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 빨강 축구화를 신은 흰색 유니폼 나상호(성남 FC)

가운데 빨강 축구화를 신은 흰색 유니폼 나상호(성남 FC) ⓒ 심재철

 
11위까지 내려가 있던 성남 FC가 6위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이게 다 어웨이 팀들에게 유독 관대한 인천 유나이티드 FC 덕분입니다. 성남 FC는 9일 오후 7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2020 K리그 원 15라운드 어웨이 게임에서 2-0 완승을 거뒀습니다. 

성남 FC는 인천 유나이티드 덕분에 지난 5월 9일 광주 FC와 만난 시즌 첫 라운드 2-0 승리(양동현 2골) 이후 무려 14번째 게임만에 2골 차 승리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위 순위표에 있는 수원 블루윙즈보다 승점 9점이나 모자란 꼴찌 팀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임완섭 감독 사퇴 후 임중용 수석코치 대행 체제를 끝내기 위해 급하게 조성환 감독을 불러왔지만 새 감독 앞 첫 게임에서도 홈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뿐이었습니다. 

갈 길 바쁜 인천 유나이티드는 고비 앞에서 번번이 삐걱거리고 있어서 안팎으로 상처가 깊은 상황이지만 이번 시즌만 살펴도 묘하게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찾아오는 어웨이 팀들에게 뜻 깊은 승리는 물론 골들을 헌납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이토록 손님 대접을 잘 해내는 이유로 2012년 3월 11일 열린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개장 게임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K리그 다른 팀 팬들도 부러워할만한 아름다운 축구전용경기장을 만들고 치른 첫 게임에서 수원 블루윙즈에게 0-2로 패했기 때문입니다. 마침 그 두 골 득점 선수가 인천 유나이티드 FC 창단 첫 멤버인 라돈치치였다는 사실도 우연은 아닐 듯합니다.

이번 시즌 기록만 찾아봐도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그곳에 찾아와준 어웨이 팀들에게 얼마나 뜻 깊은 기록들을 선물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① 포항 스틸러스 '송민규'의 시즌 첫 골

인천 유나이티드는 지난 5월 31일 열린 포항 스틸러스와의 4라운드 홈 게임에서 1-4로 무너졌습니다. 이 게임 승리 팀 포항이 터뜨린 네 골엔 모두 다른 선수들의 이름이 적혔습니다. 

그 중에 2017년 인천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수비수 하창래의 시즌 첫 골도 있었지만 최근 핫 플레이어로 떠오른 공격형 미드필더 송민규의 멋진 시즌 첫 골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급 미드필더 팔로세비치의 기막힌 로빙 패스를 받아서 자신감 넘치는 발리슛을 꽂아 넣은 것입니다. 

송민규는 이 기세를 몰아 현재까지 6골을 터뜨리며 K리그 1 득점 랭킹 6위, 국내 선수만으로는 강상우(상주 상무, 7골)에 이어 2위에 올라 있습니다. 이 때부터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은 기회의 그라운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습니다.

② 부산 아이파크 '김문환' 시즌 첫 골

역시 인천 유나이티드는 지난 6월 21일 오랜만에 손님으로 찾아온 부산 아이파크에게 승점 3점을 내줬습니다. 그런데 유일한 득점 선수는 부산 아이파크가 자랑하는 골잡이 이정협도 아니고 부산 사람 다 된 미드필더 호물로도 아니었습니다.

79분에 오른발 중거리슛 벼락 골을 터뜨린 주인공은 바로 오른쪽 풀백 김문환이었던 것입니다.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김문환의 다재다능함을 가볍게 보고 그가 드리블하고 있는 앞 공간을 환하게 열어준 덕분이었습니다. 

부산 아이파크가 지난 시즌까지 2부리그(K리그 2)에 머물고 있었다는 것과 김문환의 개인 기록 중 2019 시즌 0득점 2도움 기록을 감안하면 매우 뜻 깊은 1부리그 첫 득점 기록을 인천 유나이티드가 만들어준 셈입니다.

③ 광주 FC '엄원상'의 첫 멀티 골 감격

8월 첫 날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찾아온 손님 팀은 역시 오랜만에 1부리그로 올라온 광주 FC였습니다. 그들과 함께 1부리그, 친정 팀 인천 유나이티드로 돌아온 미드필더 아길라르의 왼발 중거리슛 벼락 골 덕분에 시즌 처음으로 관중석에 앉을 수 있었던 1865명 홈팬들은 그 어느 때보다 큰 박수를 손바닥이 뜨거울 정도로 쳤습니다.

그러나 인천 팬들의 감격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후반전 중반 광주 FC의 빛나는 날개 공격수 엄원상에게 동점골을 얻어맞은 것입니다. 그의 드리블 속도가 엄청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인천 미드필더들은 그의 꼬리잡기조차 버거웠습니다. 

