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인생은 후반전'이 나오자 배우 박원숙이 가수 혜은이에게 말을 건넨다.

"네 노래네."
 
인생 후반전을 보내고 있는 여성 연예인 네 명이 한 집에 모여 살며 뜻밖의 웃음을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KBS 2TV 예능 프로그램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이다. 평균 연령 66세라는 출연자들을 나이순으로 도열해보면, 박원숙, 동갑인 문숙과 혜은이 그리고 가장 어린 김영란, 이렇게 네 명이다.

면면을 보자면 한때 화려한 전성기를 누린 배우와 가수들인데, 전성기를 지나서도 꾸준한 활동으로 시청자에게 친숙한 인물들이다. 오랜 해외 생활을 끝낸 후 복귀한 문숙은 다소 예외지만 그녀는 특이한 외모, 무엇보다 금발 같은 백발을 하고 나타나, 좋은 연기는 물론이고 '요가와 영성'이라는 화두를 들고 인상적으로 컴백했다.

마당발 박원숙과의 인연을 고리로 이들의 동거가 시작되는데, 한 집에서 같이 자고 일어나 삼시 세끼를 해먹으며 사는 얘기들을 알콩달콩 풀어내고 있다. 산전수전 겪은 연륜에 묻어나는 이들의 달관은 시청자에게 문득 느닷없는 죽비를 날리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이 프로그램의 '최종 병기'인 듯하다.
 
귀여운 허당 살림꾼들

  
 KBS 2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의 한 장면

KBS 2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의 한 장면 ⓒ KBS

 
시청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폭죽 같은 웃음을 터트리게 되는데, 주부 백단은 되고도 남을 노년의 여인들이 알고보니 '허당 살림꾼'이었다는 반전이 발각될 때다. 칠순을 바라보거나 넘은 여인들이라면 응당 음식 정도야 "껌이지" 하며 척척 해내리라 기대되지만, 이들의 세계에 당연함이란 없다.

살림이란, 대체로 하다 보면 늘게 마련이긴 하지만, 정말 자신의 성향과 안 맞아 고역인 사람도 있고, 나름 열심히 애쓰지만 뭘 해도 제대로 안 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지인 중엔 손재주가 놀라운 사람이 있는데, 뭐든 만지작거리면 근사한 뭔가를 잘도 만들어내면서, "나는 다 잘하는 데 살림만 못해"라며 살림의 지난함을 푸념하기도 한다.
 
여성들은 결혼하면 으레 살림꾼으로 변신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기대를 한몸에 받게 마련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살림 능력은 여성 누구에게나 탑재된 소프트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업주부도 아니고 줄곧 정신없는 스케줄을 소화해내야 하는 직업 연예인이고 보면, 나름 집중하고 어느 정도 연륜이 쌓여야 척척 돌아가게 만드는 가사노동 시스템을 구축하기란 실상 불가능하다.
 
어린애를 업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청소하고 요리하느라 땀을 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얘기다. 육아와 가사노동이라는 멀티 노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간 배치는 물론이고 동선까지 효율적으로 고려해 수행해야만, 예상한 시간 안에 겨우 끝낼 수 있다. '살림을 척척 한다'고 쉽게들 말하지만, 이 '척척'이 되기까지 들인 시간과 공에 대한 이야기는 줄곧 하찮은 '가사노동 일화'로 묻혀버리곤 해, 살림이란 누구나 잘할 수 있는 별거 아닌 무엇쯤으로 오랫동안 여겨져 오지 않았는가.
 
일을 하며 당연히 '척척 살림꾼'이 될 수 없었던 네 명의 연예인들에게 살림이란 쉽게 해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저 정도 경력에 저 정도 나이의 남성이라면, 사실 살림을 못한다고 얘깃거리나 웃음거리가 되지도 않는다. 평생을 바깥일 하느라 고생했는데 무슨 가사를 돌볼 틈이 있겠냐며, 남성은 그 책임에서 자연스럽게 면제를 받는다. <같이 삽시다>의 네 명 역시 평생 바깥일을 하며 가족을 먹여 살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 또한 잘 해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기대가 자연스러운 양 생성됐을 것이다.
 
