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셉션> 포스터

영화 <인셉션> 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타인의 꿈에 들어가 생각을 훔치는 특수 보안요원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아내 '맬(마리옹 꼬띠아르)'을 살해한 혐의로 인터폴에 수배돼, 사랑하는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는 그에게 '사이토(와타나베 켄)'는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코브가 라이벌 기업의 후계자인 '피셔(킬리언 머피)'에게 생각을 심는 인셉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경우, 그의 신분을 바꿔주겠다는 것.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사이토의 제안을 받아들인 코브는 '아서(조셉 고든 레빗)', '애리어든(엘렌 페이지)', '임스(톰 하디)' 등으로 구성된 팀을 꾸려 피셔의 꿈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 <다크 나이트> 3부작, <인터스텔라>, <덩케르크>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은 독특한 스타일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은 감독으로 유명하다. 작품 외적으로 볼 때 그는 감독판을 따로 내놓지 않는 것이나 필름 촬영을 고집하는 것처럼 고전적인 시네마의 형태, 즉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을 유달리 강조한다.

신작 <테넷>의 개봉일이 거듭 연기된 것 역시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 걸려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반영된 결과다. 또한 작품 내적으로 그는 현실성을 중요시한다. 이 특징은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제작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덩케르크>의 전투 장면에는 수 백 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되었고, <인터스텔라>는 가능한 한 물리학의 법칙을 충실히 따라서 제작되었다. <다크나이트> 속 고담시 역시 뉴욕과 시카고를 모티브로 실제로 존재하는 도시처럼 묘사된 바 있다. 10년 만에 재개봉한 <인셉션>은 이러한 놀란의 스타일이 가장 잘 살아있는 영화다. 
 
 영화 <인셉션> 스틸 컷

영화 <인셉션> 스틸 컷 ⓒ (주)디스테이션

 
꿈속의 꿈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루는 만큼 <인셉션>의 전반부는 사람을 꿈에 빠뜨리는 방식, 꿈을 어떻게 설계하고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꿈 속 세상의 특징에 대한 소개로 가득하다. 영화는 다음과 같이 꿈을 설명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꿈 속에 들어갈 수 있고 그들의 꿈을 공유할 수 있다. 그렇기에 타인의 가장 깊숙한 비밀도 엿볼 수 있다. 또한 꿈속에서의 삶과 죽음이 현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대신 그 기억과 경험은 깨어난 후에도 유지된다. 꿈의 공간과 시간은 기본적으로 원하는 대로 설계할 수 있다. 하지만 의지와 관계없는 무의식도 꿈의 전개나 형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인셉션>에 등장하는 꿈의 특징은 영화를 감상하는 경험과 다양한 측면에서 유사하다. 우선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공간인 영화관은 눈을 감고 잠들 때만 만날 수 있는 꿈의 세상이나 다르지 않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꿈을 공유하듯 관객들은 영화관 안에서 함께 존재하며 같은 영화를 관람한다. 또한 영화를 보는 것은 관음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일방적으로 영화 속 인물들의 삶과 비밀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결코 현실이 아닌데도 그로부터 경험한 감정을 간직하게 된다는 점도 꿈과의 유사점이다. 이러한 꿈과 영화의 유사점은 각본과 제작을 맡은 놀란 감독이 전통적인 방식의 영화 감상을 고집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자, <인셉션>을 영화 그 자체에 대해서 논하는 영화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다.

