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반교 : 디텐션>은 팡루이신(왕정·왼쪽)과 웨이중팅(증경화)이 으스스한 학교에서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 <반교 : 디텐션>은 팡루이신(왕정·왼쪽)과 웨이중팅(증경화)이 으스스한 학교에서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 찬란

 
거창한 사명감으로 만든 건 아니었다. 대만인들의 마음에 와 닿을 디스토피아적 에피소드를 고민한 게 시작이었다. '제한된 환경 속에서 아무도 자유를 추구할 수 없는'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까? 조지 오웰의 소설 < 1984 >에서 영감을 얻었다. 체제의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회. 통제와 감시가 존재하는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꽃피는 저항.
 
대만 게임 제작자 야오슌팅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다. 대만에도 < 1984 >와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자유와 민주화를 울부짖은 사람들이 간첩과 반체제 인사라는 이름 속에 잡혀갔던 1960년대. 대만인들이 '백색 테러' 시대라고 불렀던 암흑기. 공포 시대를 겪은 것보다 더 무서운 공포가 세상에 또 있을까.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 투옥되고 처형당했던 시절을 배경으로 잡았다. 2017년 출시된 온라인 게임 <반교 : 디텐션> 이야기다. 대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한국, 미국에서도 흥행했다. 자연스럽게 게임이 동명의 영화로 완성돼 오는 13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반교 : 디텐션>의 한 장면. 독서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영화 <반교 : 디텐션>의 한 장면. 독서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 찬란

 
게임의 판 위에서 펼쳐지는 훌륭한 역사물
 
영화는 "국가 내란죄는 사형에 처한다"는 방송이 울려 퍼지면서 시작된다. 고등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군복 차림의 교관이 학생들을 감시한다. 가방 속에 이상한 물건이 들어있지 않은지 매의 눈으로 본다. 교사와 학생은 모여 장엄하게 국기 게양식을 한다. 억압할수록 자유의 갈망도 싹이 튼다. 웨이중팅(증경화)은 학교에서 몰래 열리는 독서회의 멤버다. 학교에 반입이 허가되지 않은 책을 필사하고 읽으면서 자유의 희망을 부풀린다. 웨이중팅은 선배 여학생 팡루이신(왕정)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평범한 학생이기도 하다.
 
곧 모든 장면이 바뀌고 으스스한 교실의 책상에서 홀로 자고 있던 팡루이신이 눈을 뜬다. 저만치 지나가는 장 선생님을 발견하지만 대답이 없다. 그리고 사라진다.  그러다 만나게 되는 웨이중팅. "선배. 이 시간에 웬일이야." "깜빡 잠들었어." "나도. 깨니까 아무도 없더라." 그렇게 폐허처럼 변한 학교에서 하나씩 퍼즐을 맞춰나가는 둘.

독서회 사람들은? 교사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둘이 하나씩 기억할 때마다 엄혹한 시대를 뚫으려 했던 피해자와 힘의 논리로 모든 걸 무너뜨리는 가해자가 드러나며 비극적인 내용이 하나씩 벗겨진다. 역사 속 수많은 피해자들의 외침이 떠올라 나는 마음 한편이 조금씩 무너졌다.
 
 영화 <반교 : 디텐션>의 한 장면.

영화 <반교 : 디텐션>의 한 장면. ⓒ 찬란

  
이 작품을 보면서 최근 국내에 상륙했던 명랑하고 화사하고 예쁜 청춘들의 모습을 담아놓은 대만 영화를 잊었다. <반교 : 디텐션>은 포털사이트에 "비가 내리던 어두운 밤, 모두가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린~"으로 소개되는 시놉시스만으로 설명하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머릿속을 돌았던 질문. '아니, 이게 진짜 게임 소재란 말이야?'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도 독재 앞에서 투쟁하고 검열과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했던 '독서회의 멤버'들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솔직히 몰랐다. 우리와 멀지 않은 나라에도 이렇게 비슷한 암흑기와 아픔이 있을 것이라고. 이렇게 몰랐던 한 나라의 역사를 알게 됐다. 온라인 게임으로 시작한 <반교 : 디텐션>은 영화란 옷을 입고 훌륭한 역사물이 되었다.
 
영화를 보러 가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예상을 빗겨나갈 정도로 마음이 흔들렸을 때다. <반교 : 디텐션>는 그런 의미에서 인상 깊은 영화다. 게임이라는 말랑한 틀 안에 역사라는 두툼함을 끼워 만들어낸 뜨거운, 하지만 기억해야 하는 슬픈 완성품.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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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문화부 기자. 팩트만 틀리지 말자. kjlf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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