 KBS 2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의 한 장면

KBS 2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의 한 장면 ⓒ KBS

 
게다가 이제 할머니라는 호칭까지 어색하지 않은 나이고 보면, 파란만장을 경유한 고수급의 능란함을 과시할 거라 터무니없는 예상을 받지 않겠는가? 바로 여기에 <같이 삽시다>의 묘미가 있다. 이 다분히 무능한 살림꾼들이 벌이는 '살림 놀이'는 '척척'을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시청자의 고정 관념(여성-노인-살림고수)을 우습게 무너뜨리는 동시에, 여성은 천생 살림꾼이라는 무도한 전제 또한 가볍게 배격하는 것이다.
 
이들은 살림 능력이 부재함을 부정하지 않기에 서로의 부족을 타박하지 않으면서 깜냥껏 밥상을 차려내고 알아서 할 일을 찾아내 수행한다. 삶의 신고에서 겨우 한 걸음 빠져나와 안도의 깊은숨을 나누는 휴가 같은 이들의 일상에서, 말로는 다 전하지 못하는 '참 애썼다'의 토닥이는 연대가 애틋하다. 타인이 주는 이 위로를 가족에게서 받아본 적이 있을까? 우리가 유구히 믿어온 가족의 의미란 실상 허상일지 모른다.
 
이들은 전성기 시절 연예인으로 인기를 구가하면서도 정상성이란 허상에 사로잡혀 사회와 약속이나 한 듯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 지정된 여성의 삶에 위배되는 것을 스스로 허할 줄 몰라 "얼른 빈 것을 채워놓"기 바빴고 "남한테 피해 안 주려 위험하게 살았"다. 그렇게 애쓰며 가족을 돌보며 살았지만 채무에서 헤어날 수 없었고, 그 빚을 갚느라 평생을 '김밥인생'으로 살았다는 혜은이에게, 역시 평생 남편 빚을 변제하느라 뼈 빠지게 살아온 박원숙이야말로, 혜은이의 새 출발에 누구보다 격려를 아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노래하러 전국 곳곳을 누비느라 김밥으로 위와 영혼의 허기를 채웠을 그녀에게, 제대로 된 따뜻한 밥상으로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은 비단 이들 친구들만은 아닐 것이다.
  
 KBS 2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의 한 장면

KBS 2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의 한 장면 ⓒ KBS

 
이혼이라는 삶의 큰 전환 후, 혜은이가 선보인 콘서트에서 발하는 이들의 우정은 더욱 값지다. 비록 실패했지만 콘서트장을 찾은 팬들에게 떡을 선물하기 위해 온 정성을 쏟는 박원숙의 마음은 따뜻하다. <같이 삽시다>로 처음 만나 선뜻 동갑내기 친구가 된 혜은이와 문숙의 우정 또한 믿음직스럽다. 문숙의 춤 솜씨에 반한 혜은이가 자신의 콘서트에 출연해줄 것을 요청하자 문숙은 흔쾌히 허락한다. 김영란은 평소 음치라 생각하며 노래에 주눅 들었지만, 혜은이의 지도로 노래 연습을 하고 콘서트 무대에 혜은이와 함께 선다.

문숙과 김영란의 무대 출연은 친구 혜은이가 펼칠 '인생 후반전'에 대한 뜨거운 응원인 동시에, 60이 넘어 처음 무대에 서보는 도전이기도 하다. 혜은이의 콘서트는 '여성끼리'라는 연대와 도전의 장을 훌륭히 수행하며, 여성주의자임을 자각하고 선언한 적이 없는 여성들이 여성주의의 장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올 수 있음을 실현한 의미심장한 현장이다.
 
