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을 연출한 양우석 감독.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을 연출한 양우석 감독. ⓒ 롯데엔터테인먼트

 
남한과 북한,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소재로 이야기를 해온 지 10년이 넘어간다. 웹툰 <스틸레인>이 2011년, 그리고 영화 <강철비>와 <강철비2: 정상회담>(아래 <강철비>)에 담아온 우리와 미국, 중국, 일본의 모습을 두고 양우석 감독은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치열하게 고민한 시뮬레이션"이라고 설명한다.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누군가는 민감하게 받아들일 법한 북한 사회와 북핵 문제, 그리고 북미 평화협정을 뚝심으로 밀고 간 이유가 대체 뭘까. 연출 데뷔작 <변호인>으로 천만 관객의 선택을 받았기에 좀 더 편한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양 감독은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영화로는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답한다. 

<강철비2>는 한반도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생리를 세밀하게 담고 있다. 핵무장 해제를 빌미로 치열하게 수 싸움을 하는 각 나라의 모습은 동시에 어느 것도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지만 양우석 감독은 그 안에서 일종의 희망 혹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생각을 더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기다림의 힘, 그리고 의도했던 풍자

이른바 '스틸레인 유니버스', 그가 선보여온 작품세계를 언론에서 표현하는 단어다. 그 시작은 1993년 북핵 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미연합군사훈련 재개에 반발한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며 일련의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양우석 감독은 20대였다. 그는 "사실상 전쟁이 날 뻔했다, 대부분 잘 모르고 넘어갔지만 내겐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며 "한반도 전쟁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실감한 때"라고 운을 뗐다.
 
콘텐츠 생산자로서 그 트라우마를 면밀하게 공부하고 작품으로 내세운 결과물이 지금의 웹툰과 영화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특히 <강철비>와 <강철비2>는 정우성, 곽도원 등 주요 배우들을 그대로 캐스팅하면서 서로 다른 역할을 맡겼다는 점도 특징이다. 1편에서 북한 장교였던 정우성이 이번엔 남한 대통령으로, 1편에서 남한 외교안보수석이던 곽도원은 2편에선 북한 호위총국장으로 분했다. 

"전작 출연 배우에게 다른 역할 맡긴다는 것은 분명 부담이면서 도전이었다. 분단 자체를 우리가 원해서 한 게 아니기에 이건 마치 문제를 낸 사람이 없으니 채점을 못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남과 북이 바뀐다고 한들 우리끼린 (이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전작에 나온 배우들이 대부분 속편에도 출연하셨는데 자세히 보시면 중국, 미국 쪽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은 1편과 똑같다. 그것 역시 상징적이다.

여기에 더해 젠더 이슈를 나름 고려하려 했다. 여성 총리로 김용림 선생님을 모신 것도 그렇고, 대통령 한경제의 영부인으로 염정아님을 모신 이유도 그렇다. 이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전면으로 나올 수 없는 구조였는데 강단 있는 여성 총리, 그리고 대통령을 보완하는 영부인의 꼿꼿하고 고고한 모습을 담고 싶었다."


실제 자료를 바탕으로 구성했고, 우리의 현실을 담고 있기에 관객에 따라선 한국, 북한, 미국 등의 지도자나 주변 캐릭터에서 실제 인물을 떠올릴 수도 있다. 특히 할리우드 배우 앵거스 맥페이든이 맡은 스무트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특징을 따왔다. 이 지점에선 배우의 해석이 중요했음을 양 감독은 강조했다.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 장면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세 정상이 납치된다는 건 영화적 상상이지만, 배우들이 각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선 다들 현실에서 일부 가져올 근거가 필요했을 것이다. 북한 위원장 역의 유연석씨도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 이미지를 차용했고, 한경재 대통령처럼 현재 대통령 또한 지금의 남북관계를 끌어오기까지 한경재 못지않게 고민했을 거라고 본다.

