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재업로드 된 <스톡킹>의 한 장면

지난 1일 재업로드 된 <스톡킹>의 한 장면 ⓒ MBC스포츠플러스

 
프로농구 선수 이종현(울산 현대모비스)은 최근 한 유튜브 스포츠 채널에서 뜻하지 않은 설화에 휩싸인 바 있다. MBC스포츠플러스에서 운영하는 디지털콘텐츠 '스톡킹'에서 동료 선수인 이대성(고양 오리온)-최준용(서울 SK)과 함께 방송 중반에 깜짝 게스트로 등장한 이종현은 과거 신인드래프트 당시 현 소속팀인 모비스에 지명된 것이 싫었다는 듯한 뉘앙스로 농담을 했고, 이것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종현은 방송에서 "오렌지캬라멜(걸그룹)을 좋아했는데 그때(신인드래프트)부터 싫어졌다"라고 발언했다. 신인드래프트 당시 오렌지캬라멜의 멤버인 리지가 추첨자로 나서면서 모비스에게 1순위 지명권이 돌아갔고, 모비스는 최대어로 꼽혔던 이종현을 지명했던 것.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한 유재학 모비스 감독이 기뻐하며 리지에게 감사의 '따봉'을 날리는 모습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종현의 발언은 '오렌지캬라멜이 싫어졌다 = 모비스에 가기 싫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이 출연한 최준용은 "신인드래프트가 끝나고 (이종현을) 행사장 뒤에서 한참 위로해줬다"며 거들었다. 물론 농담이긴 했지만 가수 리지나 현 소속팀인 모비스에 모두 결례가 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특히 모비스 팬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불편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종현은 차세대 최고 빅맨이라는 높은 기대와 달리, 모비스 입단 이후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한 번도 풀타임으로 시즌을 소화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단은 이종현의 재활을 최대한 지원했고, 많은 팬들도 이종현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았다. 그랬던 선수가 농담이라고는 해도 팀에 대한 애정이 없는 듯한 발언을 해버리니 팬들로서는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

설상가상 방송이 공개되고 일부 매체에서 이종현의 발언 부분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일이 커졌다. 사실 이 방송분의 메인 게스트는 이대성과 최준용이었고, 중간에 즉석으로 합류한 이종현의 분량은 2~3분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종현의 발언이 이슈가 되면서 초점은 오로지 이종현에게 맞춰졌고 팬들의 비난도 이에 집중됐다.

사태가 커지자 <스톡킹> 제작진은 문제가 된 영상을 내리고, 방송 당시 이종현의 주요 발언들을 재편집한 영상을 공개했는데, 의외의 반전이 숨겨져 있었다. 새로 공개된 방송분을 통해 이종현이 당시 "사실 현대모비스에서 와서 좋았다. 명문 구단에 왔기 때문이다"라고 진지하게 소속팀을 존중하는 발언도 했음이 밝혀진다.

덧붙여 제작진은 "편집상 사려깊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이종현 선수와 현대모비스 팬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켜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한다"고 사과했다. 결국 제작진이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선수에게 일부러 위험한 발언을 부추기고, 자극적인 '악마의 편집'까지 더해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한 것이다. 

이 사건은 자연스럽게 최근 축구선수 김민재(베이징 궈안)의 '소속팀 비하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김민재는 지난 5월 박문성 축구해설위원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달수네 라이브>에 출연하여 중국에서의 선수 생활을 언급한 바 있다.

김민재는 "중국 수비수들이 수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 "오버래핑을 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소속팀에서 뛰다가 대표팀에만 오면 행복하다", "중국에서는 외국인 선수들이 훈련장에 들어오면서 고개를 젓는다"는 등 중국 축구와 동료선수들의 수준을 품평하는 발언을 해 도마에 올랐다. 김민재의 발언이 중국 언론에서 이슈가 되면서 논란이 커지자 결국 김민재와 박문성 위원 모두 베이징 구단 측과 팬들에게 공식사과해야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모두 촉망받던 젊은 선수들이 가볍고 자극적인 인터넷 방송에 출연했다가 분위기에 휩쓸려 책임지지 못할 말들을 내뱉었다는 점, 여기에 무리한 방송 편집과 언론보도까지 더해지며 사소한 해프닝으로 끝날 사건이 일파만파 커졌다는 데 있다.

1차적인 책임은 역시 선수들 본인에게 있다. 김민재나 이종현 모두 나이가 젊다고 하지만 엄연한 성인이고 프로선수라면 공식석상에서 해야할 말과 하지 말아야할 말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야 했다. 아무리 농담성이라고 하지만 김민재나 이종현의 언행에 소속팀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축구의 박지성이나 농구의 양동근같은 위대한 선수들이 팬들에게 더 존중받는 이유 중 하나는 경기 외적으로 불필요한 언행을 해서 구설수에 오르는 일 따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수들의 미숙함을 탓하기 전에, 조회수나 화제성만 노리며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미디어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유튜브가 최근 대세로 부각되고 개인 방송은 물론 방송사에서 운영하는 채널까지 우후죽순 생기면서 자극적인 콘텐츠도 늘어나고 있다. 

김민재나 이종현의 논란 발언 모두 편집과정에서 충분히 필터링이 가능했던 대목이었다. 그러나 제작진은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고 선수들에 대한 배려도 전혀 없었다. 결국 무리한 방송 때문에 선수도 팬들도 덩달아 상처 입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또 발생할 수 있다.

방송을 믿고 출연했다가 자신들의 진심이 편집상 왜곡되거나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지켜본 선수들이 앞으로도 미디어 앞에서 진솔하고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자연히 선수들의 의사표현은 위축되고 소통을 꺼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받아쓰기식 보도를 남발하는 일부 매체들과 그에 휩쓸리는 팬들도 어느 정도 자성이 필요해보인다. 방송에서는 그리 심각하지 않거나 웃고 넘어갈 수 있는 내용, 사소한 발언이라도 여러 매체를 거치며 전달하는 과정에서 뉘앙스가 전혀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예능으로 했던 말이 다큐로 해석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또 일부 팬들은 악의로 짜깁기된 몇몇 장면이나 기사만 가지고 성급하게 단정짓고 선수를 비난하는 악플 테러를 하기도 한다. 심할 경우, 한 번의 오해로 인해 한 선수의 이미지가 완전히 나락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성급한 포퓰리즘에 휩싸이는 것을 경계해야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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