지난 시즌 광주 FC의 2부리그 우승에 일조하며 16게임 2득점에 그쳤던 엄원상은 86분 역습 과정에서 또 한 번 놀라운 스피드를 자랑하면서 역전 결승골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수줍은 미소였지만 프로 커리어 첫 멀티 골 감격은 엄원상 뿐만 아니라 박진섭 감독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끝난 뒤 인터뷰 책상 위에 눈물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하마터면 인천 유나이티드 FC와 나란히 꼴찌 다툼을 펼치는 신세가 될 뻔한 광주 FC였기에 엄원상의 멀티 골은 천군만마를 만난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인천 유나이티드가 큰 일을 해준 것입니다.
 
 전반전, 인천 유나이티드 미드필더 아길라르(맨 오른쪽)의 프리킥 세트 피스 순간

전반전, 인천 유나이티드 미드필더 아길라르(맨 오른쪽)의 프리킥 세트 피스 순간 ⓒ 심재철

 
④ 성남 FC '나상호' 다시 날다

8일 전 광주 FC의 3-1 대역전승 기운이 그대로 남아있는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 이번에는 성남 FC 선수들이 손님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들을 이끌고 온 김남일 감독이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중원을 지휘하던 시절이 떠올랐기에 1556명 인천 팬들은 남다른 감회에 젖기도 했습니다.

여기서도 인천 유나이티드의 손님 접대 수준은 최상급이었습니다. 전반전을 잘 버티기는 했지만 후반전에 자동문 수비를 실천해준 덕분이었습니다. 마침 그 주역이 2년만에 K리그로 돌아온 나상호였기에 성남 FC 팬들은 더 기뻤습니다. 

58분, 교체 선수 양동현이 영리하게 얻어낸 직접 프리킥 기회를 나상호가 오른발 감아차기로 기막히게 꽂아넣은 것입니다.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9.15미터 앞에 수비벽을 쌓았지만 자동문의 절반이 스르륵 열리듯 나상호의 오른발 끝을 떠난 공은 적당한 높이로 비행하다가 뚝 떨어져 인천 유나이티드 골문 오른쪽 기둥을 스치며 빨려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나상호는 87분 5초에 그림같은 오른발 감아차기로 쐐기골까지 성공시켰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인천 유나이티드 센터백으로 돌아온 김정호가 다리 사이를 막느라 중심을 낮추며 다리를 모았지만 나상호의 오른발은 김정호의 엉덩이 뒤를 정확히 노려 골키퍼 김동헌도 손을 쓸 수 없는 구석으로 날아가 꽂혔습니다.

2년 간 광주 FC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지난 해 J리그 FC 도쿄로 이적했던 나상호가 K리그 복귀 7게임만에 시원한 멀티 골로 성남 FC의 뜻 깊은 시즌 네 번째 승리 소식을 알린 것이기에  성남 선수들은 더 기뻤을 것입니다. 지난 5월 9일 광주 FC와의 첫 라운드 어웨이 게임에서 양동현의 멀티 골에 힘입어 2-0으로 이긴 뒤 딱 3개월만에 시즌 두 번째 2득점 승리 게임을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이번 시즌은 유독 손님 팀에 관대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다음 다음 17라운드(8월 22일) 그곳에 손님으로 올 팀은 2012년 숭의 아레나(인천축구전용경기장의 별명) 개장 첫 게임 승리 팀 수원 블루윙즈입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관대함을 다시 한 번 살필 기회입니다. '송민규 - 김문환 - 엄원상 - 나상호'에 이어 특별한 기록을 세울 주인공은 또 누구일까요?

2020 K리그 원 15라운드 결과(9일 오후 7시,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인천 유나이티드 FC 0-2 성남 FC [득점 : 나상호(58분), 나상호(87분)]

2020 K리그 원 15라운드 순위표
1 울산 현대 36점 11승 3무 1패 34득점 10실점 +24
2 전북 현대 35점 11승 2무 2패 25득점 9실점 +16
3 상주 상무 28점 8승 4무 3패 19득점 18실점 +1
4 포항 스틸러스 25점 7승 4무 4패 28득점 18실점 +10
5 대구 FC 25점 7승 4무 4패 26득점 18실점 +8
6 성남 17점 4승 5무 6패 12득점 16실점 -4
7 강원 FC 16점 4승 4무 7패 18득점 24실점 -6
8 FC 서울 16점 5승 1무 9패 14득점 30실점 -16
9 부산 아이파크 15점 3승 6무 6패 15득점 21실점 -6
10 광주 FC 15점 4승 3무 8패 14득점 21실점 -7
11 수원 블루윙즈 14점 3승 5무 7패 13득점 17실점 -4
12 인천 유나이티드 FC 5점 5무 10패 8득점 24실점 -16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인천 유나이티드 FC K리그 나상호 엄원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