'은 '목격자'로, 주인공을 위협에 빠뜨리는 멘토들과 맞서는 것으로 분석했다.
 
1942년 만들어진 흑백 영화 <카사블랑카>부터 2013년 <겨울왕국>에 이르기까지 명작이 된 영화들의 구조에 저자가 구분한 8개의 단계가 적용되는 부분이 흥미롭다.
 
시나리오에 적용해 봤더니 도움

시나리오 작가들 역시 <시나리오 넛셸 테크닉>에서 제시하는 이야기 구조 방식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으로 미국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한진원 작가는 "작가들의 방을 떠올려 보면 파스텔 톤의 메모지에 각 단락의 아이디어 등이 빼곡히 적혀있고 그것들은 한쪽 벽 가득 알고리즘으로 구성된 하나의 이야기 설계도"라며 "저자인 질 체임벌린은 저마다 천차만별인 플롯의 도식화에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시네필에게는 흥미로운 분석 도구가 되고, 작가들에게는 산뜻한 길잡이 또는 저마다의 노하우를 지원해 줄 동료가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독전>을 쓴 정서경 시나리오 작가는 "즉시 내가 쓰고 있는 시나리오에 적용해 보았더니, 쉽고 도움이 되는 데다 시나리오가 확실히 나아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크리미널마인드' 양윤호 PD 19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tvN 수목드라마 <크리미널마인드> 제작발표회에서 양윤호 PD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크리미널마인드>는 세계 최초로 리메이크되는 미드 '크리미널마인드'의 한국판으로, 범죄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심리를 꿰뚫는 프로파일링 기법을 통해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범죄 심리 수사극이다. 26일 수요일 오후 10시 50분 첫 방송.

양윤호 감독 ⓒ 이정민



 
<시나리오 넛셸 테크닉>은 영화 <바람의 파이터>, <홀리데이>, 드라마 <아이리스>, <크리미널 마인드>을 연출한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 양윤호 감독(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 교수)와 다큐멘터리 <의리적 구토 그 후, 100년의 구투>, 영화 <여인에 관한 짧은 필름>을 연출한 배우 겸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인 이태리 감독(동국대 영상대학원 박사과정)이 번역했다.
 
양윤호 감독은 "아무리 이야기를 잘하는 스토리텔러라도 이야기를 영상화 하는 데는 분명한 설계가 필요하고, 설계는 치밀하게 계획된 것들에 의해 작동돼야 한다"며 "인물에 대한 삶의 이해와 구조적인 정리가 수월하다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 만큼 영화를 공부하는 작가, 감독, 배우들이 작품의 전개와 시점을 이해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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