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등장인물 은정(전여빈 분)은 "사는게 그런건가? 좋았던 기억을 약간 가지고 힘들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버티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마 나에게 '좋은 기억'의 상당 부분은 좋은 공연일 것이다. 한정된 시간 동안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듯한 효과를 누릴 수도 있거니와, 아티스트와 관객이 연결되는 과정이 주는 쾌감도 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19는 많은 이들의 즐거움을 앗아갔다. 그래서 음악팬들 사이에서는 '세상에서 공연이 사라져버리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그저 과거의 즐거운 경험을 꺼내어 보면서 대리 만족을 할 뿐이다.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내한 공연은 10년 전 여름, 스티비 원더의 콘서트였다. 당시 현대카드는 첫 내한공연은 2010년 여름, 스티비 원더 콘서트였다. 2007년부터 현대카드는 '슈퍼 콘서트'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들의 이미지를 세련되게 하는 데에 몰두하고 있었다. 2010년은 그 절정이었다. 록밴드 그린데이, 故 휘트니 휴스턴, 안드레아 보첼리, 어셔 등이 연이어 섭외된 것이다. 그리고 스티비 원더의 내한 공연이 확정되었을 때, 이런 문구가 광고에 새겨졌던 것을 기억한다.

"그의 노래는 영원하다. 하지만, 그를 직접 볼 기회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마케팅의 힘은 실로 막강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시험을 잘 볼 테니 티켓을 사 달라. 이번에 못 보면 죽을 때까지 못 볼지도 모른다"며 티켓값을 지원받아야 할 명분을 강조했다. 다행히도, 나는 스티비 원더를 만날 수 있었다. 공연 당일은 비가 꽤 많이 내렸다. 악천후 때문에 공연 시작이 늦어졌고, 관객들의 볼멘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마냥 설레는 마음뿐이었다. 지금은 더 큰 공연장도 여럿 경험해보았지만, 그날의 올림픽 체조경기장만큼 웅장하게 느껴졌던 곳은 없다.
 
관객들의 환호성이 둘러싼 채, 공연장이 암전되었다. 밴드의 연주가 울려 퍼졌고 조명이 공연장 구석으로 집중되었다. 그 곳에는 스티비 원더가 있었다. 그는 기타처럼 생긴 리모트 키보드를 들고 'My Eyes Don't Cry'를 연주하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익살스럽게 웃는 모습은 내가 알던 모습 그대로였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스티비 원더는 'Lately'와 'Isn't She Lovely', 한국인의 월요병을 상징하는 'Part Time Lover', 'Superstition' 등 히트곡들을 이어갔다. 한국에서는 보컬로서의 면모가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모습 역시 즐거움을 주었다. 선곡의 폭도 넓었다. 'The Way You Make Me Feel'을 부르며 친구 마이클 잭슨을 추모하다가 울먹거릴 때는 가슴이 미어졌다. 공연 당시 최신곡이었던 제이지(JAY-Z)의 'Empire State Of Mind(2009)'를 커버하면서 호응을 유도하기도 했다. 마지막 순서는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Another Star'를 협연하는 것으로 이뤄졌다. 스티비 원더는 즉석에서 한국어 가사를 추가해 부르기도 했다. 단연 이날 최고의 장면이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여러 음역대를 자유롭게 오가는 대가의 목소리는 생물학적인 나이를 잊게 했다. 즉석에서 펑키한 그루브를 쌓아가는 밴드의 활약 역시 신기할 뿐이었다. 10년이 지났지만, 'Master Blaster(Jammin')나 'Another Star'를 들으면 '새로움'에 대한 설렘이 소환된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 속 대사처럼, 이와 같은 기억들이 모여 평범한 오늘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당시 환갑이었던 스티비 원더도 칠순 노인이 되었다. 모든 것이 신기했던 고등학생도 대학 졸업과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20대 후반의 청년이 되었다. 그렇게 많은 성찰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스티비 원더의 건강 악화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곤 한다. 그럼에도 스티비 원더는 건재하다. 10년 전 내한 공연에서 세계 평화에 대한 소망을 멘트에 실어 보냈던 그는, 여전히 사랑과 평화를 노래한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빠진 상황이다. 이때 스티비 원더는 자신이 해야 할 몫을 생각했다. 카메라 앞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방구석 라이브'에 참여한 것이다. 그는 올해 타계한 빌 위더스의 'Lean On Me', 그리고 자신의 명곡 'Love's In Need Of Love Today'를 불렀다. 흑인 뮤지션의 한 사람으로서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삶도 중요하다)' 운동에 강력한 연대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행동이 결여된 운동'은 공허하다고 말하고 있다. 나이의 앞자리 숫자는 바뀌었지만, 스티비 원더는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 모습이 위안으로 다가왔던 것은 왜일까. 나의 스티비, 그가 지금처럼 영원하기를 바란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여덟.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