여성이, 그것도 나이 든 여성이,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실현해낸 여성주의는 선선하고 그래서 흥겹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깨달음이 문득, 여성주의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감지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가부장의 그늘이 싹 가신 것은 아니지만, 이를 몽매함으로 쉽게 부를 수는 없다. 이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쉴 새 없이 일하며 삶과 가족을 책임져왔다. 무엇보다, 인생 후반전을 시름과 한숨 대신 '혼자지만, 다시 한번'이라는 파이팅으로 일어설 수 있는 이 자질은 분명 가부장의 노예의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원숙의 후덕함은 MBC 드라마 <한지붕 세 가족>에서 아들 순돌 역을 했던 건주를 맞는 데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어려서 연기 생활을 시작한 건주는 빡빡한 촬영 일정에 늘 피곤했을 것이다. 이제야 미성년 연기자에 대한 인권 존중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삼십 년도 전에 인기몰이로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던 어린아이가 얼마나 고단한 생활을 해야 했을지는 명약관화다. 그런 건주를 촬영장에서 쪽잠이라도 재우려 했던 박원숙에게서, 그리고 어른이 된 후 뭐를 해도 풀리지 않는 인생에 좌절한 건주에게 성공을 좇기보다 "좋은 사람이 돼"라고 조언하는 박원숙에게서, 건주뿐 아니라 시청자 역시, 시린 어깨에 담요를 둘러주는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독거노인'이 불행한 노년의 표상이 된 현실
 
 KBS 2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의 한 장면

KBS 2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의 한 장면 ⓒ KBS

 
몇 해 전 책 <마흔 이후, 누구와 살 것인가>를 읽은 적이 있다. 공동체 생활에 대한 관심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가족이 아닌 타인인 여성끼리 살아가는 미지의 삶에 대해 호기심이 크게 작용했던 때문이다. 혼자서는 부담스러운 주택 구입 비용을 친구 셋이 의기투합해 공동으로 마련했다는 것에 먼저 놀라웠다. 신뢰가 기반 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선택이었을 것이다. 전혀 다른 성향과 취향의 사람들이 한 집에서 살아가는 일이 어디 그리 쉽겠는가. 하지만 갈등이 불거질 때 이를 회피하지 않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새로운 생활 규칙을 하나씩 정립해가는 그들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경제적으로 윤택하다고 해서 삶의 위기를 모두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가족이 있다고 해서 불변의 안전망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으로 승인된 가족이라는 안전망에서 기꺼이 빠져나와 나를 보다 잘 수용해줄 타인과 한 집에서 살아가는 일은 그 자체로 대안적이고 정치적이다. 게다가 여성끼리의 동거란, 공고한 가족주의와 남성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을 보다 결속시켜나갈 연대의 서사를 이미 견인해내고 있다.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처럼 한국에도 가족이 아닌 타인인 여성끼리 한 집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례가 이미 제시되고 있지 않은가. <같이 삽시다> 여성 노인 넷이 펼치는 공동생활은 이런 면에서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독거노인'이란 그 호칭만으로도 매우 차별적이다. 혼자 사는 젊은이나 중년을 '독거청년', '독거중년'으로 호명하지는 않는다. 오직 노인만이 '독거노인'이라는 가난하고 불쌍한 표상으로 호명된다. 독거 여성 노인은 더 혹독하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서 노인끼리, 그것도 노인 여성끼리의 동거는, 비록 한시적인 퍼포먼스이지만, 그 효과는 거기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노인 여성끼리의 삶도 이렇게 재미있고 흥분될 수 있다는 가능성, 그 상상력의 제공으로 다른 삶으로의 실험이나 도전 또한 시도되지 말란 법 없지 않은가.

오래 전 대안적 삶을 꿈꾸던 한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늙으면 꼭 가족하고 살아야 하나?" 그럴 이유 없음이라는 신호를 <같이 삽시다>의 네 여성이 지금 보내고 있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윤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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