사실 가장 극적이고 화끈하게 보일 수 있는 상황이 결국 전쟁터의 수장인데, 알고 보면 싸우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다. 이순신 장군이 7년간 21전 21승의 기록을 갖고 있는데, 누군가는 그것밖에 안 싸웠냐 너무 무기력한 것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사실 이순신 장군은 이길 수 있을 때를 기다려서 싸운 거다. 한경재 역시 무기력해 보이지만 계속 기다리고 인내한다. 병사들이야 몸이 달아올라 싸우자고 하겠지만 참고, 참고, 참다가 싸워서 이겨야 한다. 그래서 전 그가 나약하고 무기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진정한 강함이 아닌가 생각한다.

앵거스에겐 제가 스무트의 이름부터 설명했다. 영화에서 북미협정 사인할 때 윌리스 채프먼 스무트라고 하잖나. 윌리스 채프먼은 홀리라는 하원 의원의 이름이고 스무트는 리드라는 상원의원의 성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보호주의 무역 입법을 낸 상하원의원의 법이 바로 스무트 홀리법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대표하는 법안이라 생각한다. 이 설명을 듣고 (앵거스가) 직접 서명 캘리그래피를 만들어오기도 했다.


<강철비2>에서 가장 큰 모험이 정치스릴러와 블랙코미디를 섞는 거였는데, 블랙코미디가 성립하려면 가장 강한 자를 풍자해야 했다. 그걸 앵거스가 명확하게 인지하고 나름 준비해온 거다. 생각보다 좀 과장되게 준비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Fuck'이라며 욕하는 것도 제가 시킨 게 아니다(웃음)." 
 
 <강철비 1> 스틸컷

<강철비 1> 스틸컷 ⓒ (주)NEW

 
주관적 개입 아닌 객관적 시각

지금 대한민국 현실에서 지도자에겐 어떤 덕목이 필요한지 물었다. "매우 간단하다"라며 양우석 감독은 "영민함"이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국력이 약한 건 아닌데 하필 강대국 주변에 둘러싸여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반도 긴장 관계가 그들에겐 이익이다. 일본은 한국전쟁 아니었으면 지금 농경 국가에 머물렀을 것이다. 미국의 무기를 우리가 세계 2, 3위 규모로 사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게 우리에겐 이득인가.

짐 로저스라는 저명한 투자자는 한반도가 평화체제만 잘 구축해도 놀라운 경제 성장을 할 거라 내다본다. 무엇이 이득인지 확실한데 그걸 우리 뜻대로 이끌지 못하는 게 아쉽다. 그럼 어떻게 관철해야 할까. 시뮬레이션하고 상상하다가 기회가 오면 바로 잡아야 한다. 과거 한미 미사일협정 때 사정거리와 탄두 무게를 미국 마음대로 제시했잖나. 그러다 미중 갈등이 지속되니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풀어줬다. 영리하고 기민하다는 걸 영민하다고 하잖나. 그런 게 필요할 것 같다."


양우석 감독은 <강철비2>를 준비하며 주관 개입을 철저히 피했음을 강조했다. 알려진대로 그는 각종 연구 자료, 기밀문서, 외신 등을 바탕으로 이번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저도 이 시뮬레이션을 공부하면서 부끄러웠다. 우리보다 해외의 상상력이 풍부하고 시뮬레이션도 많더라. 남한의 핵무장을 열성적으로 바라는 미국 극우 싱크탱크가 있다. 한국이 핵을 갖게 되면 대만과 홍콩도 가지려 할 것이고 일본도 가지려 할 테니, 결과적으로 중국을 포위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렇게 되면 하나의 중국은 물 건너간다. 태평양으로 진출도 못할 테고. 작년에 트럼프가 한국도 핵 무장할 수 있다고 발언한 이후 중국이 깨갱한 것도 그 맥락이다.

오히려 한국이 가장 상상력이 제약된 상태가 아닌가 싶다. 계속 매를 맞는 짐승은 주인이 오기만 해도 움찔하잖나. 그런 차원인 건지 아님 우리나라 정치가 정파적 이익이 아닌 그저 자기 기호에 따라 움직여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만큼 국가적인 손실은 없지 않나 싶다."


