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올해는 결국 'A매치없는 해'로 남게 됐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은 12일 "10월부터 11월까지 예정되어 있던 2022 카타르 월드컵 예선과 2023 아시안컵 일정을 모두 내년으로 미루기로 국제축구연맹(FIFA)과 함께 결정했다"고 밝혔다. AFC는 "향후 코로나19 상황을 주시하면서 적절한 경기일정을 물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로서 올해 잡혀있던 우리 대표팀의 투르크메니스탄-북한-레바논과의 홈경기, 스리랑카와의 원정경기 등 팀당 3-4경기씩 남은 2차 예선은 물론 12개국이 참가하는 최종예선까지 기약 없이 연기됐다. 한국 대표팀도 2차 예선 조별리그 H조에서 현재까지 2승2무(승점 8)를 기록하며 아직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다만 월드컵 예선 일정이 연기된 것과 별개로 기존의 A매치 기간은 그대로 적용된다. 대표팀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친선경기를 치를 타국 대표팀을 섭외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해당 A매치 기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대한축구협회에서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해야 한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은 지난해 12월 동아시안컵(EAFF E-1 챔피언십) 이후 한번도 소집되지 못하고 있다. 벤투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K리그 경기를 꾸준히 관전하면서 선수들의 경기력을 체크하는 것 뿐이다. 이런 사정은 도쿄올림픽 본선이 내년으로 연기된 김학범 올림픽대표팀 감독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A대표팀과 올림픽팀이 다음달 4일과 8일, 두 차례에 걸쳐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친선전을 치르기로 일정이 잡히면서 오랜만에 대표팀을 소집할 수 있게 됐다. 두 팀 모두 외부팀과의 평가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선수들의 경기력 유지와 전술 점검을 위한 고육책이다. 하지만 해외파를 소집할 수 없는 상황이라 양팀 모두 최상의 전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약간 맥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 K리그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소식이다. 당초 10-11월 월드컵 예선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을 경우, K리그 국가대표급 선수들은 리그 일정과 ACL(아시아챔피언스리그) 대회 일정까지 연달아 겹칠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더구나 코로나 때문에 국내외 이동시 자가격리를 거쳐야 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A매치와 소속팀 일정을 모두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선수들의 체력부담으로 인한 혹사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A매치 일정이 연기되면서 K리그 구단들은 그나마 선수 관리에 어느 정도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문제는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월드컵 예선 일정이 과연 내년에도 정상적으로 치러질수 있을까 하는 우려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까지 계속될 지 장담할 수 없는데다 국가마다 출입국 정책과 확진자 상황이 달라 예측이 힘들다. 보통 아시아 예선은 그동안 월드컵 본선이 열리기 약 1년전에 마무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당초 FIFA와 AFC가 구성한 2021년 A매치 일정에 따르면 3월과 5~6월, 8~9월, 10월, 11월로 총 5회의 A매치 기간에 팀별 각 2경기씩 최대 10경기의 A매치를 소화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대로라면 일정을 최대한 빠듯하게 소화한다고 해도, 현재로서는 아시아 2차 예선 잔여 경기와 최종 예선 팀별 10경기를 2021년 한 해에 모두 치르기는 무리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 확산 등의 변수에 따라 다시 일정이 연기되는 경우도 감안해야 한다. 만약 월드컵 본선이 열리는 2022년까지 아시아 예선 일정이 넘어갈 경우, 다른 대륙간 플레이오프나 월드컵 본선 조추첨과도 맞물려 전체적인 월드컵 스케쥴이 꼬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아직은 조심스러운 예상이지만, 일각에서는 월드컵 최종 예선 방식이 변경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대회에 한정하여 중립국에 모여서 일정 기간내에 조별리그&토너먼트 식의 단판 승부로 소화하는 방식으로 변경될 가능성이 대안으로 거론되고있다.

물론 기존의 예선 방식을 유지하는 대신 A매치 기간에 경기 수를 늘리는 방식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무리한 일정으로 선수들의 피로도가 지나치게 가중될수 있는데다, 코로나 사태로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롭지못한 현재로서는 선수들이 안전이나 정상적인 일정 진행을 장담할 수 없다는게 문제다.

올해 유럽챔피언스리그(UCL)만 해도 8강 이후부터는 기존의 홈앤 어웨이 제도가 아닌 토너먼트 단판승부로 치러지고 있다. 올림픽 예선은 2012년 런던대회만 해도 홈앤 어웨이 방식을 유지했지만, 2016년 리우 대회와 2020년 도쿄 대회에서는 단기 대회인 AFC-23 챔피언십이 올림픽 티켓이 걸린 지역예선을 겸하고 있다. 한국은 2016년 준우승-2020년 우승을 차지하며 올림픽 본선행 티켓을 따냈다. 월드컵 예선도 지금의 홈앤 어웨이 제도가 정착된 것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예선부터다.

만일 월드컵 예선이 '단판 승부' 방식으로 변경될 경우, 아시아의 강호인 한국으로서는 딱히 달가울 것이 없는 상황이 된다. 장기간에 걸쳐 많은 경기를 소화하는 홈앤 어웨이 체제에서는 한 두경기 덜미를 잡히더라도 다음 경기에서 얼마든지 만회가 가능하기 때문에 전력에서 앞서는 강팀이 유리하다.

하지만 짧은 기간내에 여러 팀이 한 자리에 모여 풀리그를 치르는 방식이나, 토너먼트로 치러지는 단기전의 경우, 분위기에 휩쓸려 얼마든지 이변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기에 강팀과 약팀의 전력차가 큰 의미가 없어진다. 1993년 미국월드컵 최종예선 '도하의 기적' 당시 최종전에서 희비가 극적으로 엇갈렸던 한국과 일본의 사례가 좋은 예다.

벤투호는 지난해 열린 아시안컵 토너먼트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8강에서 조기탈락한 바 있다. 비교적 약체팀들과 만난 아시아 2차예선에서도 여러 가지 변수를 감안해도 압도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임기응변과 전술적 유연성이 부족한 것이 벤투호의 가장 큰 단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가뜩이나 불안요소가 많은 벤투호에서 매경기를 결승전처럼 치러야 하는 단판승부 방식으로 월드컵 예선 일정이 변경된다면, 큰 부담이 하나 더 늘어나는 꼴이 될 수 있다. 코로나가 불러온 나비효과가 한국축구와 벤투호의 미래에 또 어떤 영향을 가져오게 될지 신중하게 주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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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호 월드컵예선방식 FI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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