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연출한 홍원찬 감독.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연출한 홍원찬 감독. ⓒ CJ 엔터테인먼트

 
감독도 원했고, 배우들도 원했던 조합이다. 한국 누아르 영화 역사에 남을 <신세계> 이후 7년 만에 배우 황정민과 이정재가 이 영화로 다시 만났고, 지난 5일 개봉해 관객과 소통을 시작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제목에서 언뜻 느낄 수 있듯 영화는 악인들의 이야기다. 황정민이 살인청부업자면서 딸을 구하려는 남자 인남 역을 이정재가 인남과 그의 주변 인물을 제거하려는 재일교포 범죄자 레이 역을 맡았다. 영화는 두 인물을 추격 구도로 놓고 두 사람을 돕거나 방해하는 주변 인물을 배치해 사건을 전개한다.

"10년 가까이 품던 이야기"

전작 <오피스>(2014)로 상업영화 감독에 데뷔한 홍원찬 감독은 <추격자> <황해> <내가 살인범이다> 각색 경력에서 알 수 있듯 영화적 긴장감, 특히 추격 스릴러에 장기가 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이야기 구조보단 캐릭터 조합에서 오는 긴장감을 동력으로 삼는다.

"이 이야기를 생각한 건 꽤 오래전이다. <작전>과 <황해> 각색 사이쯤이니 10년 가까이 됐을 것이다. 지금의 제작사 대표님이 외국에 나가 아이를 찾는 남자 이야기를 해보자고 말했었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장소를 방콕으로 정해서 답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 중일 때 <아저씨>가 개봉하더라. 다 써놓고 좀 묵힐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 <오피스>로 데뷔하게 됐는데 이 영화 역시 제가 시나리오를 쓴 만큼 연출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아 다시 각색했다."

제작이 결정된 게 2019년 초, 작업은 순조롭고 빠르게 진행됐다. 황정민-이정재 캐스팅을 제작사에서 제안했고, 시나리오를 받은 두 배우는 흔쾌히 응했다. 이후는 오롯이 감독의 몫이었다. 홍원찬 감독은 캐릭터 구상의 시작을 언급했다.

"시작은 인남부터였다. 그 캐릭터부터 만들어 갔다. 아이를 구하려는 남자를 누가 추격한다면 좀 더 서스펜스가 강화될 것 같았다. 이게 구출의 플롯을 따라가는 거잖나. 각색하면서는 유이(박정민) 캐릭터를 발전시켰다. 처음엔 분량이 많지 않았는데 이야기의 끝까지 끌고 가야겠다고 판단했다. (트렌스젠더를 꿈꾸는 캐릭터인 만큼) 여성스러운 배우를 섭외할까 싶었는데 <오피스> 때 같이 한 박정민 배우에게 먼저 시나리오를 드리고 싶었다. 남성적 이미지가 있는 배운데 유이를 했을 때 뭔가 충돌이 나면서도 재밌을 것 같았다.

캐릭터 이름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갖고 있었다. 레이라는 이름은 일본에선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붙일 수 이름이라 생각했다. 알 수 없는 모호함이 필요했다. 그가 인남을 끝까지 쫓는 동기를 영화가 전달해주지 않으니까 그런 분위기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았다. 유이도 마찬가지다. 태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에 돌아갈 기약이 없는, 거기에 주저앉아 버린 사람을 그리고 싶었다. 한 일본 스태프가 인남의 이름을 묻더라. 혹시 참을 '인' 아니냐며. 그런 의도도 있었다. 고뇌하는 남자의 이미지지. 세 캐릭터 모두 우리가 일상에서 보기 힘든 인물이라 이름의 어감에 신경을 썼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컷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시대성과 영화적 상상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최초 제목이 '모래요정'이었다는 건 흥미로운 사실이다. 인남의 딸 유민이 '모래요정 바람돌이'라는 만화를 보면서 등장한다는 이유였다. 그만큼 이야기에서 아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홍원찬 감독은 "최종본에선 수정이 됐지만 이 영화를 찍으면서 아이를 놓지 말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생각했다"며 "아이를 도구적으로 표현하지 않도록 엄청 노력했다"고 말했다.

