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시일반(十匙一飯).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보태면 한 사람이 먹을 밥 한 공기가 만들어 진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은 쉽게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사자성어다. 

하지만 지난 7월 22일 첫 방송된 MBC 드라마 <십시일반>에서는 오히려 이를 역설적으로 활용한다. 여럿이 힘을 모아 한 사람을 돕는 게 아니라, 여럿이 힘을 모아 한 사람을 '죽였을 수도 있다'. 드라마 <십시일반>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오리엔탈 특급 살인> 만큼이나 신선한 설정으로 시작됐다. 8부작의 짧은 호흡으로 지난 13일 종영한 이 작품이 도달한 결론은 뜻밖의 진실이었다.

모두가 의심스럽다 
 
 MBC 드라마 <십시일반> 포스터

MBC 드라마 <십시일반> 포스터 ⓒ MBC

 
예고 영상에서는 마치 삼복 더위를 날려 줄 납량 특집극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니나 다를까. 1회가 끝나기도 전에 유인호 화백(남문철 분)이 사망했다. 그가 잠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 날은 공교롭게도 그의 생일이었다.

당대 최고의 화백이라 칭송받는 유인호는 명성 만큼이나 천정부지의 그림값을 자랑한다. 당연하게도 그의 재산은 수백 억 원에 달한다. 그의 생일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현재 그는 연극 연출가 설영(김정영 분)과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설영은 법적으로 유인호의 아내가 아니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모델 김지혜(오나라 분)와 바람을 피며 설영과 이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인호는 다시 전처 설영을 찾았고, 설영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유인호를 돌보고 있다.

유인호와 설영 사이에는 자식이 없다. 자식은 김지혜와 낳은 유빛나(김혜준 분)가 유일하다. 유인호는 김지혜와 헤어졌지만 지혜 모녀에게 양육비를 지급했다. 파산한 김지혜는 유산 상속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생일날 일찌감치 유인호를 찾아왔다.

김지혜 모녀뿐만이 아니다. 유인호의 이부 동생 독고철(한수연 분)과 그의 딸 독고선(김시은 분) 역시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돼 유인호의 집을 찾는다. 유인호의 동생 아들 유해준(최규진 분)도 유인호 덕분에 먹고사는 터라 당연히 그 자리에 참석한다. 유인호의 친구이자 매니저 역할을 하는 문정욱(이윤희 분)과 가사 도우미 박여사(남미정 분) 역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유인호 화백은 "지난 1년간 내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고 비아냥거리며 "내일 유언장을 공개하겠다"고 선언한다. "내 유산이니 내 마음대로 나눠주겠다. 토 달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 유언장이 공개되기도 전에 유인호 화백은 죽음을 맞이했다. 

유인호가 죽은 이유는 수면제 과다복용이었다. 불과 다섯 알밖에 먹지 않았지만 그에겐 수면제 알레르기가 있었기 때문에 사망에 이른 것. 그에게 다섯 알의 수면제를 먹인 인물은 모두 현장에 있었다. 과거 연인이었던 김지혜와 도우미 박여사, 친구 문정욱, 이부 동생 독고철, 그리고 조카 유해준까지.

그렇다면 수면제를 한 알씩 나누어 먹인 이들이 진짜 범인일까? 사건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그들이 유언장에 접근하도록 편지로 유인한 익명의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모두가 서로를 의심하고 추궁한다. 다른 사람을 범인으로 몰기 위해 으르렁 거리며 싸우게 되는 과정이 이어진다. 당연히 시청자들은 '누가 유인호를 죽였는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드라마에 몰입하게 된다. 드라마는 이런 추리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등장인물을 인터뷰하기도 하고, 등장인물이 직접 SNS를 통해 집단지성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추리하기도 하는 등 신선한 연출로 긴장감을 높인다.

그러나 드라마는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방향을 틀었다. 등장인물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게 만든 어마어마한 유산의 주인공, 유인호의 실체를 조금씩 벗기기 시작한 것이다. 

유해준은 딸 유빛나와 함께 유력한 유산 상속자로 부각되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내가 큰 아버지의 자식같다"며 빛나를 몰아세웠던 유해준의 태도가 수상하다. 큰아버지의 초콜릿에 수면제를 탄 유해준이 알게된 건 뜻밖에 진실이었다. 

어린 시절 유해준은 아버지와 함께 큰아버지인 유인호 화백 집을 방문했다. 아들 해준에게 "잠깐만 기다리라"며 혼자 집으로 들어간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영영 사라진 아버지,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긴 세월 해준은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해준이 준비한 복수의 실체는 또다른 진실을 드러냈다. 

진짜 나쁜 놈은 누구일까? 
 
 MBC 드라마 <십시일반> 스틸 컷

MBC 드라마 <십시일반> 스틸 컷 ⓒ MBC

 
15년 전 해준의 아버지 죽음 뒤에는 유인호라는 '거악'이 있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화백이라고 칭송 받았지만, 누구에게나 비열하고 냉혹했다. 심지어 유인호는 자신이 죽은 뒤의 명성까지 디자인하려 이 모든 걸 꾸미기 시작했던 것. 유언장이 담긴 비밀금고의 위치를 알려주는 편지를 보낸 주인공 역시 유인호였다.

게다가 유인호의 충직한 비서이자 친구인 줄만 알았던 문정욱 역시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유인호의 노예처럼 살아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실수로 유인호의 동생이자 유해준의 아버지를 죽였던 문정욱은 "15년 동안 벌을 받을 만큼 받았다"고 항변했다. 유인호의 작품 역시 대부분 문정욱이 대작한 그림들이었다.

드라마의 시작은 평범한 탐욕이다. 유산을 한 푼이라도 더 얻기 위해 달려든 가족들, 그 탐욕의 피해자인 듯한 유인호의 죽음. 그러나 진실의 커튼을 걷어내고 보면 오히려 이들의 탐욕이 하찮게 느껴질 만큼 지독한 이기주의자였던 유인호의 죽음이 드러난다. 오로지 자신의 명성과 부를 위해 동생의 죽음을 감췄고, 친구를 노예처럼 부렸으며 사랑했던 아내에게마저 파렴치했던 유인호의 죽음은 인과응보에 가까웠다.

하물며 복수를 꿈꾼 유해준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은 수백억 원의 유산도 포기하고 진실을 세상에 공개하기를 선택한다. 이는 이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고통의 세월만을 보내왔는지 짐작하게 만든다. 이들은 유인호의 그림이 사실 문정욱의 그림이었다는 진실을 밝히고 그림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손해배상 해주는 데 사용한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죽은 뒤에도 명성을 유지하길 원했던 유인호의 실체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십시일반' 어벤저스들은 유쾌한 블랙 코미디로 극을 장식했다. 8부작의 짧은 호흡을 통해 신선한 장르적 시도는 최근 침체된 지상파 드라마에 색다른 활력을 불어넣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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