따지고 보면 그가 웹툰 <스틸레인>을 시작했던 때부터 지금까지 서로 상반된 평가를 받아왔다. 2011년 무렵엔 그의 작품을 본 일부 누리꾼이 극우라고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고, 이후엔 좌파라 비난받기도 했다. 양우석 감독은 "제가 되게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데 전혀 그런 건 아니다"라며 말을 이었다. 

"남북문제, 국가이익 문제는 극우나 좌파와 상관없이 생각해야 한다. <강철비1> 주인공이 외교안보수석인데 그는 국가이익을 생각해 핵을 가지려 한다. 인도와 중국이 서로 핵을 가지고 있기에 총질하지 않고 몽둥이로 서로 때리잖나. 우린 혹시 국가이익을 정치적 기호에 따라 보는 건 아닐까. 병자호란도 결국 정치적 기호 때문에 벌어진 거다. 국가이익이 아닌 정치적 당파, 기호에 따라 움직이다가 비극을 겪어왔다. 이게 바로 패거리 정치가 아닌가."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을 연출한 양우석 감독.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을 연출한 양우석 감독. ⓒ 롯데엔터테인먼트

 
<강철비3>의 가능성

그리고 마지막 질문. <강철비2> 말미에 한경재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직접 던지는 질문과 같다. 남북관계에 있어서 통일은 곧 하나의 종착지이자 시작일 수 있다. 10년 넘게 관련 이야기를 파헤친 만큼 이 질문을 감독에게 돌려줄 필요가 있었다. "사실 통일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똑같다"고 그가 말했다.

"통일에 찬성해도 당장에 할 수는 없고 2세대 이상 가야 한다. 헌법도 고쳐야 하고. 헌법상 북한은 미수복지역, 우린 내전 상태니까. 유엔은 이미 국가 대 국가로 개입했고, 해외에서도 북한을 나라로 인정하는데 우린 '적성국'이 아닌 '주적'이라 한다. 차라리 사이좋은 외국이 되는 게 먼저 아닐까. 그리고 통일을 논할 수 있겠다. 중국과 일본처럼 북한도 외국으로 인정하는 거다.

그래서 마지막 그 장면은 감정적으로 통일을 해야 한다 강요하는 게 아니다. 예스든 노든 사실 평화체제로 가야하는 게 맞지 않는지 묻는 거다. 북미 수교가 한반도 평화체제로 갈 수 있는 첫 단추라고 얘기하는 거다. 중국은 대만이 미국과 수교하면 죽인다고 난리를 치지 않나. 근데 우린 거꾸로 북한에게 미국과 수교하라고 한다. 이미 우린 하나의 한국을 추구하고 있지 않다. 두 개의 한국을 추구하는 것이지. 

아이러니하지만 북한을 외국으로 인정하고 관계설정을 다시 하자는 거다. 그리고 얘기해야지. 계속 싸울 것인가, 사이좋게 지낼 것인가. 어느 나라 대통령이 자기네 우방국과 수교하라고 적성국에게 부탁하겠나. 그 얘긴 곧 지금 당장 통일은 안 하겠다는 뜻이다. 제가 볼 땐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미 국민들은 다 아는 것 같다. 당장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께 말하고 싶다. 통일의 시작은 분단부터 인정하는 것이라고."  


양우석 감독은 이 주장과 함께 독일 통일 과정을 언급했다. 미국 달러화 약세를 빌미로 플라자 합의에 들어가며 사실상 동독과 서독 통일의 기회를 잡았다는 내용이다. 그의 '스틸레인 유니버스'가 그냥 나온 게 아님을 드러내는 지점 아닐까. 그는 "솔직히 1편과 2편 모두 자기검열에 걸렸다"며 "속편을 한다면 해외가 아닌 우리나라 싱크탱크의 의견으로, 우리의 상상력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고백했다.

"연출 데뷔작인 <변호인>이 천만을 넘으며 제겐 일종의 족쇄가 되기도 했다. 뒤늦게나마 연출자라는 새 직업을 얻었기에 영화로는 세상에 필요한 얘길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큰 관심과 호응을 갚아나간다는 건 좀 어폐가 있겠지만, 그런 이야길 하는 게 영화인으로서 제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얘긴 웹툰으로, 해야 할 이야긴 영화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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