"아이 배우 이름이 박소이인데 어머님이 항상 같이 다니셨다. 현장에 아동 심리 치료사분을 두면 어떨지 여쭤봤는데 직접 본인이 챙기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영화에선 엄청 고생하는데 소이가 매우 활달하고 밝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아역 배우 연기는 울거나 애교를 부리는 등 1차원적일 때가 많은데 소이는 내면 연기까지 가능하더라. 방콕에서도 어머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현장에선 (유민 엄마 역) 최희서 배우가 소이를 많이 챙겨줬다. 한국에서부터 같이 밥도 먹고 했더라. 소이를 캐스팅 한 걸 두고 스태프들이 신의 한 수라고 하는데 전 희서 배우를 택한 것도 신의 한 수라 생각한다. 현장과 사석에서의 모습이 같은 정말 좋은 배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종 등장하는 '위기에 빠진 공주 구하기', 그리고 '악인의 속죄 의식과 자기 구원' 모티브는 곧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주요 뼈대기도 했다. 이는 홍원찬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는 주요한 방법 중 하나다. "이야기의 원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가 작업 방식을 풀었다.

"집을 떠난 영웅 이야기라든지 공주 구하는 이야기라든지 그런 원형은 끊임 없이 소설과 영화에서 변주되고 있다. 그걸 신경 쓰는 것 같다. <글레디에이터> <매드 맥스> 등도 결국 하나로 귀속되는 원형이라는 게 있거든. 우리나라 <홍길동전>을 보면 <글레디에이터>와 매우 흡사한 구조기도 하다.

그간 제가 해온 게 스릴러 액션이 많은데 딱 그런 장르만 한다고 규정하기 보단 긴장감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라는 매체가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누아르라면 그 장르가 갖는 고유 정서가 있잖나. 그런 걸 좋아한다. 이번 영화엔 제가 영화를 공부하며 열광했던 특정 영화들의 정서를 같이 담아 보려고 했던 것 같다. 프랑스 누아르, 미국 누아르 영화 같은. 호흡 자체는 지금이 과거보다 상당히 빨라졌는데 캐릭터의 원형만큼은 지금까지도 제게 영향을 주고 있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연출한 홍원찬 감독.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연출한 홍원찬 감독. ⓒ CJ 엔터테인먼트

 
홍원찬 감독은 장르와 시대성을 함께 생각하며 "이야기를 통해 어떤 것을 보일까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의 단편 <골목의 끝>과 장편 데뷔작 <오피스>를 살펴보자. 군대 시스템 문제를 짚은 게 <골목의 끝>이었고, 호러 스릴러라는 장르에 여성 직장인이라는 시대성을 담으려 한 게 <오피스>였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좀 더 특정 장르 영화가 줄 수 있는 재미와 매력에 집중한 결과물이었다고 그는 전했다. 

"계속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영화는 사회적 메시지 전달이 목표일 수 있고, 어떤 건 영화적 성취를 노릴 수도 있다. 어떤 하나를 딱 규정해서 '시대성을 담는 영화만 할 거야'라고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제 안에 뭔가가 걸리면 그걸 표현하려 하는 것 같다. 직접 비교하는 건 무리겠지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스스로 영향받은 영화들 오마주를 많이 하잖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제가 한 번쯤 담아내고 싶은 것들을 담은 결과다.

근데 이건 남자 캐릭터, 남성 주도의 서사잖나. 사실 (<오피스>처럼)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꼭 다시 해보고 싶다. 바로 다음 작품은 아니겠지만 이후엔 여성 서사를 써볼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도 고민이 많았다. 누아르 장르가 관습적으로 남성 서사만 다뤄온 면이 있기 때문이다. 차기작은 아마 액션 사극이 될 것 같은데 그 다음으로 여성이 중심인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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