이에 더해 코브는 꿈과 영화의 또 다른 공통점을 보여준다. 코브는 현실에서 죽은 아내 맬에 대한 미련과 죄책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그런 한편 아이들에게 되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의 꿈은 신혼집같은 현실 속 익숙한 공간을 배경으로 그의 의도와 관계없이 맬과 아이들을 계속해서 등장시킨다. 그러나 코브의 소망은 꿈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맬은 그가 꿈속에 남도록 유도하며 아이들 역시 뒷모습만 보여준다. 오히려 꿈에서 깨어날 때, 온전히 현실로 되돌아올 때 그는 비로소 맬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고 아이들과 재회하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인셉션>은 꿈이 사람의 소망을 반영할 수는 있어도, 꿈을 꾸는 행위 그 자체가 소망을 현실에서 이루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꿈과 현실에 관한 메시지는 영화를 보는 경험에도 똑같이 해당된다. 영화도 사람들의 현실적인 경험과 소망이 투영되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제작자의 경험과 열망이 깃드는 공간이자 동시에 관객들의 소망과 감정이 미치는 공간이다. 관객들이 영웅이 되고 싶거나 그의 존재를 바랄 때 히어로 영화가 그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처럼. 이때 그럴듯한 시각적, 청각적 경험을 통해 사람들의 소망을 충족시킬 경우 관객들의 만족도는 극대화될 수 있다. 이는 복도 액션신을 위해 실제로 회전하는 세트를 만들 정도로 놀란 감독이 현실성을 중시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현실 세계에 즉각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코브가 아리아드네에게 꿈과 현실의 구분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영화는 현실을 토대로 만들어지되 현실과 똑같지는 않다. 단지 영화를 본 사람에게 색다른 경험을 안겨줄 뿐이다. 이는 코브가 꿈에서 깨어나듯, 관객들도 영화관에서 나올 때 비로소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는 꿈이 이루어지기를 꿈꾸는 공간이지 그 꿈이 이루어진 공간은 아니므로 결코 현실과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인셉션>의 전반부를 영화를 꿈에 비유한 것으로 읽을 경우, 꿈속의 꿈에서 피셔의 머릿속에 아이디어를 심으려는 <인셉션>의 후반부 또한 영화의 특징과 관련지어 이해할 수 있다. <인셉션>의 후반부는 세 개의 꿈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차원을 오가는 인물들 간의 연결고리인데, 영화에서는 시간이 그 역할을 맡는다. 깊은 꿈으로 내려갈수록 시간도 함께 느려진다는 설정을 이용해 시간대를 다르게 하거나 시간 순서를 뒤바꾸는 편집으로 제각각 다른 시간대에서 진행되는 장면들을 이어 붙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돌발 변수와 서스펜스는 주인공들의 서사가 더욱 극적으로 전달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며 거대한 상상력이 빚어내는 멋진 세계를 구축한다.
 
 영화 <인셉션> 스틸 컷

영화 <인셉션> 스틸 컷 ⓒ (주)디스테이션

 
이처럼 현실과 꿈의 시간은 다르고, 꿈과 꿈속의 꿈의 시간도 다르다는 설정은 현실과 영화, 영화와 영화를 보는 경험 사이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영화는 현실의 시간 안에서 상영된다. 그러나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몇 분에서 몇 년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시간대에 따라 진행된다. 심지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체감하는 시간은 현실의 시간과도 영화 속의 시간과도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셉션>만 하더라도 2시간 반 동안 상영되지만, 영화는 몇 년의 시간 동안 있었던 코브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관객은 영화가 2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중 꿈을 꾸는 것처럼 영화의 서로 다른 시간들은 함께 흐르면서 영화라는 경험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인셉션>은 결국 시작부터 끝까지 꿈을 빌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코브가 피셔의 머릿속에 아이디어를 심기 위해서 '인셉션' 하듯이 놀란 감독이 <인셉션>을 통해 자신의 영화 세계를 관객들에게 충격적으로 각인시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인셉션>은 완벽한 영화가 아니다. 코브를 제외한 캐릭터들이 플롯을 위한 도구처럼 사용되거나 아버지라는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여성 캐릭터의 서사가 빈약하게 느껴지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나 <인터스텔라> 같은 놀란 감독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단점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 속의 꿈이라는 아이디어와 꿈에 침투해 생각을 심을 수 있다는 상상력을 토대로 자신의 영화가 지닐 수 있는 매력을 온전히 펼쳐 보였다는 점에서 <인셉션>은 가장 놀란다운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원종빈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영화리뷰 인셉션 크리스토퍼 놀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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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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