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8부작 수목드라마 <십시일반>(극본 최경/연출 진창규)은 유명 화가의 수백억대 유산을 둘러싼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복마전을 그린 미스터리 코미디극을 표방했다. 여러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는 추리소설적인 구성, 눈에 띄는 스타 배우는 없지만 저마다의 연기 공력과 개성을 자랑하는 다양한 배우들의 조합은, 그동안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실험적인 시도였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스카이캐슬>을 통하여 스타덤에 오른 오나라, 넷플릭스 <킹덤>에서의 악역인 중전 조씨로 이름을 알린 김해준 정도가 그나마 인지도 있는 배우들이고, 김정영, 남문철, 이윤희, 남미정, 한수현, 최규진, 김시은 등은 시청자들에게는 낯설거나 얼굴은 알아도 이름으로는 생소한 배우들이다.

여기에 거액의 유산을 남긴 화가의 살해범을 찾아가는 미스터리적 구성, 마치 한편의 연극무대를 TV드라마로 옮긴 듯한 연출은, 최근의 드라마 트렌드와는 조금 색다른 문법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실 80-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스터리 추리극이나 블랙코미디 장르의 실험적인 드라마들이 지상파에서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자주 제작되곤 했다. 애거서 크리스티-엘러리 퀸-코난 도일 등 주로 영미권의 검증된 추리소설 원작들을 한국화시킨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국내 정서상 어색한 연출도 많았지만, 오히려 당시의 시대현실이나 사회정서를 은유적으로 접목시켜 지금 봐도 TV드라마 치고는 상당히 파격적인 구성을 보여준 작품들도 있었다.

<베스트셀러극장>, <TV 문학관>, <전설의 고향> 등 지금보다 단막극-옴니버스형 드라마가 한창 활성화된 시기였고, 여름 시즌에는 공포-추리 장르 별도의 연중 특집 시리즈로 편성되기도 할만큼 실험적인 드라마를 시도할 수 있는 여유가 더 많았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 '트렌디 드라마'의 유행과 '한류'의 영향 등으로 인하여 드라마의 상업성이 점점 강화되었고, 추리물이나 블랙코미디처럼 마니아 위주의 장르는 위축됐다.

최근의 드라마들은 메인 캐릭터들과 몇몇의 큰 사건-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핵심적인 장면들 위주로 전개된다. 그에 비하여 <십시일반>같은 작품들은 소설이나 연극처럼 전체적인 줄거리와 복선을 이해하면서 천천히 음미해야만 그 진가를 이해할 수 있는 슬로우스타터 유형의 작품이다. 관객들에게 이야기의 긴장감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스토리라인을 흥미롭게 풀어내는 작가의 전문성 있는 필력, 배우들의 연기하는 캐릭터의 몰입도에 성패가 좌우된다.

<십시일반>은 시청자들에게 등장 캐릭터들에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하며 시청자들이 앞으로의 진행을 스스로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등장인물은 어디가 선인지 악인지도 분명하지 않고 누구나 용의선상에 오를 수 있으며 모두가 범인일 수도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어떤 배우가 어떤 역할에 캐스팅되었느냐만 봐도 이야기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기존 드라마와 달리, 일부를 제외하면 시청자들에게 낯선 캐스팅이 많다는 점은 바로 이런 곳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드라마는 인물들을 인터뷰 하는 모습을 중간중간 삽입해 인물의 특징과 상황을 설명해주는가 하면, 이전 에피소드에서 묘사했던 상황이 다음 에피소드에서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 <라쇼몽>식의 구성을 통해 끊임없이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쉬운 점은 공들인 티가 난 초반부에 비하여 후반부에 완성도가 추락하는 스토리의 연결성이었다. 8부작도 미니시리즈로서는 긴 러닝타임은 아니지만, <십시일반>은 차라리 3~4부작 정도로 압축했더라면 더 속도감과 긴장감 있는 이야기 전개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야기가 점점 늘어지면서 초반에 제시했던  다양한 복선과 궁금증을 클라이맥스에서 자연스럽게 회수되지 못했다. 

수상하고 의문투성이였던 등장인물들이 결말에서 갑자기 일제히 선하게 회귀하는 뜻밖의 마무리 등은,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시청자의 기대와는 다른 의미에서의 '반전'에 가까웠다. 작품을 끝까지 완주했던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치밀하게 짜여진 결말이라기보다는, 인물들간의 캐릭터성이 갑자기 붕괴되며 오히려 허무하고 뜬금없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어쩌면 부조리극 특유의 시니컬한 정서를 벗어나 '메시지와 해피엔딩에 대한 지나친 강박'이 만든 과유불급에 가까운 마무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비슷한 소재와 캐릭터를 재탕하는 경향이 강해진 최근 드라마 시장에서 새로운 장르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사실 이런 코드의 드라마는 한국보다 '미드'나 '영드'에서 더 익숙하다. 장르물이 발달한 영미권에서는 한국보다 마니아 취향의 실험적인 작품들이 많다. 한국도 이제 넷플릭스같은 플랫폼을 통하여 과거보다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반면 국내 드라마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며 이제 과거처럼 세대를 넘나드는 보편적 인기를 누리는 '국민드라마'는 나오기 어려워졌다. 시청률로는 몇십 퍼센트를 넘나든다는 주말극도 젊은 시청자들은 아예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누리꾼과 마니아팬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입소문을 타는 핫한 장르극이나 한류드라마도 중장년층에는 오히려 딴세상 이야기처럼 들린다. 올해 상반기는 젊은 인기스타들을 내세운 지상파 멜로물들이 시청률 면에서 잇달아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소재 고갈과 배우 파워의 시대가 끝났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결국 시청층이 세분화된 만큼 앞으로는 어설프게 여러 세대를 아우르려는 시도보다는 소수의 팬덤이라도 확실하게 타깃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해졌다. <십시일반>은 애초부터 대중적인 소재나 장르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드라마의 장르적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십시일반>의 시청률(방영 내내 시청률 평균 2~3%)만으로 섣불리 실패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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