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에선 처음 또는 다시 볼 만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작품부터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품까지 다양하게 다루려고 합니다.[기자말]
<디 엔드?> 영화 포스터

▲ <디 엔드?> 영화 포스터 ⓒ (주)스토리제이


중요한 미팅을 앞두고 출근하던 젊은 사업가 클라우디오(알렉산드로 로자 분)는 회사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6층과 7층 사이에 갇혀 버린다. 곧바로 인터폰으로 수리를 요청하나 곧 기술자를 보낸다는 대답만 돌아온다. 기다림에 지친 클라우디오는 엘리베이터 문을 직접 열어보지만, 고작 머리 정도만 나갈 틈밖에 열지 못한다. 그런데 간신히 열린 엘리베이터 틈으로 본 바깥은 좀비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1960~1980년대 이탈리아 영화계는 <사탄의 인형>(1960) 마리오 바바, <서스페리아>(1977)의 다리오 아르젠토, <비욘드>(1981)의 루시오 풀치 등 쟁쟁한 호러 거장을 배출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은 다르다. 이탈리아 호러 영화가 깊은 침체기에 빠진 사이에 유럽의 영국과 스페인, 아시아의 한국과 일본 등에서 만든 호러 영화가 새롭게 떠올랐다.
 
<디 엔드?> 영화의 한 장면

▲ <디 엔드?> 영화의 한 장면 ⓒ (주)스토리제이


2017년 만들어진 이탈리아의 좀비 영화 <디 엔드?>는 여러모로 주목할 점이 많은 작품이다. 먼저, 설정이 독특하다. 최근 선보이는 좀비 영화들은 엄청난 숫자의 좀비를 피해 소수의 생존자가 여러 장소로 이동하는 전개를 취한다. 반면에 <디 엔드?>는 엘리베이터(무대)와 남자(주인공)만을 내세워 독창성을 꾀한다.

처음과 마지막을 제외한 대부분 전개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벌어진다. 이것은 정체불명의 남자의 협박으로 인해 공중전화 부스에 갇혀버린 인물이 나오는 <폰 부스>(2002), 고층빌딩의 엘리베이터에 아무 관계가 없는 다섯 사람이 갇히는 상황을 다룬 <데블>(2010), 갑자기 습격을 받은 한 남자가 눈을 떠보니 관에 갇혀 어딘가 묻혔다는 설정의 <베리드>(2010) 등 제한된 공간을 활용하는 영화들을 연상케 한다.

<디 엔드?>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작품은 이탈리아 호러 걸작 <데몬스>(1988)다. <디 엔드?>는 <데몬스>의 '극장' 밀실 공포를 '엘리베이터' 밀실 공포로 변형했기 때문이다. 선배의 작품을 가져온 다니엘레 미시스키아 감독은 엘리베이터를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활용한다.

클라우디오는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자 빨리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런데 좀비들이 출몰하면서 상황은 돌변한다. 가장 위험한 엘리베이터는 제일 '안전한' 곳으로 변한다. 고장이 나서 벗어날 수도, 가진 것이라곤 물병 하나밖에 없어 계속 머무를 수도 없는 공간 엘리베이터는 극의 아이러니와 재미를 더한다.
 
<디 엔드?> 영화의 한 장면

▲ <디 엔드?> 영화의 한 장면 ⓒ (주)스토리제이


<디 엔드?>는 갑작스러운 생화학 무기 공격이나 바이러스 전파 같은 현대인의 공포를 좀비물의 형태로 그린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클라우디오와 좀비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화가 투영되어 있다.

영화의 초반부에 클리우디오는 거만하고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자본의 속성에 충실했던 그는 자신이 속했던 세계를 엘리베이터 안에서 관찰하게 된다. 엘리베이터의 열린 틈으로 본 세상은 잡아먹히거나, 또는 잡아먹는 자본주의의 처절한 생존 현장이다.
 
클라우디오는 종말의 현장을 목격하며 점차 내면의 변화를 경험한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잘못을 반성한다. 좀비로 변한 친구나 동료의 머리를 날리며 생존해야 하는 처지에 괴로워한다.

클라우디오가 도덕성과 이타주의를 회복하면서 엘리베이터의 문은 마침내 열리게 된다. 엘리베이터는 곧 클라우디오의 내면이고 문과 틈은 타인을 향한 따뜻한 눈과 열린 마음인 셈이다. 그리고 절망적 의미가 느껴지던 제목 <디 엔드?>는 희망이 남아 있다는 뜻으로 바뀐다.
 
<디 엔드?> 영화의 한 장면

▲ <디 엔드?> 영화의 한 장면 ⓒ (주)스토리제이


요즘 호러 영화의 트렌드는 단연 좀비다. 그러나 대다수 영화가 <레지던트 이블>(2002), <28일 후>(2003), <새벽의 저주>(2004)의 영향 아래 있거나 복제품인 것도 사실이다. 소설 <나는 전설이다>을 근사하게 재해석한 프랑스의 <워킹 데드 나잇>(2018)이나 열차란 공간으로 좀비의 새로운 풍경을 보여준 <부산행>(2016) 정도가 인상적일 따름이다.

<디 엔드?>는 엘리베이터를 심리의 공간이자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무대로 다루어 <데몬스>의 유산을 흥미롭게 계승한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선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의 엔딩을 다른 결말로 오마주하여 헌사를 바친다. 정치,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디 엔드?>는 이탈리아 호러 영화의 흥미로운 귀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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